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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ther K Apr 12. 2021

산에서 얻는 위로

엄마와 뒷동산을 오르다

세상에 여유롭게 진행되는 일이 그 어디에 있겠냐마는, 신사업을 맡고 있는 나로서는 하루하루가 살 떨리는 시간들이다. 주말이 오는 것이 행복하면서도, 너무 빨리 지나가는 세월이 야속한 것은 눈앞에 론칭 날짜가 미친 듯이 달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14시간씩 일을 하는데도, 좀처럼 진행되지 않는 일들, 결론 나지 않는 일들, 끝없는 수정과 수정... 뛰어도 모자를 이 시간에 자꾸만 뒤에서 잡아끄는 느낌이다. 그렇게 일주일을 시달리고 맞은 주말은 좀비인 상태로 보내기 일쑤. 그렇게 누워서, 초점 없이 보내다 보면, 너무도 야속하게 빨리 끝나는 주말...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시작한 일이 있다. 주말 산행~


코로나로 헬스장은 저녁 10시면 닫는데 (좀 있으면 다시 9시로 빨라 질지도 모른다 ㅠ) 야근을 하고 집에 오면 11시가 넘기 일쑤이니 거의 운동을 못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것이 느껴지는데, 최근에는 지독한 두통이 시작되었다.

작년 말 편두통이 지속되어 뇌 MRI도 찍었는데, 말짱하다고 해서 그 말 듣고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었다. 그때 의사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다른 종류의 통증이 느껴지면 빨리 다시 병원으로 오라"라고 하셨는데, 지난주부터 전혀 다른 종류의 두통이 시작되었다. 매일같이 머리를 360도로 돌아가면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시작된 것. 게다가 어깨가 뭉치고 뒷목이 당겨온다. 왠지 모를 트라우마가 나를 덮친다.


어릴 적 아빠는 늘 아픈 모습이셨다. 내가 6살, 아빠가 44세 되던 때 뇌출혈로 쓰러지셨는데 3년을 꼬박 병원에서 보내셨고, 여전히 왼쪽을 잘 못 쓰신다. 요즘엔 연세도 많아지셔서 하루하루 부쩍 기력이 쇠해져 가신다. 아빠도 콜레스테롤이 높았고, 지금의 나도 콜레스테롤이 높다. 그리고 아빠가 쓰러지셨던 그 나이 언저리. 그 트라우마가 나를 덮는다. 이렇게 신사업의 스트레스에서 미치도록 달리다가 내가 어느 순간 못 일어나거나 어떻게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문득 나를 둔하게 만든다.


두려움에 누워만 있거나 뻐근한 뒷목을 잡고 있기보다 엄마와의 산행을 시작했다. 뒷동산은 왕복 3시간 코스. 약 600여 미터의 높이인데, 나지막하지만 그래도 올라갈 땐 제법 숨이 차다. 흙길도 있고, 꽃도 있고, 물론 돌길도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 너무나 맘에 드는 건, '엄마와의 수다'이다.

서로 이런저런 얘기 두런두런 해가며, 회사 얘기도 하고, 살아가는 얘기도 하고, 옛이야기도 하다 보면 금세 올라갔다 내려온다. 다리가 아파서 내려오는 것이지, 수다만 하는 거라면 한번 더 올라가고 싶을 만큼 만족도가 높다. 땀이 나서 개운한 면도 있지만, 토요일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올라갔다 오면 10시. 씻고 점심 먹고 한숨 자고 나면 '세상에 무슨 근심이 있으랴..?' 싶은 마음이 아주 잠시는 든다.


정상의 바람은 차가워도 시원하다. 눈 앞에 거스르는 것이 없기 때문에 더없이 광활하다. 올라오는 순간의 땀과 먼지와 아픈 것이 아무 의미 없게 만들 정도로 상쾌하다.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과 우울과 싸워 이겼다는 자신감이 '올라오길 잘했다'는 생각으로 엄마와 웃게 만든다.


그렇게 또 다음 한 주간을 맞을 준비를 한다. 여전히 바쁘고, 여전히 스트레스받을 것이고, 여전히 현타에 오락가락할 것이다. '이러다 명이 짧아지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스트레스받으면 치매 걸리는 거 아니야?' 이런 오만 잡생각이 나를 또 갉아먹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또 산을 오르며 털어내면 어느 정도 살아지지 않을까? 함께 올라가 준 엄마가 고맙다. 엄마도 나와의 시간을 행복하게 여겨주시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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