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에 답글 달아드렸습니다
에디터에게 답변을 보낸 지 거의 두 달이 흘렀다. 얼척 없는 계엄령 때문에 개소리에 시달리며 겨울을 보냈다. 그 와중에 연구재단 과제 지원서도 쓰고, 다른 논문들도 쓰고, 고치며 실험실의 톱니바퀴는 굴러가고 있었다. 답변을 보냈다는 사실도 살짝 희미해져 갈 즈음, 에디터에게 이메일이 왔다.
“Commentary 가 수정되었습니다. 새로운 버전을 확인하시고 답변해 주세요.”
엥? 아니, 에디터들끼리 검토한 후 어떻게 처리할지 알려준다더니 상대방에게 우리 답변을 (허락도 없이) 보여준 건가? 정수리에 살짝 김이 올랐다. 일단 Commentary 가 어떻게 수정되었는지 읽어보았다. 호기롭던 기세는 어디로 가고, 꼬리를 내린 글이 되어 있었다. 처음 글에서 자기들이 사용한 단백질과 서열 비교도 없이 자기들 것과 같은 특성을 나타내지 않기 때문에 우리 결과는 오류라고 강하게 주장하며 한 수 가르치려던 부분이 아예 사라졌다. 그러면서 서열이 다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이렇게 전제를 까는 것으로 수정되어 있었다. 아마 에디터가 서열 차이에 의한 단백질의 성질 차이를 논한 우리 답변의 논지가 합리적이라고 판단해서 이 부분에 대해 그 쪽 저자들에게 수정을 요구한 것 같았다.
그건 그거고, 우리에게 정확히 안내하지 않고 우리 답변을 공유한 데 대해서는 에디터에게 항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지금 에디터는 이 논쟁의 심판인 셈인데, 한 쪽에게 다른 쪽 패를 허락도 없이 까다니. 나는 내 의견이 안 받아들여지면, 아예 commentary 와 답변을 다 출판하지 말자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업데이트 고맙습니다. 그런데 우리 답변을 수정해서 다시 보낼지 결정하기 전에 다음 문제에 대해서 분명하게 답을 해주길 바랍니다. 우리 답변의 일부를 commentary 저자들에게 공유했다고 했는데 이에 대해서 저에게 알려준 바가 없습니다. 어떤 부분에 대해서 상대편 저자들에게 공유했는지 정확히 알려줘야 답변 제출 여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다음 날 에디터는 공손한 사과의 메시지를 보냈다. 내 생각이 맞았다. 우리 주장을 타당하다고 생각해서 상대방에게 이 점을 다시 고려해야 한다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나의 요청에 의해서 commentary 와 답변을 차례로 출판하지만 각각 doi를 부여하기로 하였다고도 안내해 주었다. 나는 수정된 commentary 에 대해 답변을 수정하겠다고 하면서 더 이상은 commentary 를 수정하지 않겠다는 걸 확답해 달라고 했고, 곧 그러겠다는 답이 왔다.
처음 commentary 접수가 되었다는 에디터의 메일은 간략하고도 공식적인, 무미건조한 메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일을 처음 겪어 본 나는 당황스러웠다. 우리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논문을 철회해야 하는 등 불명예스러운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메일 뒤의 에디터가 재판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성급하고 부실한 논리로 남의 연구를 비난한 commentary 를 나에게 보낸 후, 출판 과정을 이렇게 허술하게 처리하는 걸 지적하자, 에디터의 태도가 달라진게 느껴졌다. 공손해진 에디터와 상대방의 바뀐 반응을 보면서, 묘하게 씁쓸했다. 상대방과 다르게 나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상황에서 이런 소모적 논쟁이 더욱 더 힘들었으니까. 이렇게 아니면 말고, 식으로 논쟁을 걸어오는 게 학계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나로서는 모를 일이었다.
사실, 처음 받은 코멘터리에는 사소한 논리적 헛점이 더 있었다. 주요한 논점만 격파해도 꽤나 분량이 되어서 처음 답변에는 사소한 부분은 포함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방도 내 답변을 보고 한 번 수정했으니, 나도 새롭게 보완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나머지 부분에 대한 반박도 답변에 적절히 포함시켜 보았다. 그래서, 더욱 완벽한... 논리적 반박이 되었다.
이렇게 논문에 악플 달렸고, 거기에 반박했고, 그래서 상대방이 내용을 수정했지만, 그래서 더 완벽하게 반박한 이야기는 끝이 났다. (그리고 이 두 글은 온라인에 각각 doi 를 받아 공개되었다.)
<이중 나선>이나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같은 유명한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특별히 마음이 좁거나 많이 이상한 사람들이 간혹 나온다. 남의 데이터를 탐낸다거나, 작은 언행에 앙심을 품고 평생을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은 대단한 과학자들에게 어김없이 따라붙는 질투와 경쟁의 그림자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거물이 아닌데! 근근히 매일 연구하며 논문 한 편씩 쌓아가는 사람인데? 대체 왜 나에게 시비를 걸었는지 생각해 보았지만 알 수 없다. 뭐, 걷다가 새똥을 맞기도 하는 그런 일일까? 학계에도 별별 사람이 있으니까, 가끔 이런 일도 생기는 거라고 넘겨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 경험을 통해 한 가지는 확실히 배웠다.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게 싫어도 살다보면 어쩔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는 걸. 이렇게 내 삶에는 또 하나의 무늬 혹은 흉터가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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