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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mie Aug 28. 2018

너와 함께하는 이 밤, 이 느낌을 평생 기억할 것 같아

싱가포르의 밤, 클락키 그리고 리버크루즈

새벽부터 서둘러 센토사섬으로 가서 루지도 실컷 타고,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지칠 만큼 신나게 놀았더니 어느새 날이 어둑해졌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기도 했고 유난히 움직임이 많았던 터라 지금 당장 호텔로 가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몸은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지만, 아직 완료하지 못한 오늘의 일정엔 우리가 가장 기대했던 클락키의 밤, 리버크루즈가 남아있었다. 우리가 미리 표를 사둔 리버크루즈 시간까지는 아직 두세 시간 여유가 있어서 호텔로 들어가 좀 쉬다 나올까 잠깐 고민을 했지만, 그래도 여행인데 쉬느니 보단 하나라도 더 보자 싶어 곧바로 클락키로 향했다.





지하철 (MRT) 클락키 역에서 내리면 헤맬 것도 없이 바로라서 클락키를 찾아가는 길은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막상 우리가 탈 리버크루즈의 탑승 장소를 찾는 데에 조금 애를 먹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반짝이는 클락키의 밤거리에 들어서자마자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에 너무도 많은 리버크루즈들이 떠 있어서 지금 당장이라도 우리 역시 저것들 중 하나에 금세 올라탈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리버크루즈를 운행하는 두 개의 회사가 강의 정 반대편에서 배를 띄우고 있어서 우리가 어떤 배를 타야 하는지를 파악하고 그 배가 출발하는 곳을 찾아야만 했던 것. 처음엔 그것도 모르고, 여긴가? 싶어 한참을 서서 기다리다가 나중에야 여기가 아닌 걸 알고 서둘러 강의 정 반대편으로 급하게 이동해야 했다. 두세 시간 여유 있게 갔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자리를 잡고 대기한 시간은 1시간 정도였던 걸 보면 우리가 헤매긴 엄청나게 헤맸나 보다. 타야 할 리버크루즈의 위치를 찾았는데 여기가 맞는지 의심이 든다면 출발점에 서서 안내를 하는 직원에게 물어보면 된다. 표를 보여주기만 해도 그 회사 표가 아니면 바로 반대편으로 가라고 알려주니까.


이미 피곤한 와중에 많이도 헤맸지만, 그러면서 여기저기 구경은 또 잘하고 다녔다. 골목골목을 쏜살같이 다니면서도 리버크루즈 타고 나서 와보자며오- 여기 분위기 괜찮은데? 오- 여기 좋아 보이는데? 하며 눈도장을 많이도 찍었었지 (하지만 결국 그중 한 곳도 가보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가 탈 리버크루즈 탑승 장소를 일단 확인한 다음에는 여기저기 주변 구경을 했다. 클락키 입구 쪽에 남들이 타는 것만 봐도 정말이지 무서워 보이는 놀이기구 2개가 운행 중이었는데, 무서운 놀이기구라면 무조건 타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우리 커플도 당연히 탈까 말까 고민을 했더랬다. 보통 때였으면 단번에 도전했을 텐데, 이날은 무척 피곤하기도 했고 아침부터 내내 스릴 넘치거나 꿈같은 곳에 있다 와서 그런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론은 타지 않는 걸로! 그런데 그렇게 타지 않기로 결정을 하고 나서도 한참을 갈등했던 것 같다.

 

-우리가 이걸 지금 안 타면, 평생 못 타 보는 거 아니야?
-여기 다시 올 일 있겠지.
-언제 다시 올까, 5년 후? 10년 후쯤? 그땐 우리 심장 약해서 이런 거 절대 못 타는 거 아니야? 오늘 아니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싱가포르는 경유해서 가는 나라들 많아서 당장 내년에 다시 올 수도 있어.
-아, 하긴 그러려나...

 

이렇게 시작된 대화는 당장 눈앞의 일들을 지나 일 년 뒤 우리 이야기로 갔다가, 우리가 결혼을 하면, 우리가 졸업을 하면... 등등으로까지 흘러, 결국 실없는 소리 팔 할에, 이유 모를 깔깔거리는 웃음이 이 할 정도로 가득 채워졌다. 


그런데 이때를 지금 와서 생각하면 왠지 묘한 기분이 든다. 클락키 입구에 있던 그 놀이기구를 그래도 타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까지 날 고민하게 만들었던 이유라면, 지금 이걸 타야지 추억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 아닐까, 지금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추억? 뭐 이런 종류의 것이었는데, 시간이 지금 이렇게 흐르고 나니, 그때 그 놀이기구가 요란하게 움직이는 걸 눈으로 좇으면서 우리가 했던 대화들, 그때의 분위기, 그 유쾌했던 느낌들이 그대로 무척 좋은 기억으로 남아버린 것이다. 


그때 무턱대고 놀이기구를 타버렸으면 절대 만들 수 없었을 그런 기억.


내 옆에 앉아있던, 지금은 내 남편이 되어 있는 
그 남자 역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때  엄청났던 놀이기구 생각나우리 탈까 말까 엄청 고민했잖아! 라고 내가 한마디만 던지면 금세 기억을 되살려내고 반짝이며 눈을 빛낸다. 그럼 나는 남편이 나처럼 그 순간뿐만 아니라 그때의 그 감정까지도 함께 떠올리고 있다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엉덩이는 벤치에 꼭 붙인 채 꼼짝 않고 오로지 대화만으로 유쾌한 시간을 보낸 후 드디어 리버크루즈에 오르고 나서는 반대로, 피곤한 탓인지 그냥 분위기에 취한 탓인지 고요한 침묵만이 이어졌다. 클락키를 출발한 리버크루즈는 어제와 오늘 우리가 지칠 줄 모르며 걷고 돌아다녔던 싱가포르 곳곳의 유명한 장소들을 천천히 돌며 밝을 때와는 사뭇 다른, 밤의 싱가포르의 얼굴을 엿볼 수 있게 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리버크루즈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대부분 여행객일 테고 리버크루즈는 밤에 많이들 타니까 온종일 열심히 관광했을 여행객들의 발은 피곤할 수밖에 없을 텐데, 이 느릿한 약 40분간의 여정은 여행객들의 피곤한 발에 휴식이 되어주기도 할 테다.

 

우리는 싱가포르에서 푸껫으로 이동하기 전날 밤, 그러니까 싱가포르의 마지막 날 밤에 리버크루즈를 이용하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내가 더 감성에 젖었던 것 같다. 남편과 나의 첫 해외여행에서 지금 생각하면 웃을 수도 있지만 그때는 절대 웃기지만은 않았던 다양한 사건들을 겪으면서도 (정말 정말 정말로 힘들었던 순간순간에) 용케도 내가 남편을 실망하게 할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안도감, 그리고 남편 역시도 예상했던 것처럼 절대 나를 실망하게 하지 않았다는 다행스러움, 무엇보다 눈앞의 광경이 정말이지 아름다워서, 지금이 정말 너무너무 좋구나, 하는 그런 감동, 이런 아주 복잡한 감정들이 마구 엉켜서 정말로 눈물이 날 뻔했다.

 

지금 너랑 같이 있는 이 순간의 느낌을 평생 기억할 것 같아.

 

라고 그때 남편에게 했던 말은 정말 거짓말이 아니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걸 알지만, 왜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들은 이렇게나 빨리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 버리고 마는 걸까. 감상에 젖어 조금은 울적해진 마음으로 흐르는 강 위를 맴도는 동안, 싱가포르를 거쳐 푸껫으로 향하는 우리 5박 7일 여정 중 한가운데의 밤이 그렇게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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