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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mie Sep 06. 2018

밤바다의 까만 파도가 조용히 입안에서 부서졌다

어느 여름, 더 나카 푸껫 The NAKA Phuket에서

그래도 푸껫에서는 좋은 숙소에 묵어봐야 하지 않을까?
바다도 예쁘고, 멋진 풀빌라도 많다던데.


지금은 남편이 된 한 남자와 함께할 첫 번째 여행을 몇 주 앞으로 두고, 함께 저렴한 곳들 중심으로 숙소 예약을 서둘러 해 나가다가 푸껫 숙소 예약을 할 즈음 눈에 띄게 손이 굼떠졌던 이유였다. 가능한 한 저렴한 곳을 골라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욕심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이런저런 리조트, 풀빌라 등을 알아보는데, 역시 남들은 신혼여행으로도 가는 휴양지라 그런지 푸껫의 좋다는 숙소들은 모두 눈부시게 화려한 바다 전망에 반짝반짝 빛나는 시설들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값이 비쌌다.


조금 무리해서라도 여기 풀빌라에서 이틀 정도는 묵어볼까?


각자의 노트북으로 한참을 묵묵히 넘볼 수 없는 가격의 리조트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문득 남편이 말했다.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함께 살펴보기 시작한 이 곳은 그런데 생각보다 무척 괜찮은 곳이었다. 이제 막 생겨서 시설이 아주 깨끗하고 좋으면서 모든 객실은 아름다운 바다 전망, 게다가 말도 안 되게 풀빌라까지 갖춘 리조트! 가격도 우리가 조금만 무리하면 묵어볼 수도 있는 정도였다. 대체 왜 이렇게 저렴한 거지? 해답을 찾아보려고 조금 더 깊숙이 살펴보았더니 이유는, 너무 새로 생긴, 정확히 말하면 새로 생겨가는 리조트였기 때문인 것 같았다. 리조트의 일정 부분은 제대로 만들어져 영업을 하고 있었지만 한 켠으로는 아직 한창 공사 중인 곳이었던 것.


그렇게 찾아내어 예약했던 곳이 바로 이 곳, 더 나카 푸껫 The NAKA Phuket. 지금은 완공이 되고도 한참이 지나 가격도 비싸지고 어느새 신혼여행으로도 많이들 찾는 리조트가 되어있다.


우리 부부가 처음으로 함께 했던 여행은 싱가포르 2박, 푸껫 3박으로 해서 5박 7일로 계획했었다. 싱가포르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푸껫에 도착한 첫날에는 시내의 아주 저렴한 호텔에서 묵고 이후 여행의 마지막 이틀을 더 나카 푸껫의 풀빌라에서 묵기로 한 것. 우리는 푸껫에서의 일정도 모두 자유여행으로 계획하였는데, 푸껫의 빠통 시내에서 더 나카 푸껫으로의 이동은 크린푸켓이라고 하는 업체의 셔틀버스 서비스를 이용하였다.


예정된 시간에 예정된 장소로 우리를 픽업하러 온 크린푸켓의 셔틀버스 안은 다른 다양한 리조트로 향하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푸껫 여행을 계획하면서 이름만 익숙한 리조트들이 하나 둘 호명되고, 각 리조트 입구에서 하나둘씩 손님들도 내렸다. 우리는 그 버스 안에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손님이었다.


더 나카 푸껫은 산의 아주아주 꼭대기, 아주 구석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리조트, 더 나카 푸껫.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당시 육안으로는 구분이 가능하도록 저 먼 곳에서는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달콤한 웰컴 드링크를 마시며 로비에서 잠깐 대기하였더니, 우리를 담당하고 있다는 직원이 나와 더 나카 푸껫 안에서 운행되는 툭툭을 하나 불러서 우리와 함께 우리가 묵게 될 객실로 향했다.


이동하면서는 아침에 이용할 레스토랑에 대한 이야기, 빠통 시내로 시간마다 운행되는 셔틀에 대한 이야기, 공용 수영장과 바다 수영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리조트 내 이동수단인 툭툭을 이용하는 방법들을 쉬지 않고 읊어주었다.



한번 숙소에 들어가면 다시 빠통 시내로 나오기가 힘들까 봐 들어갈 때 마실 것들과 먹을거리를 잔뜩 사갔는데, 웬걸,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있는 음료와 맥주들이 모두 무료란다. 결국 사들고 간 것들과 무료로 제공된 것들은 마지막 날까지 모두 비우지 못했다.


아주 친절했던 우리의 담당 직원은 TV로 영화를 보는 방법이나 커피 머신을 사용하는 방법들까지 찬찬히 설명해 주고는 무슨 일이 있거든 꼭 연락을 하라고 신신당부를 하고는 자리를 떴다. 


드디어, 이곳은 우리 둘만의 공간이 되었다.


이후에도 남편과 휴양지 여행을 여러 번 했었기 때문에 이보다 좋은 숙소에도 여럿 묵어보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독채로 된 공간을 온전히 우리 둘이서만 사용해 본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눈에 닿는 모든 것이 다 감동적이었다. 우리가 결혼을 해서 신혼집을 차리면 이런 느낌일까. 당신이 몸을 씻는 동안 나는 책을 읽고, 주방에서는 향기로운 커피가 내려지고 있는 풍경이라니.



아늑했던 침실과 그 앞의 테라스 공간. 침실 앞의 커튼을 걷으면 전면 창 가득히 바다가 담긴다. 늘 햇볕이 아주 강했지만 날이 밝을 때면 커튼을 걷고 테라스로 나갔다. 뜨거운 커피를, 그보다 더 뜨거운 볕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홀짝이고 있노라면 가끔씩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와 더위를 식혀주었다.


이 곳에서 우리는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대화를 하고, 깔깔대며 웃고, 그러다가도 아주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 


여기 노트북 들고 와서 논문 쓰면 진짜 글이 술술 잘 나오겠다. 그치?
아니. 절대 안 그럴걸!


너무 감성적이 되어서 눈물이 흐르려는 걸 꾹 참고 뱉어본 말에 돌아온 돌직구 답변. 저때도 그랬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남편은 결코 이성을 잃지 않는다. 하긴 그렇긴 하지, 세상에 논문이 술술 잘 써지는 곳이 대체 어딨겠어.



우리 프라이빗 풀. 처음 묵어보는 풀빌라라 모든 것이 황송했다. 이 때는 수영은커녕 물에 뜨지도 못할 때였는데 그래도 물에 들어가서 장난치며 잘 놀았다. 사실 저 선베드 위로는 볕을 가려줄 무언가가 거의 없어서 낮시간에는 앉아 있기가 꽤 힘들었다. 그래도 우리는 굴하지 않고 선글라스랑 챙 넓은 모자로 볕을 가리고선 꿋꿋하게 앉아 책도 읽고 술도 마셨다.



조식을 먹으려면 우리가 묵었던 방에서 꽤 아래로 내려와야 했다. 공용 풀장과 더 나카의 해변이랑 가까이에 있어 바다를 보며 밥을 먹을 수 있었던 곳. 조식 장소로 가려면 방에서 전화로 툭툭을 불러 조식 장소까지 데려다 달라고 하면 간단한 일이었는데 우리는 둘이서만 보내는 시간은 다만 일초도 아쉬운 마음에 늘 손을 꼭 잡고 걸어서 갔다. 조식 장소나 로비까지 나갈 일이 있을 때면 매번 걸었는데도 한 번에 길을 찾은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항상 길을 잃었는데, 길을 잃었을 때는 우리 길을 잃었다며 또 깔깔거리며 웃었다. 하늘 아랜 우리 둘 뿐이고, 우리가 내뱉는 숨이나 말소리 하나하나가 모두 행복에 차 있었다.



밖이 어두워지면 방안에 꼭 들어앉아서 TV를 보기도 하고 실내를 잔뜩 어둡게 해 두고 비상용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구비되어 있던 손전등으로 벽을 비추며 장난을 치고 놀았다. 가격이 꽤 저렴하길래 주문해 먹어 본 룸서비스도 생각보다 입맛에 잘 맞았던 기억.


마지막 밤에는 잠드는 것이 못내 아쉬워서, 캄캄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밖으로 나가 선베드 위에서 남편과 음악을 들으며 마지막 남은 맥주를 마셨다. 이때 들었던 한 여름밤의 꿀이라는 노래는 지금도 아주 좋아하고 있다. 언제나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선선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남편과 함께 했던 그 밤, 까만 파도 소리와 벌레 소리 들려오던 그 캄캄했던 밤이 오롯이 떠오른다.


너무 캄캄해서 바다는커녕 바로 눈 앞의 풀도 보이질 않았는데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소리를 좇아 바다가 있음을 가늠했다. 캄캄한 바다, 그 위로 까맣게 파도가 부서지고 있겠지. 시원한 맥주를 한 모금 넘기면 그 까맣던 파도가 입 안에서 부서지며 코 끝으로 바닷바람이 스쳤다.



떠나던 날, 공항으로 가는 발걸음을 차마 떼지 못하고 공용 풀 옆의 해변에 자리 잡고 앉아 조금 남은 시간을 보냈다. 이 여행을 마치면 바로 다음 달에 오키나와 여행도 계획되어 있었고, 인생은 즐거운 일 투성이었는데 이 곳을 떠나는 마음이 그렇게도 슬펐을까. 우리 다시 여길 오자고, 꼭 다시 돌아오자고 이 자리에 앉아 몇 번을 다짐했던지.


시간이 흘러 그때의 마음은 어느덧 희미해졌고, 세상은 넓고 아직 가야 할 곳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 여기, 이 리조트에 다시 가게 될 날이 올진 모르겠다. 사실 지금 생각으로는 다시 찾아갔다가 기묘할 만큼 아름답게 자리 잡은 이 곳에서의 추억이 빛을 바랄까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고. 하지만 지금도, 남편과 우리 집 바 자리에 앉아서 술을 마실 때 바로 눈 앞에 여행지에서 사 모은 마그넷들이 보이면 남편에게 묻곤 한다. 지금까지 갔던 곳들 중 어디가 제일 좋았어? 신혼여행 빼고! 그러면 남편도 나도 단박에 푸껫의 마그넷을 바라본다. 그때 거기, 정말 좋았잖아.


이후 남편과 나는 또 여러 곳을 함께 돌아다녔고, 그중에는 분명 이 곳보다 더 멋진 리조트와 풀빌라도 있었지만, 이 곳에서의 휴가를 단연코 우리 생애 최고의 휴가라고 지금까지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비단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이 휴가를 떠나기 전과 후의 상황은 우리 각자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시기였는데, 그만큼 힘겨웠던 시기에 아주 단꿀같았던 휴가였고, 이 휴가를 함께 하며 우리는 서로에 대해, 우리만 알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정서 같은 것을 만들었다. 이때 이 휴가지에서 만들어 갔던 서로를 향한 우리의 마음가짐, 그리고 우리 미래를 향한 다짐 등등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단단해진 우리가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라고. 그래서 특별한 공간이었고, 아주 소중했던 시간이었다.


다시 가보고 싶지만, 이 곳은 그냥 추억으로만 간직하는 편이 나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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