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일기] 빠른 시간 속의 여유

- 바쁜 삶 속에 아주 잠깐의 여유

by Chemifessor
빠르게 사라지는 시간

1학기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조차 알기 어려울 만큼, 매일이 전투처럼 지나간다. 3월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달력은 5월의 중순을 향해 가고 있다. 가끔은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순간이 사라지고, 계절이 사라진다.

학기 초는 새롭게 입학한 학생들을 맞이하고, 그들이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챙기느라 분주하다. 또한 행정 업무, 각종 회의, 연구비 과제 제안서, 밀린 논문 작성까지 줄줄이 쌓여 있다. 하루가 끝날 무렵이면 어떤 일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다. 매일 아침 일정을 확인하며 시작한 하루는, 저녁에 이르면 캘린더에서 하나씩 사라진 줄들을 바라보며 마무리된다. 그 사이사이 강의 준비와 수업, 학생 상담, 학교 행사, 위원회 회의 등으로 캘린더는 테트리스처럼 빽빽하게 채워진다. 줄 하나라도 잘못 놓으면 엉켜버릴 것 같은 일들. 그러다 보면 한두 달은 금방 사라진다. 어떤 날은 시간이 나를 밀고 가는 것 같다. 분명히 나도 움직였는데, 하루가 지나고 나면 그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잠깐의 틈, 소중한 순간

그 와중에 아주 잠깐, 여유가 생기는 날이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오랜만에 브런치를 켜고 키보드를 두드린다. 내 오른손 옆에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있고, 모니터 화면에는 하얀 배경이 펼쳐져 있다. 한 글자 한 글자 타이핑을 하다 보면 마음이 조금씩 정돈되는 느낌이 든다. 이 고요함. 이 정적. 나는 이 시간에 위로를 느낀다. 매일같이 글을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사실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하루하루가 쫓기듯 흘러가고, 눈앞에 닥친 일들을 치워내다 보면 글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그런데도, 지금처럼 짧게라도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사실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군가 평가할 것도 아닌 이 글쓰기의 시간은 내게 참 특별하다.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순간 중 하나다. ‘교수’가 아닌, ‘글을 쓰는 사람’으로 잠깐 돌아오는 시간.

그리고 다시

오늘 이렇게 글을 쓰고 나면 다시 정신없는 '교수'의 삶으로 돌아간다. 회의 알림이 울릴 테고, 다음 수업 준비를 해야 하며, 보고서 마감일도 다가온다. 교수라는 직업은 여유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하지만 그 바쁨 속에서도 짧은 시간이나마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그건 내 삶의 균형을 잡아주는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빠른 시간 속의 여유.”

형용 모순처럼 들릴수도 있지만 지금 나의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이다. 한글자 한글자 키보드를 누르는 순간이 나에게는 힐링의 시간이다. 하얀 배경 위에 찍혀나간 검은 글자들, 그리고 커피 한 모금. 이 모든 것이 내가 지금도 버텨내고 있다는 조용한 증거다. 어쩌면 이 글은, 나 스스로에게 주는 작고 따뜻한 격려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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