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행복한 시대인 줄 모르게 지나온 나의 삶
불만이 많았던 시대
어려서부터 '열심히 사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자랐다. 특히 공부를 잘하는 것이 인생의 성공이라는 믿음이 굳건했다. 물론 지금이야 시험 성적이 인생의 전부는 아님을 알지만, 어린 시절에는 시험을 잘 보고 좋은 대학에 가면 인생이 완전히 바뀔 것이라 믿었다. 대학에 들어가니 이공계 육성 정책 덕분에 장학금을 받을 기회가 많았다. 대기업 취업을 원한다면 '산학 장학생' 제도를 통해 지원을 받으며 학교에 다닐 수 있었고,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 입사가 보장되는 길도 열려 있었다. 4학년이 되면 여기저기서 취업턱을 내는 술자리로 분주했고, 그 속에서 대학원 진학을 택한 나 같은 이들은 먼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투자하는 사람으로 비치곤 했다. '졸업'만하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사회였다. 돌이켜보면 기회가 넘쳤지만, 정작 그때의 사회 분위기는 이공계 지원 정책이 늘 부족하다고 느꼈다. 더 많은 혜택이 주어져야 마땅한데 현실은 노력에 비해 혜택이 부족하다는 불만이 팽배했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옛날이 나았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을 보며 내 생각은 많이 바뀌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는 정말 행복한 시대를 살았던 것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손에 쥐고 있을 때는 그 가치를 모르다가,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는 법이다. 요즘 학생들을 보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거친 사회로 떠밀려 나가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학생들은 아직 두려운 정글(사회)로 나아갈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학교는 마치 어미 사자가 새끼를 절벽 아래로 떠미는 것처럼 그들을 품 밖으로 내보내는 듯하다. 아직은 모든 것이 서툴고 부족해 보이는 어린 사자들을 냉혹한 현실 속으로 던져야 하는 어미 사자의 마음은 무척이나 아프고 미어진다.
오늘이 가장 행복한 시간
오랫동안 나는 내가 보낸 학창 시절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20대와 비교하면 내 학창 시절은 실로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더 많은 기회가 있었고,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을 마음대로 선택하거나 바꿀 수 없다. 그래서 때로는 한탄과 원망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먼 훗날 돌이켜보면, 바로 그 순간조차 행복이었다고 느끼게 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의 이 하루 역시 미래의 내가 '그때는 행복했다'고 추억할 소중한 순간이 아니겠는가. 먼 훗날의 내가 지금을 돌아보며 '충분히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후회 없이 오늘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래야만 훗날의 나에게 미안하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