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나의 족쇄를 풀어가다.

발가벗겨진 채 세상에 놓여있던, 그 수치심을 위로하고, 자유에 감사하며

by 유지현

수치심의 무게


가끔씩 뜬금없이 과거의 일이 떠올라 창피함에 얼굴을 가릴 때가 있다.

철없이 했던 행동을 나이가 들어 생각해 보니 부끄러운 일이었다고 성찰할 때, 내 양심이 나의 이기심을 질책할 때, 그럴싸해 보이고 싶어서 연기하거나 허세 부렸던 일이 생각날 때, 남은 아는데 나만 모르고 바보처럼 행동했을 때, 억울한 상황이었는데도 바보같이 대항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며 비굴한 약자로 남겨졌을 때, 나의 억지스럽고 냉정한 태도가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을 때, 무식함을 들켜버렸을 때.


과거에 부끄러웠던 감정의 원인을 되짚고 되짚으며 지난 일에 집착할 때마다 수치심에 어쩔 줄을 몰라할 때가 있었다. 쓰고 수정할 수 있는 인생소설을 쓰고 있다면, 커서를 옮겨 지우고 다시 작성할 텐데, 인생에는 수정테이프도 delete key도 없다.


나는 잘한다고 해도, 의도와는 상관없이 사람에 의해서 또는 상황이나 환경 때문에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남들은 늘 지혜롭게 선택하고 우아하게 판단해서 나 같은 부끄러운 생각 안 하고 사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눈치도 없고 바보 같지? 그들은 그때 나를 그렇게 생각했겠지? 그가 나를 외면한 이유가 그 이유 때문이었을까?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지금이라도 그들에게 찾아가서 그때 얘기를 해볼까? 하며, 지난 세월을 되돌려 그들의 뇌리에 새겨졌을 나의 이미지를 수정하고 싶었다. 그리고 완벽하기만 한 '남'들은 다 옳고, 나 스스로는 믿을만한 사람이 못 된다고 생각했다.


발가 벗겨진 채로 세상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많이 수치스러웠다. 누군가에게 말하기조차 너무 부끄러워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두 손으로 내 얼굴만 감싸고 서 있었다. 표현하지 않는 나에게 어느 누구도 온몸을 감쌀만한 무언가를 걸쳐주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 한 때는 나의 삶의 멘토가 되어주지 못한 부모님을 맘속 깊이 원망했던 적도 있다.


타인의 옷을 입고 살다


눈치가 좀 생겼을 때부터 때때마다 세상이 원하는 옷을 입고 살았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기도 했고 때로는 촌스럽기도 했다. 어딘가 속살이 보이는 것 같아 두렵기도 하고 불편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더욱 남의 옷을 쳐다보며 남과 같이 하려고 했다.


본인의 욕심부터 채우는 사람, 호탕하게 약속하고 우습게 흘려버리는 사람. 양심을 지켜 행하는 것은 순진하고,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을 지혜로 여기는 문화에서 나도 슬쩍슬쩍 그들을 흉내 내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바보 같진 않아 보였어도, 그 모든 것 또한 나의 수치심에 차곡차곡 쌓여 더 큰 후회와 씁쓸함만 남겼다.


단순하게, 착하게 살면 좋은 사람으로 여겨져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줄 알았고, 성실하게 노력하면 부자가 되는 줄 알았다. 못된 사람은 반드시 처벌받고, 참고 인내하면 누군가 다 알아줄 것 같았다.


내 생각과 다른 세상, 다른 사람들.. 혼란 속에 서있는 외로움. 세상과 겪는 불협화음을 종교가 조율해 줄거라 믿고, 한때 종교인으로서 심취한 적이 있었다. 하나님께 고백하고 울면서 매달리면, 세상은 내 맘을 다 알아 줄것이 내 안의 미움은 용서받는 줄 알았다. 그러고 나서도 다음 날 똑같은 행동과 생각을 반복하는 나는, '하나님은 내 맘을 아시겠지'하며 퉁을 치곤 했다.


가면을 쓰고 남과 같은 옷을 입고, 열심히 고군분투하는 것 자체를 성취감으로 여기고 살았지만, 나의 삶과 나의 마음에 대한 사랑은 사라지고 있었다. 삶에 대한 책임감은 더욱 강해지고 원칙과 진리라고 믿는 것에 경직성만 더해져 갔다. 강한 책임감과 경직된 사고에 내 마음의 목줄을 잡혀 어느새 나는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무엇이 행복인지, 무엇이 진리인지도 모르겠고, 사랑한다고 아무 때나 떠드는 말에는 진심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 모든 것은 착각이었고, 사고의 족쇄였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게 생존할 수 있는지를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정답이 없다는 깨달음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요, 체면이 구겨질 일이 많이 생깁니다.. 인생이 그런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냥 언제나 내가 선 자리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할 뿐. 그 결과를 내가 다 컨트롤을 못해요...'쪽팔림'이 생기는 일을 너무 두려워하고, 너무 고통스럽게 생각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오은영 박사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정답이 있는데, 나만 정답을 몰라서 오답만 체크하고 사는 줄 알았다. '쪽팔림'이 나에게만 있는 줄 알았다, 가끔 나와 같은 '쪽팔림'을 겪는 사람을 보면 그도 역시 나처럼 바보 같아 보였다. 너무나 어리석은 생각으로 나를 자학했다. 충분히 더 행복할 수 있었는데도 누리지 못하고 산 것 같아 50년의 삶에 미안함이 느껴진다.


원래 실패와 수치심으로 성장하는 것이 인생이다. 내가 겪었던 수치심은 나의 잘못이 아니라, 성장과 도전의 과정에서 당연히 겪을 수밖에 없었던 귀한 경험이라는 것을 깨달은 다음에는, 참 귀하게 느껴졌다. 미리 겪지 않았더라면, 더 나이 들어 겪게 된다면 이겨낼 힘도 없을지 모른다. 주책스럽다는 말이 꼬리표로 달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끊임없이 겪고 깨닫고 변화하는 것은 당연하고, 참 다행이고, 스스로 대견하다.


70이 되어 나는 또 지난 일을 후회할지 모른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하고. 모두 다 불완전하고 불안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니, 평안하다.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앞으로가 더 중요해"라고 말할 것이다. 그저 나는, "너의 잘못이 아니야ᆢ모두 다 그렇게 성장하면서 살아. 오히려 깨닫지도, 창피한 줄 모르고 성장을 멈추는 사람이 어리석은 거야"라고 따뜻하게 말해주는 어른이 되길 바란다.


나만의 옷을 선택하다


이제야 불협으로 나를 자꾸 쑤셔대던 껍데기를 벗고, 나에게 맞는, 내 맘에 맞는 옷을 고를 수 있게 되었다.

타인, 관습, 종교라는 울타리에 의존하거나 눈치 보지 않고, 나를 위한 또는 타인을 위하면서 나도 행복한 선택과 판단을 믿고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수시로 나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점검하려 애쓰고 더불어 어떤 것이 공동체에 유익인지도, 기특하게 고려하기 때문이다.


관습을 따르지 않을 자유를 최대한 인정하자..... 스스로 설계한 삶은 그 자체로 가장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 자신의 방식이기 때문에 그에게 가장 적합합니다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저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원하는 삶을 자유롭게 사는 것이 최선이다. 남의 눈치, 남의 방식을 따라 살 필요는 없다. 누구도 남의 삶을 평가할 수는 없고, 그건 인간의 매너도 아니다. 남을 평가할 것이 아니라 또 남이 보는 나를 평가할 것이 아니라, 내가 보는 나에게 당당해지는 것. 스스로 빛나는 나를 아름다워하고 그렇게 가꿔가는 것. 이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밀의 《자유론》을 너무 늦게 읽었다. 이 글을 읽고 더욱 평안하고 따스한 위로를 느꼈다.


굳이 이렇게 해야되는 이유는? 하며 다른 생각을 해볼 때, 사람들은 나의 문제의식을 귀찮아 했고 변화요구에 무관심 했다. 득은 버겁고 내 편은 없을때 답답했고, 불안했고, 외로웠다.


어느새 나도 그럭저럭 말을 아끼고 내 내면만을 리모델링하며 살았다. 타인의 눈치보다 책을 읽으며 나도모르게 나만의 삶의 태도를 설계를 하고 있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책을 읽는 행복에 대한 글'을 인용하자면--혼자 생각한 이치를 훌륭한 사람이 쓴 책에서 다시 확인했을 때, 저는 행복을 느낍니다--처럼 나도 책에서 나의 깨달음 보게될때 그렇게 기쁘고 행복했다.

20대, 30대, 40대를 스쳐가며 겪은 고민과 상처의 흔적을 통해 얻은 성찰이, 책에서 검증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부작 사부작. 나에게 잘 어울리고, 내가 인증하는 자유로움을 얻었다.


아침에 남편에게 말했다.

"나는 요즘 나를 다시 생각해. 의외로 아이디어도 많고 창의적이란 말이야. 모르고 살았네. 내 생각을 조이던 경직이 풀어지는 기분이야. 내 뇌가 좀 자유를 찾고 있나 봐^^"


"맞아. 당신이 창의적이지. 원칙과 틀에 좀 경직되어 있긴 했어"


다소 영혼이 자유로운 남편은 사고가 유연한 편이다. 그것이 살면서 다툼의 원인이기도 했다. 그런데 왠지 오늘 아침에는 나의 말에 남편이 더 자유를 얻은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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