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나에게 와서 울었다.

지금의 낙담이 미래 희망의 씨앗이 되길 소망합니다.

by 유지현

오늘, 아들이 나에게 안겨 울었다. 억지로 웃고 있던 표정이, 엄마를 안는 순간 꿀럭꿀럭 눈물로 무너졌다.


대입 실기 시험을 보러 간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엄마…” 하는 소리 뒤에, 눈물이 울컥 차올라 목을 매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가슴이 먼저 아려왔다.


괜찮아 괜찮아...

그 말이 얼마나 안심이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스스로에 대한 속상함,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었을 엄마에게 괜한 미안함,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뒤섞인 파도가 마음속에서 계속 울렁이고 있을 것이 짐작되었다.


엄마의 퇴근을 기다리고 있던 아들을, 애썼다고 안아주었다.

울음을 참아내며 꿀렁이는 아들의 등을 토닥이다가, 문득 생각했다.

‘세 번째구나...’


초등학교 2학년 때, 들어오자마자 엄마에게 달려와 펑펑 울었다. 처음으로 반장선거에 나간 날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때, 밤늦게까지 방황하다 들어온 아들의 표정이 울고 있었다.

"엄마, 잘하고 싶은데 안돼.."

늦은 밤 귀가를 꾸짖다가 오히려 한참을 안아주었다.


대입이 진행 중이고, 세 번째 울음을 터트렸다. 얼마 전 '남들은 다 잘되는데, 나만 안 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던 그 절망감이 아들을 집어삼킬까 봐 걱정이 되었다. 참지 말고 맘껏 울라고 했다. 그렇게 그 맘을 다 흘려버렸으면 했다.


정말 잘하고 잘되고 싶은데, 맘처럼 되지 않는 그 애씀과 속상함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지 알아차릴 때를 기대하며, 꼭 하고 싶었던 말을 해주었다.

“네가 겪는 실패가 너를 더 단단하고 지혜롭게 만들 거야.

중요한 건, 지금 이 마음을 어떻게 추스르고 무엇을 배우느냐야. 그걸로 충분해."


아들이 순조롭게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는 그 과정을 보면 엄마도 늘 순탄한 하루를 즐길 테지만, 인간의 삶은 그렇게 순탄하지가 않다. 내 삶도 내 맘대로 좌지우지 못하니, 아들의 삶에 엄마가 완벽한 설계자가 될 수 없는 것 또한 당연하다.


살면서 가장 많이 떠오르는 사자성어가 있다면, 인생지사 새옹지마, 전화위복이었다. 진부하고 당연한 문구처럼 보이지만, 삶에 대해 이 성어처럼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싶다.

또, 학창 시절 장난스럽게 읊조리던, 푸쉬킨의 시구는 살면 살수록 깨달음으로 진심을 담아 되뇌곤 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순간순간의 삶이 쌓여 다음의 순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금은 실패의 결과지만 이것이 미래 어떤 희망의 씨앗이 될지 모른다는 상상으로 마음을 다잡곤 한다. 지금 어떤 마음의 선택을 할지 고민할 뿐, 버둥거리면서도 그 중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습관처럼 다짐하는 내 마음처럼, 아들도 뒤뚱거리지만 중심을 잡는 오뚝이처럼 그렇게 이겨내 보길, 마음을 다해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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