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시대. 양심과 염치가 다시, 살아 숨 쉬길 바랍니다.
국제사회의 큰 논란이 된 소식이 있었다.
멀쩡한 한 나라의 대통령이, 다른 나라 군인에게 체포되어 압송되었다.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1월 3일 미국 군의 대규모 기습 작전으로 체포돼 미국으로 압송되어, 미국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전쟁 중도 아닌데, 주권국의 대통령이 타국 군에 체포되어 타국에서 재판을 받는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세계정세에 밝지 않은 나조차도, 새벽에 이 소식을 전하는 남편의 말에 "뭐라고?" 하며 놀라 잠이 번쩍 깼다.
더 혼란스러웠던 것은, 미국은 이 사안과 관련해 비판적 입장을 보인 유엔과 인권 관련 국제기구들에 대한 재정 지원 중단과 탈퇴를 선언했다는 소식이었다. 국제 질서라는 것이 과연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뒤섞인 채 며칠을 보냈다.
이런 황당한 불안감은 낯설지가 않다.
지난해 12월 3일 밤, 얼핏 잠이 들었는데 아들 둘이 소리치며 깨웠다.
“엄마! 아빠! 계엄이래. 대통령이 계엄 선포를 했대!”
처음엔 믿지 않았다. 어디서 가짜 뉴스를 본 건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곧 화면 속에서 군인들이 총을 들고 의회 입구를 막아선 채 시민들과 대치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심장이 세게 뛰기 시작했다. 경찰과 시민들이 빼곡히 뒤엉켜 있는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차라리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군인들이 창문을 부수고 진입하고 보좌관들이 소화기를 뿌리며 이를 막아섰다. 로비에는 의자와 가구들을 겹겹이 쌓아 문을 막아 놓았다. 밤새 채널을 돌리며 정지된 화면과 팽팽한 대치의 장면을 지켜보며 마음만 종종거렸다. 국회의 계엄해제 의결 이후에도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마침내 철수하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연신 말하며 고개를 숙이던 한 젊은 군인의 모습이, 순간 내 아들처럼 느껴져 가슴이 저려왔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 할 사건의 처리 과정은 더디고 혼란스러웠다. 어렵게 체포된 내란 수괴가 이해하기 힘든 절차와 판단 끝에 풀려나는 장면을 보며 깊은 허탈감을 느꼈다. 환호하는 지지자들과 어퍼컷을 날리는 의기양양한 표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절망감을 안겼다.
지금도 떠올리면 눈물이 나는 장면이 있다. 폭설과 한파 속에서 은박 담요를 덮고 탄핵을 촉구하며 밤샘 시위를 이어가던 2030 세대의 모습이다. 은박 담요 위에 쌓인 눈이 키세스 초콜릿처럼 보인다 해서 사람들은 그들을 ‘키세스단’이라 불렀다. 응원봉과 함께, 그 장면은 이 시대 시민 저항의 상징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헌법재판관의 그 한 문장이 선고되던 순간, 많은 국민이 함께 울었다.
내란 특검을 비롯 3개의 특검이 가동되고, 계엄 관련 재판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특검과 재판이 이어졌지만, 그 과정에서 검찰과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더 깊어졌다.
전 국민이 보고 들은 사실이 존재함에도 진실은 지연되었고, 법 기술과 말 기술이 눈과 귀를 속이며, 책임을 비껴가는 데 사용되는 듯 보였다. 최소한의 위선조차 없이 말을 뒤집고 거짓을 말하는 정치인들을 보며, 우롱당하고 있다는 감정까지 들었다. 상식은 무너지고 괴변이 넘쳐났다.
이 장면을 보며 떠올린 것은, 우리 현대사의 첫 장면에서 이미 놓쳐버린 한 번의 기회였다. 일제 강점기 이후 친일 세력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좌절이다. 688명을 검거했지만 실형을 받은 이는 손에 꼽을 정도였고, 대부분은 집행유예나 무죄로 풀려났다.
이 실패는 권력과 기득권이 법 위에 설 수 있다는 위험한 신호를 남겼고, 권력이 잘못을 저질러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나라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후 독재 정권과 군부 쿠데타, 민주화 운동 탄압으로 이어지는 토양이 되었다. 잘못을 바로잡지 못한 사회는 언제든 비슷한 장면을 반복한다.
계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번 헌정 질서를 흔들려했던 12·3의 밤은, 과거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현재의 증거였다. 친일 청산이 좌절되던 순간에도, 계엄이 시도되던 그날 밤에도 문제는 같았다. 권력은 자신을 제한해야 할 선을 넘었고, 그 선을 넘은 뒤에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이 작동했다는 점이다. 역사는 늘 경고한다. 단죄하지 않은 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다른 얼굴로 다시 돌아온다고.
나는 이것이 두렵다.
정의란 무엇인가. 양심과 염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것은 끊임없는 희생이 필요한 것일까?
최근 몇 년간 위기 속에 관심 갖게 된 세계의 정치·경제 상황을 바라볼 때마다,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더구나 세계질서유지의 중심이라 여겨졌던 미국이 주권국인 나라의 대통령을 압송하고, 심지어 그 나라를 운영까지 하겠다는 소식은, 힘을 가진 자의 적나라한 폭력을 목격하는 듯했다.
마두로의 독재, 중국·러시아와 관련한 지정학적 계산, 에너지 패권의 숨은 의도는 상관없다. 과정의 수단과 방법이 세계인의 상식인 국제 질서와 부합할까?라는 생각과 함께, 강력한 힘 앞에 무력해지는 좌절감이 무척이나 불편하다. 그저 평범한 시민일 뿐인 나조차도 말이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느닷없이 발현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한강작가의 <소년이 온다> 중에서
정의감과 죄책감, 공포가 뒤섞인 '강렬한 무엇', '깨끗한 무엇'때문에, 고등학교1학년 막내 시민군 동호는 끝까지 도청에 남아 희생되었다.
나 어릴 적엔 '양심에 털이 났다', '염치를 알아라'라는 말이 사람들 간에 참 흔하게 쓰였는데, 어느새 낯선 단어가 되었다. 처음으로 양심과 염치라는 단어의 뜻을 검색했다. 양심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도덕 기준이고, 염치는 그 판단 앞에서 부끄러워 멈추게 하는 마음까지를 포함한다.
개인적으로는 ‘염치’라는 발음이 ‘양심’보다 조금 더 거칠게 들린다. 하지만 의미를 알고 나니, 오히려 염치라는 말이 더 귀하게 느껴졌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있어야 행동을 멈출 수 있고, 배려도 자연스럽게 나온다.
지금 우리 시대에 정말 필요한 화두는 염치가 아닐까.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인들은 거짓을 진실처럼 말하고, 반복을 통해 거짓을 사실로 만들려 한다. 기득권은 오랜 시간 쌓아온 힘으로 그 자리를 지킨다. 더 무서운 것은, 대중이 그것을 점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다.
“다 그런 거지, 어쩌겠어”라는 체념 속에서.
권력자의 양심과 염치가 사라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목격해 왔다. 그리고 두려움과 공포의 시대를 거쳤고, 양심과 염치를 지키내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버텨왔다. 아직도 갈길이 먼 것 같다.
나는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도, 용감한 시민도 아니다. 민주화 운동에 참여해 본 적도 없고, 폭력 앞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적도 없다. SNS에 분노의 댓글 하나 달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이다. 그저 이 현실이 내 아들 세대까지 다치게 할까 봐 걱정하는 평범한 엄마일 뿐이다.
그런 내가 최근 몇 년간 꾹꾹 눌러 담아두었던 이 불안과 분노를, 조심스럽게 글로 옮겨본다. 막연한 답답함의 실체를 조금이라도 분명히 보고 싶어서다.
절망 앞에서 나는 늘 앞날에 대한 선택을 고민해 왔다. 지금 나의 선택은 양심과 염치다. 이것이 개인의 선택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집단적 선택이 되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개인의 성숙과 공동체의 성숙이 이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듣기만 좋고 고루한 그럴싸한 문구가 아니라 직면한 우리 시대의 과제가 아닐까.
일상의 태도에서, 여론의 방향에서, 특히 교육의 현장에서 양심과 염치가 다시 살아 숨 쉬기를 바란다.
선을 넘는 시대다. 그래서 더 자주, 더 크게 ‘양심’과 ‘염치’라는 말을 불러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들어오는지, 우리는 이미 여러 번 보아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