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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 엄마 Jun 22. 2020

무지개 모자를 쓴 아이

언어 자극을 받아야 할 '지연' vs 언어치료를 받아야 할 '장애'


우리 아이는 단순한 '언어지연'일까, 아니면 '언어발달장애'일까.


말이 늦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가장 궁금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단순히 말만 조금 느린 것인지, 아니면 언어치료를 받아야할 정도로 심각하게 말이 느린 것인지 일 것이다.

사실, '언어지연'과 '언어발달장애'를 구분 짓는 경계는 상당히 모호한 부분이 있다. 먼저 용어들의 개념적인 정의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언어지연'은 흔히 말 늦은 아이(Late talker)에게서 나타나는 언어발달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이해 언어능력에 비해 특히 표현 언어발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를 말한다. 말 늦은 아이는 대게 청 감각 능력이나 인지 능력, 신경학적 결함이나 정서발달 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표준화된 표현 어휘 검사 결과 10퍼센트 또는 -1SD로 평가되는 아이들이다. 보통 만 2세를 전후하여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10개 미만인 경우이거나, 만 3세를 전후한 아동 중 표현 어휘의 수가 50개 미만 혹은 두 단어로 조합된 문장 출현이 나타나지 않는 아동을 말한다.


단순 언어장애(SLI: Specific Language Impairment'라고도 불리는 '언어발달장애'는 말 늦은 아이(Late talker)처럼 신체, 정서, 인지발달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언어를 습득하고 발달시키는 과정에 어려움을 보이는 아이를 말한다. 단순 언어장애(SLI)라고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기준은 언어성 검사 점수가 -1.25SD 이하이며, 비언어성 지능 점수가 85 이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또한 말을 하기 위한 조음기관들의 정상적인 발달과 함께 뇌손상 등의 결함이 없어야하며, 사회적인 상호작용이나 화용 능력에 어려움이 없는 아동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발달장애에 속하는 단순언어장애(SLI)는 말 늦은 아이(Late talker)와 달리, 표현언어능력 뿐만아니라 이해언어능력도 현저히 결함을 보이며, 또래 아동과 비교하였을 때 적게는 1년, 많게는 2년여 정도로 낮은 언어발달능력을 보인다. 


말 늦은 아이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성장하게 되었을 때, 만 3세 이후에는 전반적인 언어발달지체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조기에 발견하여 적절한 언어 자극이 충분히 제공 되어야 정상 언어발달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노란 모자를 쓴 '말 늦은 아이'가 풍부한 언어자극을 제공받지 못하면, 아이의 언어능력은 또래아동보다 점점 더 뒤쳐져 노란 모자에 '단순언어장애(SLI)라는 빨간색이 덧칠해지고, 그 상태로 학령기가 되면 파란색의 '읽기 장애', 보라색의 '학습장애'가 계속적으로 덧칠해져 노랗던 모자는 어느새 얼룩덜룩한 무지개 모자가 된다. 그만큼 아동이 겪게될 어려움들도 나이가 들수록 늘어간다. 부모로부터 제대로 언어자극을 받지 못한 말 늦은 아이들은 옹알이를 하기 이전부터 학령기가 되기까지 색깔만 바뀔 뿐 '언어발달지체'라는 모자를 계속 쓰고 있는 것이다. 말 늦은 아이(Late talker)와 단순 언어장애(SLI)는 이것과 저것으로 따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연속선 상에 놓여져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렇듯 '말 늦은 아이(Late talker)'와 '단순 언어장애(SLI)'는 또래보다 말이 느린 아이들로 언어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이다. 특히 '단순 언어장애(SLI)' 아이들 중에서 -2SD 미만, 쉽게 말해 또래 아동과 언어능력이 2년 정도 차이를 보이는 아이들은 반드시 언어치료가 권고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만 3세인 아이가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어휘는 5개 미만뿐이고, 일상생활 속에서도 한 두 가지의 간단한 지시 따르기도 어려움을 보인다면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간혹, 우리 아이는 한마디도 못했었는데 5살이 되었더니 갑자기 그때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으니 걱정하지 말고 그냥 지켜보라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를 방치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나의 아이도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은 매우 위험하다. 다른 사람의 경험이나 기준이 아닌 우리 아이의 생활 연령(만 나이)과 또래 아동의 언어 연령(정상 언어발달)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하나 하나 따져본 뒤 그 차이가 1년 반 혹은 2년 정도가 느리다고 판단이 된다면 반드시 언어치료를 받아야 한다.


반면 '말 늦은 아이(Late talker)'들 중에서 연령이 만 2세 전이며, 표준화된 표현 어휘 결과가 -1SD 미만을 넘지 않는다면 가정에서 집중적으로 충분한 언어 자극을 받는다면 정상 언어발달을 서서히 따라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이제 돌이 막 지난 아이가 간단한 지시 따르기도 잘하고, 알고 있는 단어들은 많은 것 같은데 아직 옹알이만 한다거나 두돌 정도의 아이가 단어로는 말할 수 있는 어휘가 3-40개 정도는 되는데 문장으로 길게 말을 잘 못한다거나 하는 경우에는 언어치료를 받지 않더라도 가정에서 이전보다 풍부한 자극을 제공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능성을 갖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아이와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주양육자가 부모교육을 통해 아이의 언어발달 과정을 이해하고 언어 자극을 줄 수 있는 스킬들을 습득하여 일상생활에서 아이의 언어를 적절히 자극해주어도, 그것만으로도 아이의 언어발달이 정상 언어발달을 따라가게 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아이가 어릴수록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는 언어치료사보다는 매일 매시간 함께하는 주양육자, 곧 아이가 가장 사랑하고 신뢰하는 부모가 언어 자극을 주었을 때에 그 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하지만 이렇게 아이의 언어를 자극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부모교육은 정작 언어치료를 받으러 가야만 받을 수 있다. 그것도 제한된 시간 안에, 한번 혹은 두 번 일회성인 경우가 많다. 


현장에서 언어치료를 하면서도 가장 안타까운 것은 아동 치료 후에 주어지는 고작 10여분이라는 시간 동안에 부모의 태도, 언어발달과정, 언어를 유도하는 방법 등을 모두 알려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언어치료 시간에 언어치료사가 노련한 기술들을 모두 동원하여 일주일에 한두 시간정도 아이의 언어를 자극해주고 언어를 끄집어내 주는 것보다는 아이 대신 부모와 함께 언어치료 스킬들을 열심히 훈련하여 가정에서 매일, 여러 번 일상 생활 속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이를 돕는 제일 실질적인 도움이라고 생각한다. 언어라는 것은 삶을 순간순간 채우는 것이기 때문에 언어가 자연스럽게 아이의 삶에 녹아들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해주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래서 임상에 있을 때, 상황이 너무 심각한 경우에는 아이의 치료시간을 모두 부모교육으로 대체한 경우도 여럿 있었다. 그만큼 부모교육은 아이의 언어발달에 있어서, 특히 그 나이가 어릴 경우일 수록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모자랄 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아이의 언어발달은 보통 만 3세를 전후하여 모국어로써의 습득이 대부분 이루어 진다고 할 수 있다. 말이 느린 아이들을 발견할때에 대게는 만 2세를 넘지 않더라도 부모라면 우리아이가 또래보다 말이 느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부모교육은 말이 느린 아이를 키우는 모든 부모에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며, 아이의 언어발달을 위해 포함되어야 하는 중요한 교육 중 하나이다. 제대로된 부모교육이야말로 아이의 언어를 꽃피워주는 최고의 영양분이자 밑거름이다.



부모교육이 곧 언어치료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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