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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 엄마 Jun 18. 2020

너의 속도에 맞춰서 그렇게.

너무 서두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대신 멈추지는 말고.

언어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우리 아이의 언어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통은 아이의 언어능력이 또래와 얼마나 차이를 보이는지 평가하기 위해 표준화된 언어검사 도구를 사용하게 된다. 언어검사 결과에 따라 정규분포 상에서 또래 아동의 평균치를 비교하여 우리 아이가 왼쪽 혹은 오른쪽 어느 쪽에 위치해있느냐에 따라 표준편차가 결정된다. 아동의 언어능력이 평균보다 -2SD 미만으로 떨어질 경우에는 언어장애로 진단되어 언어치료를 권고받게 된다. 객관적인 수치가 제시되어야 공식적인 자료로써 사용되기에 용이하고 치료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자료로써 활용되기 적합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치료에서 표준화된 검사 결과를 절대시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표준화된 검사가  내면의 보이지 않는 우리아이의 언어능력을 모두 나타내 주지는 않는다. 내성적인 아이이거나, 유독 낯을 많이 가리는 아이인 경우에는 자신의 능력보다 낮게 언어능력이 평가되기 쉽다. 간혹 언어능력이 단어, 문장과 같이 표면에 드러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한 사람의 언어능력은 청각적 기억력, 메타인지능력 등과 같은 비언어적인 능력을 포함하여 음운인식, 통사, 화용 등 너무나 광범위한 영역들을 포함한다. '언어'라는 것은 내면에서 작동하는 표상적인 언어와 그것을 표면으로 드러내는 음성학적인 말소리로 구분되는데,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언어를 단편적인 검사로 모두 평가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장애를 표현하는 용어 중에 '스펙트럼(spectrum)'이라는 표현이 있다. 같은 장애일지라도 그 유형과 증상들은 너무나 상이하기 때문에 스펙트럼이라는 용어를 붙여 그 다양성을 표현한다. 나는 이 단어를 볼 때마다 무지개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생각에 빠지곤 한다. 우리가 장애라고 생각하는 스펙트럼의 어느 선상에서 어떤 아이는 단지 빨간어딘가와 가까울 뿐이고 또 어떤 아이는 보라색 끝자락 어딘가에 가있는  뿐이다.  우리 또한 그 길  어딘가에   있다.

분명히 표준화된 검사를 통해 장애로 진단받고 필요한 도움을 받도록 하는 것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중요하고 꼭 필요한 과정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한 과정이 삶의 과정 중의 하나로 지나가야 하지만, 보통은 장애로 진단받는 순간부터 한 가정이 커다란 낙인으로 무겁게 내려앉는 것을 종종 보곤 한다.


언어치료실에 오기 전까지, 부모는 수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바우처라는 정부 지원이 있지만 어떤 부모는 치료를 받은 흔적이 아이의 장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기도 한다.  

가장 먼저는 사회가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야 하겠지만, 그 시선을 바꿀 수 있는 작은 시작은 바로 부모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 내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가 아이의 자아를 형성하고, 그렇게 형성된 건강한 자아상은 사회로부터 긍정적인 자존감을 행사할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하게 한다.


말이 느린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는 아침에 눈을 뜨고 잠이 드는 그 순간까지도 하루 종일 우리 아이가 말이 느린 원인을 찾고자 혹은 하루라도 더 빨리 아이의 말을 터트려줄 방법들을 찾아 밤을 지새울 것이다. 아이라는 존재는 부모의 삶을 꿈틀거리게 하는 존재 이기 때문에 아이의 몸에 아주 작은 상처만 생겨도 부모는 온종일 그 상처가 눈 앞에 아른거린다. 하물며 작은 상처라도 이럴지언데, 다른 아이들은 어렵지도 않게 툭하고 내뱉는 '엄마'라는 말을 단 한 번도 듣지 못한 부모의 심정은 어떠할까를 생각하다 보면 마음이 저려온다.


우리 아이가 아직은 '엄마'라고 나를 불러주지 않아도, 다른 아이처럼 조잘조잘 떠들어대지 못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누구보다 나의 아이가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예쁘다.

모든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가장 사랑스럽고 또 매번 미안한 마음이다. 아이를 키우는데 다른 아이와의 비교가 꼭 필요할까. 다른 아이보다 조금 느리든 빠르든, 부족한 무언가가 있든 없든 그것이 부모자신의 아이를 사랑하는 것을 방해할 수는 없다.


언어치료실에서 만난 아이들 중에서는 자신이 왜 언어치료실에 오게 되었는지 모른 채 부모의 손에 이끌려 오는 아이들이 많다. 언제나 아이들은 느긋하고 부모는 조급할 뿐이다. 느긋하고 마냥 해맑았던 아이들은 부모의 조급함을 알아챈 순간부터 슬슬 부모의 눈치를 보고 생기를 잃어간다.


언어 외에 다른 문제가 없는 경우, 언어치료의 포괄적인 목표는 언제나 또래 아동과의 평균치만큼 언어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언어치료사 조차 아이를 또래 아동과 비교하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며 평가의 기초가 된다. 언어치료실에 찾아온 아이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순간부터 스펙트럼 선상 위에서 뛰고 또 뛰기 시작한다. 누군가가 세워 놓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참 많이도 애를 써야 한다. 이렇게 애쓰는 우리 아이에게 위로를 주고 편이 되어줄 유일한 존재는 바로 세상의 전부이자 하나뿐인 엄마이고, 아빠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나 또한 그동안 수많은 정상치와 아이를 비교해대느라 아이를 얼마나 불안하게 했는지 모른다. 부모들이 정해놓은 혹은 세상에서 결정해놓은 정상 범위 안에 들기 위해 우리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를 위해 노력이란 것을 배운다.


우리 아이에게 정상이라는 기준을 세우는 것은 누가 허락해준 권리인 것일까. 정상이라는 기준은 아이를 키우는데 참고할 수 있는 가장 쉽고 편안하게 믿음을 주는 기준점이 되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 기준을 따라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마다 각자의 성장 속도가 존재한다. 어떤 아이는 몸의 성장 속도가 빠르지만 말이 느린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아이는 말은 빠르지만 늦된 성장을 보이는 아이도 있다. 속도는 각자의 생김새에 따라 다르지만 어느 분기점에 접어들게 되면 아이들의 성장 속도는 어느덧 비슷해진다. 두 돌을 전후해서 유독 말이 빠르거나 느리게 보이는 아이들이 있지만, 세 돌을 전후해서는 말이 빨랐던 아이도 혹은 말이 느리게 터진 아이도 나중에 보면 비슷하게 섞여 무리에 속하게 된다.


부모가 아이의 속도를
다그치지 않고,
그저 아이가 키워내는 자연스러운 성장을 지켜봐 주고 지지해줄 때,
결국은 스스로 자신만의 꽃을 피워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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