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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 엄마 Jun 23. 2020

'엄마'라고 말할 수 있는 조건

첫 단어의 출현, 보이지 않는 전쟁

가짜 '엄마' vs 진짜 '엄마'

우리 아이가  '엄마'라고 부를 때 가짜 '엄마'가 있고, 진짜 '엄마'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아이가 태어나서 '엄마'라고 말하는 순간까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무수한 과정들을 필요로 한다.


말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조음기관(입술, 이, 입천장(구개), 목젖(구개수), 혀, 성대 등)을 부지런히 성장시키고, 엄마 말(모국어)에 대한 말소리를 범주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능력도 키워야 한다. 이 능력을 '범주적 지각 능력'이라 하는데 이것은 음운인식과 관련이 깊다. 생후 6개월 정도가 되면, 아이들은 특정한 말소리에 주목하고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엄마가 사용하는 말소리에 대한 카테고리를 만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엄마의 말소리에서 /ㅂ/라는 말소리의 경계를 음파 속에서 범주적으로 지각하여 하나의 카테고리를 만든다. 그렇게 각 음소마다 소리로써 카테고리를 만들어낸 다음 그것을 바탕으로 모국어에 대한 음운 체계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발성이라는 음파 속에서 /ㅂ/와 /ㅍ/가 서로 다른 소리라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말소리를 습득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목 울림과 같은 발성 놀이(Vocal play)를 통해 자신의 조음기관을 탐색하며 혀를 움직이고 조절하는 능력, 목구멍을 울리는 방법, 물푸레질을 하며 입술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 등을 연습하면서 옹알옹알 소리를 내게 되는데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옹알이'라는 것이다.

'옹알이'에도 여러 단계가 있는데, 하나의 모음을 여러 번 반복하는 옹알이에서 다양한 자음과 모음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는 옹알이, 즉 첫 낱말 이전의 '원시어'라고 불리는 단어같이 느껴지지만 단어 같지 않은 낱말 옹알이를 하는 시기로 구분된다. 이렇게 아이들은 말소리를 내기 위해 소리에 대해 인지할 수 있는 능력, 발성하기 위한 조음기관들을 움직이능력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훈련을 거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우리 아이들은 말소리에 의미를 입히는 작업도 동시에 시작한다. 사실 언어 이전의 옹알이들은 의미를 입히진 않은 텅 빈 소리라고도 할 수 있다. 단지 발성기관들을  움직이며 내는 소리일 뿐이다. 하지만 여기에 의미를 담기 시작하면 공허했던 소리들이 살아 움직이며 아이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는 '말소리'가 된다.

말소리에 의미를 담기 위해서는 먼저 소리들에 대한 의미들을 축적하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음소 하나하나가 어떤 범주로 묶이는지를 익혔다면, 이제는 그 소리들이 어떻게 조합하여 다양한 말소리를 낼 수 있는지를 학습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가 /아/라고 말할 때보다 /바/라고 말할 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정교한 움직임이 요구된다.

/아/라는 소리는 입을 벌려 공기를 입 밖으로 뱉어내는 단순한 발성이지만, /바/소리는 입술을 붙였다 떼면서 공기의 압력을 입안에서 모았다가 입 밖으로 한 번에 터트리는 순간적인 움직임으로 발생되는 말소리이다.  


지금 우리 아이가 옹알이를 하고 있다면, 다시 한번 귀를 기울여 소리를 들어보자. 우리 아이의 옹알이에 모음과 자음이 얼마나 다양하게 섞이고 있느냐는 첫 단어가 언제쯤 나올 수 있는지를 예측해준다. 아직 단순한 모음을 발성하는 단계라면, 다양한 자음들이 출현하여 모음들과 조합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들이 필요할 것이고, 다양한 자음과 모음들이 뒤섞인 복잡한 옹알이를 내고 있는 단계라면, 조만간 단어와 비슷한 말소리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양한 자음과 모음들이 섞인다고 해서 우리 아이가 진짜 첫 단어를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단어'라는 것은 말소리에 의미가 덧입혀져야 완벽한 첫 단어가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이해 언어들이 축적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보통 이 시기를 '침묵의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아무런 소리가 없는 깜깜한 침묵의 시기가 아니라 끊임없이 옹알이를 터트리지만 의미 있는 단어가 출현되지 않는 시기라고 설명할 수 있다.


보통은 아이들이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주는 이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라는 의미를 가진 '엄마'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기까지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아이들마다 이르면 돌이 되기도 전에 첫 단어가 출현할 수도 있고, 혹은 돌이 한참 지나서야 나타나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게는 돌 전후에 의미 없는 공허한 소리를 벗어나 '엄마'라는 의미 있는 첫 단어를 사용하게 된다.


우리가 그토록 듣고 싶어 하는 '엄마'라는 말소리는 입술을 한번 붙였다가 떨어뜨리며 공기를 내뱉는 단순한 동작만으로 낼 수 있는 소리이기 때문에, 옹알이에서도 그 소리를 빈번하게 들을 수 있다. 간혹 이를 잘 모르는 엄마들은 옹알이로써의 '엄마'를 듣고는 우리 아이가 벌써 말을 했다라며 매우 감격스러워한다. 하지만 아이가 '엄마'라는 말소리를 일관되게 엄마인 나에게만 부르는 경우에는 첫 단어의 출현을 인정할 수 있지만,  보통 돌 전에 나타나는 '엄마'라는 말소리는 옹알이인 경우가 많다.


텅 빈 말소리에 의미를 담기까지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요구되며,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은 다양한 단어들을 이해하며 차곡차곡 어휘를 쌓아가는 시간을 갖는다.

말이 느린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는 우리 아이가 첫 단어를 말하기 전까지 1년여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생활연령과 언어 연령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 둘은 완전히 다르다. 생활연령은 말 그대로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시간부터 살아온 생물학적 시간을 의미하며, 언어 연령은 현재 아이가 말할 수 있는 언어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 주는 지표이다. 따라서 말이 느린 아이의 생활연령이 12개월이라고 해도, 1년이 지났으니 곧 '엄마'라고 말할 수 있겠구나가 아니라, 현재 아이의 언어 연령을 예측해보고 1여 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의미 있는 첫 단어가 나올 수 있겠구나를 계산해보아야 한다. 우리 아이가 현재 발성 놀이를 하고 있는 단계라면 언어 연령이 4개월 정도라고 예측해볼 수 있고, 그로부터 반년 정도 적절한 언어 자극을 받으며 다양한 옹알이로 말하는 시간을 충분히 보낸 뒤에야 우리 아이는 '엄마'라는 의미를 담은 첫 단어를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엄마를 '엄마'라고 부를 수 있게 되기까지 우리가 알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전쟁 속에서 끊임없는 연단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말이 느린 아이들은 어떠한 이유가 되었든지 간에 그 시간 속에서 걸림돌에 걸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를 아이 혼자서는 알 수가 없기 때문에 헤매고 있는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길을 안내해주는 길잡이의 역할을 '엄마'가 해주어야 한다.  



오늘 우리 아이가 나를 부르는
'엄마'라는 말소리는
가짜 엄마인가요, 진짜 엄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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