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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 엄마 Jun 28. 2020

책과 아이가 사랑에 빠지는 방법

'가정 문해 능력(family literacy)'은 문화로 전승된다.


‘가정 문해 능력(family literacy)이란?
가정에서 아동에게 어떻게 문해 능력을 노출시키느냐에 따라 아동의 문해 능력이 결정된다는 것으로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전달되는 문화라고도 할 수 있다(Heath, 1982; Gilmore, 1986).


문해 능력이란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유네스코(2003)에서는 "문해란 다양한 내용에 대한 글과 출판물을 사용하여 정의, 이해, 해석, 창작, 의사소통, 계산 등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 정의하였다.


문해 능력은 우리 아이의 언어능력을 기본 바탕으로 발달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해 능력은 학교나 교육기관에서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그 기초가 마련되는 것이기 때문에 '가정 문해 능력'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가정 문해 능력'은 한 가정 안에 형성되는 고유문화 중 하나로써 세대를 거쳐 전승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라 쉽게 넘길 수 있지만,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면, 한 아이가 자신의 인생에서 얼마나 깊이 책과 사랑에 빠질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짓는 거룩한 습관이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것은 아이의 삶에 고스란히 스며들며, 아이의 인생을 통틀어 영향을 미치는 능력이기도 하기에 결코 쉽게 넘길 수 없는 이야기이다.


나는 '가정 문해 능력'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유산으로 남겨줄 수 있는 것이 없지만, '가정 문해 능력'. 이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물려주리라 다짐했다.


아이는 자신의 부모와 그리고 유년시절의 환경을 선택하지 못한다. 오로지 부모의 삶이 아이의 삶과 문화를 결정지을 뿐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부모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아이는 부모의 삶이 자신과 맞건 맞지 않건 간에 그 문화에 익숙해지고 자연스레 자신의 삶에 녹여내기 때문이다.


결혼 5년 차에 어렵게 찾아온 생명을 마주하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겪어내느라 아이가 태어난 후 50여 일이 될 때까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난 지 두 달 정도가 되자 어느 정도 신생아 생활에 익숙해지고, 잠도 조금씩 깊게 잘 수 있게 되자 그제야 어렴풋이 무언가 해야 한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는 아직 몸도 가누지 못하고 내가 안아주지 않으면 하루 종일 누워만 있어야 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기나긴 시간을 버텨내려면 나는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그때 불현듯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단어가 바로 '책'이었다.


나는 그날부터 아이가 알아듣던 말던, 아이와 똑같은 자세로 옆에 누워서 소리가 나는 헝겊책이며, 알록달록한 그림책들을 들이밀었다. 처음에는 정말 3초 정도 집중하는 것 같았다. 노랫소리가 나는 책을 볼 때는 그나마 5초 정도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틈만 나면 아이와 누워서 손을 쭉 뻗어 책을 펼치고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겨갔다. 처음에는 흐릿하던 눈빛도 시간이 흐를수록 차츰 초점이 책의 어딘가에 맞춰지는 것이 느껴졌고, 백일 정도가 되니 나의 손가락을 따라 아이의 초점이 움직였다. 뒤집기를 시전 하면서부터는 아직은 목을 꼿꼿이 세우진 못했지만 물고 빨더라도 헝겊책을 그 앞에 혹은 그 주변에 주섬주섬 가져다 놓았다. 아이가 책에 손을 뻗거나 어떤 반응이라도 보이면 아이의 얼굴 가까이로 환하게 웃는 엄마의 미소를 뿅 하고 발사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혼자 앉기는 버겁지만 아기의자에 앉아있을 수 있을 때부터는 의자 앞에 선반을 끼워서 장난감들도 올려놓지만  아이가 선호하는 책도 올려주거나 아이와 마주 앉아 책을 넘겨주었다.


아이는 엄마가 책을 넘기는 모습을 보며 책을 어떻게 넘기는지부터 학습하게 된다. 또 엄마가 책의 그림을 짚어가며 무언가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그림에 이름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알록달록한 그림을 보며 색의 이름도 알려주고, 움직이는 행동을 묘사한 그림을 보면서는 직접 따라 하면서 아이의 관심을 이끈다. 어떤 그림을 보면서는 깔깔깔 웃다가 어떤 그림에서는 깜짝 놀래기도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아이는 그림 안에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하나씩 알아가게 된다.


그러기를 삼 년,  결국 우리 아이는 책과 사랑에 빠졌다. 네 살인 지금까지도 한 번도 내가 먼저 '우리 책 보자, 책 볼 시간이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이가 먼저 '엄마, 책 보고 싶어, 책 보고 잘 거야.'라고 말한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가정의 문화도 한몫했으리라 생각한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 집에는 TV가 없었다. 아이를 키워본 부모들은 모두 다 알겠지만, 아이들은 경험하지 않은 세상에 대해서는 절대로 떼를 쓰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태어나면서부터 강렬한 시각적인 자극에 노출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책이 유일한 시각자료로써의 가치를 이어갈 수가 있었다. TV가 만들어내는 소리들이 사라지자 나와 남편도 책과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하루를 채우는 소리들은 간간히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비틀즈 노래 한 소절이 채워주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고요한 침묵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아빠가 책을 넘기면 아이는 달려가서 다른 책을 꺼내와 아빠에게 질세라 책을 넘겼다. 그러면 나도 거실 한편에 조용히 앉아 그 시간을 함께 했다.


또 한 가지 아이가 책과 사랑에 빠지게 하려면 부모가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루틴'이라는 단어이다.

나는 아이가 다른 욕구가 있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다든지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책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경우에는 절대로. 무슨 일이 있든지 억지로 책을 보게 하지 않았다. 중요한 포인트는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어떤 것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좋아하려면 그 사물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가 형상화되어야 한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단 한 번이라도 개입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전처럼 맹목적으로 매달리지 않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원하지 않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패턴을 만들어주겠다는 명목 하에 억지로 똑같은 시간에 반복적으로 루틴 화할 수 있다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다. 아이들은 그 당시엔 멋모르고 넘길지 몰라도 반드시 그것을 행동으로 돌려준다. 서서히 자신의 손에서 책을 놓아버린다.


이렇듯 가정에서 어린 시기부터 아이에게 그림책을 노출하고 책을 어떻게 넘기는지, 책 안에 있는 그림과 글자에 어떤 의미들이 포함되어 있는지,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는지를 부모와 아이가 함께 하는 습관을 들이면 그 습관은 아이의 평생을 함께한다. 그것이 바로 '가정 문해 능력' 되는 것고, 이 능력은 아이의 언어능력 또한 결정한다.  

아이들은 단어를 많이 알수록 읽는 것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읽기를 잘하면 더 많이 읽을 수 있다. 이러한 패턴은 어휘 또한 더 많이 노출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즉, 아이의 읽는 양이 어휘능력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중한 나의 아이에게 가정 문해 능력을 거룩한 유산으로 물려주도록 하자.


부모의 삶에 책이 있다면,
아이의 삶에도 책이 있다.




Reference
1. Erika Hoff(2006). 언어발달(Language Development), 시그마프레스.
2. UNESCO Education Sector, The Plurality of Literacy and its implications for Policies and Programs: Position Paper. Paris: United National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 2004, p. 13, citing a international expert meeting in June 2003 at UNESCO. http://unesdoc.unesco.org/images/0013/001362/136246e.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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