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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 엄마 Sep 01. 2020

어른들이 미안해.

이런 세상을 마주하게 해서.

4살 된 아들을 키우고 있어요.

느지막이 눈을 떠 비타민 한입과 물 한 컵을 먹이고, 밤새 참았던 쉬도 누이고요.

급히 아침도 먹이지요.

하루 종일 아이와 뒹굴며 폴리 본부 놀이도 하고 온갖 중장비 차들을 소집해 공사 놀이도 하고요.

조금 심심하다 싶으면 레고 놀이도 하고 크고 작은 블록들을 모두 꺼내서 성도 만들었다가 자동차도 만들었다가 멋진 건물들도 만들죠.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도 읽고 싶은 만큼 마음껏 꺼내서 아이와 함께 뒹굴며 하루 종일 읽어도 시계를 보면 이제 겨우 12시가 조금 넘었네요.

점심을 만들어줘야 할 시간이예요.

"오늘은 뭐 먹을 거야?

떡국 먹을까, 아니면 주먹밥 먹을까?"

오늘도 떡보 아이의 선택은 떡국이네요.


이렇게 떡을 먹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떡을 좋아하는 아들이에요.

최애 떡은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방금 만든 뜨끈뜨끈한 가래떡이고요, 꿀떡도 좋아하고 바람떡도 좋아하고

어릴 적부터 '이 떡'이라고 불러왔던(왜 이 떡이라고 부르게 되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절편도 좋아하고, 밥 한 끼 대용으로 딱 좋은 약식도 좋아하고, 든든한 백설기는 떡 사러갈때마다 네 다섯개씩은 꼭 챙기지요. 백설기를 비롯해서 온갖 떡들을 항시 냉동고에 보관하고 있어요.

우리 동네에는 이쪽 지하철역과 저쪽 지하철역 사이에 떡집이 3곳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3곳을 돌아다니면서 떡을 쟁여놔요. 3군데 떡집 모두 단골이라서 인심 좋은 사장님들이 아들을 너무 예뻐해 주시고, 갈 때마다 떡을 한 아름씩 안고 오지요. 지금은 못 뵌지 오래 되었네요.


저녁 준비를 하는데, 아이가 아빠에게 물었어요.

"아빠, 코로나는 도대체 언제 끝나요?"

부엌에서 밥 차리다 말고 무심코 들은 아이의 질문에 왜 눈시울이 붉어지고 코가 시큰해지는 걸까요.


글쎄, 규하야.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걸까?

워낙에 잔걱정이 많고. 메르스 때 S병원에서 근무했던 경험으로 트라우마도 생겨서 코로나 사태 이후로

아이를 데리고 제대로 외출을 한 적이 없었어요.

그렇게 좋아하는 단짝 친구와도 올해 딱 2번 만났네요.

전 조금만 참고 조금만 견디면 금세 이 시기가 지나갈 줄 알았어요.

우리 가족이 조금 더 조심하고, 아무리 가고 싶은 모임도, 보고 싶은 사람도 조금만 더 참으면 그리운 사람들을 곧 만날 수 있겠지 라고 생각했어요.


절망스러운 뉴스들을 보며 아이가 아직은 어려 이 상황들을 스스로 알 수 없다는 것에 감사를 해야 할까요.


오늘도 아이는 저와 마주 앉아 레고를 만들며 하루를 보내요.

어린이 집도 가지 않는 아이가 오늘 하루 만난 사람은 엄마와 아빠가 전부랍니다.

언제까지 아이와 이런 시간을 버텨낼 수 있을까요.


늦은 밤 오랜만에 집 근처에 물건을 사러 나갔던 날(확진자의 수가 20여 명 정도가 되던 때).

잠깐이라도 마스크가 벗겨지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아는 아이를 보며, 아이에게 말해주었어요.


"규하야, 원래 마스크를 쓰지 않고도 바깥에 나올 수 있던 때가 있었어.

기억나지?

지금은 우리 서로 힘들고 답답해도

조금만 더 참고, 견뎌내면

곧 옛날처럼 가고 싶은 곳에도 마음껏 가고, 규하가 만나고 싶은 이모랑 친구도 만나고

할머니 집에도 놀러 가고 그럴 수 있는 날이 올 거야.

그때가 되면 엄마랑 아빠랑 여행도 실컷 다니자"


종일 앉아 무언가만 만지작거리다 곤이 잠이든 천사같은 아이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하루가 또 지나갑니다.


오늘도 이런 하루를 보내게 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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