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를 시작합니다
"통역하시는 분은 연기 안 하셔도 돼요"
방송 현장에서 전현무 씨가 나에게 한 말이었다.
때는 2019년, JTBC에서 방송된 스테이지 K의 촬영 현장이었다. 미국, 중국, 일본, 프랑스, 독일, 태국 등등 세계 각국의 Kpop 팬들이 한국 아티스트들의 댄스로 토너먼트를 하는 프로그램, 통역사들은 무대 뒤에 마련된 동시통역 부스에서 각자의 언어로 진행자와 패널들의 말을 전 세계 참가자들에게 동시통역을 해주었다. 참가자들의 말은 녹화 후에 자막으로 입혀질 예정이어서 시차를 두고 순차통역으로 이루어졌다. 참가자가 무대 위에서 이야기를 하면 통역사들의 목소리는 스튜디오 전체에 울려 퍼지는 방식이었다.
그날은 레드벨벳 커버댄스를 준비한 일본인 소녀들이 우승을 거머쥐었다. 딸 같고 조카 같은 아이들을 응원하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기쁨과 벅참으로 가득한 일본 중학생 소녀들의 소감에 나도 모르게 그 감정을 고스란히 내 목소리에 얹어서 통역을 하고 만 것이다.
"저어엉마알 기뻐요, 정말 기뻐요! 감사합니다아아"
감정 과잉 통역사의 목소리에 전현무 씨가 한 마디 했다. “통역하시는 분은 연기 안 하셔도 돼요. 왜 마음을 담아서 통역하시는 거예요"
방송에는 이 부분만 나갔지만 전현무 씨가 "통역사님, 통역사님~ 대답을 좀 해보세요" 하면서 현장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켜 주었다. 순간 현장에 있던 출연진은 물론 장비업체, 스태프, 다른 언어 통역사 모두 초토화. 나도 부스 안에서 파트너 선생님과 박장대소하다가 의자채로 넘어갈 뻔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아직 통역이 남아 있었다. 아이들의 소감이 계속 이어져야 하기 때문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온 힘을 다해 꾹 누르며 다음 통역을 이어갔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순간적으로 모든 감정을 일시정지해야 했다.
"이.렇.게 멋.진. E.X.I.D. 팀.과. 함.께. 승.부.를. 겨.룰.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그.리.고 우.리. 멤.버.들.과. 함.께. 4.강.에. 올.라.가.게. 되.어.서. 정.말. 행.복.해.요.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다음 통역은 흡사 기계음 같은 건조한 말투로 통역을 했다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한 통역이지만 앞과 뒤의 온도차가 극명했다.
얼마 후 이 부분을 방송에 꼭 내보내고 싶다는 작가님의 연락을 받았다. 방송국에서 잘 살려주신 덕분에 열탕과 냉탕을 오가는 온도차 통역 영상을 기념으로 남길 수 있었다. 지금도 박제된 그 순간을 되돌려 볼 때면 당시의 감정이 되살아난다. "저어엉마알 기뻐요, 정말 기뻐요! 감사합니다아아" 이 말을 하던 나는 그날 그 일본 중학생이었다.
이렇게 통역사들이 발언자의 톤과 매너에 동화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전문통역의 방식에 있다. 통역사들의 통역 화법은 “저는” 으로 시작하는 1인칭이다. 또 "정말 기쁘시다고 합니다"와 같은 간접 화법이 아니라 "정말 기쁩니다"와 같은 직접 화법으로 통역을 한다.
1인칭 화법의 힘은 매우 강력하다. 흡사 배우가 배역에 빠져들어 그 역할에 빙의하듯 통역사가 연사와 혼연일체가 되게 하는 입구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전문통역사 여부를 알려주는 표지이기도 하다. 만약 내가 보고 있는 통역사가 3인칭 화법으로 통역을 하고 있다면? 99% 전문통역사가 아니다. 통역사들은 통대 입시 때부터 1인칭으로 통역 훈련을 하기 때문에 3인칭으로 통역하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통역사가 3인칭을 쓴다면 아직 새내기 통역사가 긴장한 나머지 실수를 했거나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 뿐이다.
예를 들면 나의 경우 연사가 지나치게 비윤리적이거나 비인도적인 발언을 할 때 연사와의 거리두기를 위해 3인칭을 쓸 것 같다. 실제로 한 번은 누가 육두문자를 통역해달라고 해서(학술적인 이유가 아니라 그야말로 상대에게 욕을 하기 위해) 그 부분만 따로 떼어서 3인칭으로 한 적이 있었다. 통역사 극한 직업
아무튼 인칭은 전문통역사인지 여부를 즉각 알아볼 수 있는 쉬운 판단 기준이 된다. 한 번은 경주에서 개최된 한 국제회의 자리였다. 아시아태평양 각 대표도시의 시장님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자리였다. 통역사는 한영중일 언어. 한 세션에서 한 스탄국가의 시장님이 본인의 발언은 따로 대동한 통역사에게 맡길 것이라고 했다. 순간 부스 안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 통역을 바로 받아서 일본어로 통역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부스 속 모든 통역사의 관심사는 딱 하나였다. 오롯이 통역 품질.
모두가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는 상황, 그러나 시작된 첫 마디는 “시장님께서는…”이었다. 우리는 눈빛을 교환했다. 그 때의 통역사 단톡방에도 집중 집중! 준비 준비! 같은 메시지가 올라왔다. 만약에 있을 돌발상황을 같이 대비하자는 신호였다. 몇 십 개국이 참가하는 행사에서 만약 특정 언어 통역이 제공되지 않을 때 순차통역사를 대동해 올 때가 있는데, 이때 돌발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통역이 정확하지 않거나, 시차가 지나치게(?) 발생하거나(순차통역은 보통 연사의 말이 끝나는 1-2초 이내에 나와야 한다. 넘으면 사고로 간주한다), 1분 발언이 5초로 줄거나, 그 반대거나, 대동한 통역사가 통역을 포기하는 현장도 있었다.
이 날은 다행히 통역사가 중도 포기하는 일은 없었지만 발언 중간에는 “저에게 말씀하신 내용 중에는” 과 같은 본인의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이것은 통역과 발언 사이의 묘한 줄타기였다. 그 자리의 발언 권한은 그 사람이 아니라 시장에게 있고, 통역사는 시장의 입을 대신하는 존재여야했다. 그러나 그는 시장의 입과 본인의 입 사이 어딘가를 오가고 있었다. (물론 전문통역사라고 개입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원칙은 후에 또 살펴보겠다)
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도 앞으로 통역하는 현장을 볼 기회가 있다면 통역사가 "저는"으로 말을 시작하는지 눈여겨 보기를 바란다. 쉽게 전문통역사인지 아닌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현대 팝 아트의 거장 무라카미 다카시 선생님을 통역했던 때의 일이다. 어느 인터뷰에서인가 선생은 가난한 어린 시절을 만화 덕분에 웃으며 버틸 수 있었다고 한 적이 있었다. 선생의 기억에는 어린 시절 살던 곳엔 행랑채 같은 빈민 주택가가 즐비했고, 저녁 풍경은 화로에 생선을 굽는 아주머니들, 새카만 재를 뒤집어 쓰고 카본 공장에서 돌아오는 아저씨들의 모습이 있었다고 했다. 한국 강연에서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만 이야기했을 뿐이었는데, 늘어선 행랑채와 생선 굽는 연기 같은 것이 마치 내 기억인 것인마냥 함께 떠올랐다. 겪어본 적 없지만 익숙한 거리의 풍경, 그 안의 소리와 냄새까지도 함께 상기되는 듯 했다. 내가 장자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깨어 장자가 된 것인지, 나는 진정한 나인지, 나비가 나로 변한 것인지라고 말한 장자의 호접몽을 통역을 통해 유사 체험할 수 있었다.
연사와의 혼연일체, 물아일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결정적 요소는 바로 촘촘한 사전 준비다. 통역사들은 통역을 앞두고 반드시 사전 준비의 시간을 가진다. 특히 특정 1인의 명사 강연을 준비해야 하는 경우는 그 사람의 생애와 업적, 고난과 성취의 60년 사를 며칠에 걸쳐서 파고들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현장에서도 연사의 말에서 흘러나오는 한 마디가 어제 본 영화 같다. 과장을 보태본다면 전생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통역을 앞두고는 여러 조각들을 모으며 내가 통역할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다행히 요즘에는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미디어에서 과거의 정보들을 찾아보기 쉽다. 나보다 15년 정도 선배님 시절에는 통역 자료를 우편이나 팩스로 받아야 했고, 인터넷이 웬말이냐 도서관 백과사전과 지난 신문 스크랩에서 겨우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클릭 몇 번에 세상의 모든 정보가 손에 들어오다니 정보가 있을수록 유리한 통역사들에게 너무나 친화적인 환경이 아닐 수 없다. 흩뿌려진 작은 조각도 모이고 모이면 유니버스가 된다. (통역사판 이삭줍기)
처음에는 그 사람의 말투나 자주 쓰는 표현, 자주 던지는 화두 같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영상이나 글을 볼 때도 있는데, 그렇게 하나씩 파고 들어가면 그들의 철학, 살아온 길, 삶의 태도와 자연스럽게 가닿게 된다. 쉽게 감화되는 나는 매번 그렇게 그 사람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덕질과 비슷한 것이라 보면 된다.
물론 여기에서 머무르면 팬이지 통역사가 아닐 터. 조사를 통해 알게 된 그 사람의 신조나 철학에 맞춰, 그리고 연령대나 캐릭터, 사회적 위치 등에 맞춰서 미리 통역어의 옵션들을 나열해본다. 70대의 원로 정치인이 쓸 법한 어휘나 표현과 30대의 아티스트가 쓸 법한 어휘와 표현은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연령대여도 사람마다 쓰는 언어가 다르다. 스쳐 지나가는 발언이라도 내가 느낀 전율과 깨달음을 청중에게도 전할 수 있도록 행간의 의미를 곱씹으며 통역어를 선택하려고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목소리의 톤도 감정도 자연스럽게 닮아가는 일이 많다. 목소리 뿐이 아니다. 제스처나 표정까지도 따라 하게 될 때가 있다. 말을 늘리거나 강조하는 부분, 크게 말하고 작게 말하는 부분도 영상을 되돌리는 것처럼 그대로 따라 할 때도 있다.
한 번은 Kpop 퍼포먼스 디렉터의 인터뷰에서 거울이 없어도 칼군무를 가능케하는 훈련 비법에 관하여 조명 아래서 옷의 주름을 세면서 춤을 추는 훈련법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통역을 하다가 보니 무의식중에 그대로 옷 주름 만드는 포즈까지 따라하고 있었다. (후일 다른 인터뷰로 그 기자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그 날 너무나 인상적이었다고 전해주셔서 내가 그러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식해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들은 그 말을 같은 온도로 전하고 싶어서 였을지, 아니면 이미 내가 연사의 말에 푹 빠져 광신도가 되어서일지 아마 그런 류의 이유일 것 같다.
빙의에 만족하셨던 것일까. 어떤 고객사로부터는 직원으로 일해보지 않겠냐는 영입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다단계 회사였다. 일이 많이 없던 시절이어서 약간 혹했으나 정중히 거절했다. (지금쯤 다이아몬드가 되었을 수도)
반대로 처음부터 빙의를 요청하는 의뢰인들도 있다. 한 IT 기업의 영업 회의 자리였다. 아시아 총괄 대표님이 실적 저조와 내부 문제에 대해 쓴소리를 하겠다면서, 부담스럽겠지만 부디 본인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해 달라며 심지어 꼭 반말로 부탁한다고 당부하셨다. 이해는 되었던 것이 사정상 회의는 원격으로 진행이 되었고 통역도 빙의도 없다면 마치 TV에서 더빙 없는 외국 영화를 보는 느낌으로 대표님께 혼나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야 늘 하던 것이라 괜찮지만 만약 대표님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격앙되시면 어떻게 하지? 그것도 반말로 소리를 지른다거나? 이런 고민은 있었다. 나는 30대, 직원 분들은 50-60대. 같은 회사였다면 까마득한 후배일 나에게 쓴소리를 들을 직원분들의 거부감도 고려해야 했다. 심지어 회의실에서 우리의 자리는 지극히 가까웠다. 바로 앞에 앉은 전무님까지는 채 1미터도 없었다.
하여 미리 상황을 직원 분들께 설명한 후, "대표님이 오늘 저에게 빙의 통역을 요청하셨어요. 심지어 꼭 반말로 해달라고 당부하셔서요... 아마 다소 듣기 힘든 말씀이 나와도 그대로 통역해야 할 텐데 너른 양해 부탁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사전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딸깍 스위치를 켜고 그 온도감을 그대로 통역하였다. 나도 직원분들도 그 순간만큼은 각자의 역할을 연기하였다.
문제는 나는 1인 2역, 1인 다역을 연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다중인격장애를 겪는 드라마 주인공이 따로 없었다. 질책하는 대표님과 시정하겠다는 직원은 다른 사람이지만 그 창과 방패를 통역하는 것은 나 하나.혼내는 것도 나, 혼나는 것도 나라는 것이다... 가공해 본다면 이런 식이었다.
대표님-통역사: "이게 시스템상 말이 된다고 생각해! ( o`ω′)ノ"
직원 -통역사: "죄송합니다.(┬┬﹏┬┬)
대표님-통역사:"정신을 어디다 둔 거야!!(/// ̄皿 ̄)○~"
직원 -통역사:"분명 확인을 했는데 제 불찰입니다(≧﹏ ≦)"
나로서는 10초마다 성격이 바뀌는 다중인격 모노드라마일 뿐이었다. 1미터 앞에서 이 모습을 바라본 직원분들은 어땠을까? 다행히 '통역사님이 제일 고생 많으셨어요' '저희 때문에 연기도 하시게 하고 죄송해요' 미소로 훈훈하게 마무리를 했다. 너무 수시로 감정을 바꾼 탓이었을까? 유독 그 날은 더욱 피곤했다.
연사와 통역사의 톤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동시통역 때는 오히려 되도록 감정기복 없이 되도록 일정한 목소리 크기와 높낮이를 유지하려고 한다. 시차를 두고 하는 순차통역은 이미 끝난 연사의 온도감을 재연해주는 것이 현장 분위기를 같은 톤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동시통역은 눈 앞에서 실시간으로 연사의 목소리 톤이나 감정의 높낮이, 표정, 제스처가 보이기 때문에 재연의 필요가 낮아진다. 게다가 동시통역은 리시버를 통해 음성으로만 듣는 것이기 때문에 청중들이 소리에 더 집중을 해야 한다. 목소리 크기나 감정에 기복이 심해지면 오래 듣기에 피로감이 커진다. 때문에 차분하고 담담하게 통역하는 방식이 더욱 선호된다. 실제로 연차가 높은 베테랑 통역사들의 동시통역 목소리를 들으면 대단히 차분하는 것이 공통점이다. 정확한 정보 전달이 우선시되는 것은 순차나 동시나 동일하다.
그렇다면 순차통역에서 통역사는 항상 연사와 똑같은 온도감일까? 그렇지는 않다. 한 번은 변호사님이 일본인 중고등학생들에게 법률적인 내용을 고지해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이들이 어려워서 잘 이해를 못 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라고 질문하니 변호사님이 답했다. "그럼 저는 평소대로 말할테니 통역사 선생님께서 천천히 알기 쉽게 통역을 해주시겠어요?"
서늘하게 법률용어를 빠른 속도로 말씀하시는 변호사님과, 유치원 선생님처럼 천천히 친절하게 설명하는 통역사. 온도감이 극과 극이었지만 우리의 조합은 절묘했다. 연사는 추가 노력 없이 본인의 임무를 완수하여서 좋았고, 나 역시 끄덕이는 학생들을 보면서 소통의 목적을 달성, 임무를 완수한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2주 정도 이어진 그 작업 기간 동안 우리는 매시간이 끝날 때마다 슬램덩크의 서태웅과 강백호가 된 듯 눈빛의 하이파이브를 나누었다.
반면 연사는 너무나 담담한데 통역사 혼자 펑펑 울었던 적도 있다. 보통 연사가 감정이 격해지고 울먹거리면 빙의해서 통역하다 울컥할 때가 있는데 연사는 멀쩡한데 통역사만 오열하는 일이 나에게 일어났었다. 딱 한 번이지만. 눈물을 줄줄줄 흘리면서 입은 계속 통역하는 상황이랄까, 얼굴을 위아래로 나누면 위는 오열하는데, 아래는 또 아무렇지 않은 척 통역을 이어가는... 뭔가 감성 넘치는 상황이었을까 싶겠지만 놀랍게도 의료학회였다.
만성기의료학회라고 해서 만성기질환에 관해 의료지식을 주고 받는 학회였다. 벌써 10여년 전의 일인데 메인 세션은 대선배님들이 맡으셨고 나는 욕창 & 치매 세션을 담당했다. '욕창' 말은 들었어도 실제로 사진이나 영상을 리얼하게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욕창이 무서워서 울었느냐고? 그건 아니다. 간혹 인체 해부 통역 때 시체를 보는 일도 있고, 수술 현장 생중계를 보면서 통역을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건 한 일본 병원의 발표와 영상 때문이었다.
보통 의학 학회에서는 감성을 싹 뺀 이성적인 논의들이 주로 오가지 않는가. 보통 우리 병원에서 어떤 치료를 했는데 어떤 결과가 있었다는 식으로. 이 병원은 욕창이 심한 분들이 찾아갈만큼 이 분야에서 완치율이 상당히 높고 재발률이 현저히 낮은 치료법을 개발, 적용한 곳이었는데, 그게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니 혁신적인 “기술”은 아니라 의료진들이 하기에 저엉말 번거롭고 귀찮은 치료법이었던 것이었다.
원리가 정말 간단했다. 소독하기, 약바르기, 거즈에 물 적셔 겹쳐 올리기, 랩핑하기, 시간 쟤서 갈아주기, 무한 반복-원리는 단순, 매번 하기 매우 번거로운 작업이었다.
"저희가 그걸 해냅니다" 하고 말로 설명하거나 한 게 아니었는데, 마음으로 그걸 느낄 수가 있었다. 살이 패여서 뼈가 드러났던 욕창 환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점점 나아가고, 나중엔 웃음을 찾아가는 사진,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아주 오열을 하고 말았다. 너무 주책인가 싶어서 옆을 보니 파트너 선생님도 입을 틀어막고 흐느끼고 있었다.
총알띠를 온 몸에 두르고 비장하게 전쟁터에 비장하게 들어갔는데, 지나가던 할머님이 꼭 안아주신 느낌이랄까. 그 전에도 그 후에도 통역하다 이렇게 울어본 일이 없어서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동시통역이었기 때문에 부스 속에 숨어 있었으니 그 날 오신 관계자 그 어느 분도 우리가 울었다는 것은 알 수 없었겠지만. 그날 그 분들의 숭고한 뜻과 희생정신이 우리의 통역을 통해 한 분이라도 더 많은 분께 전달되었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