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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인칭관찰자 Jun 25. 2020

익숙한 그 집 앞

수필

익숙한 그 집 앞 도로


내 나이 9살, 89년의 초여름, 집주인이었던 전도사님이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 가족을 길바닥에 쫓아내던 다음날, 아침 일찍 부랴부랴 짐을 싸들고 이사 온 동네. 다니던 학교까지 삼십 분을 걸어가야 했기에 다른 학교를 다니던 동네 또래들이 더 낯설게 느껴지던 곳. 하지만 어머니는 삼 형제 모두 졸업할 때까지 전학을 보내주지 않으셨다.


낯익은 골목

빨간 벽돌 건물 자리는 우리가 살던 9년 동안은 악취가 나는 공터였다. 주인집 대문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던 푸세식 화장실을 대신해 삼 형제에게는 때론 화장실이기도 했고, 그렇게도 집안에 득실거리던 쥐와 바퀴벌레들의 소굴이기도 했다.


우리 집 대문이었던 낡은 새시 문

                                                                      

이 문을 열면 우리가 씻고 어머니가 음식을 하시던 조그만 부엌이 있고 그 중간에 방으로 들어가는 판자문이 있었다. 겨울밤이면 위 쪽에 뚫린 구멍으로 "쉐~~" 하던 바람 소리를 들으며 찬 물에 쌀을 씻고 설거지를 하시던 어머니의 한숨은 쉬이 그치지 않았다.                                                  


나만의 하늘


나는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호스와 문 사이 조그마한 공간에 쪼그려 앉았다. 그러고는 이 하늘에 희끗희끗 떠 있던 별을 바라보며 얼굴 한 번 뵌 적 없던 외할아버지를 떠올렸다. 그 시절 진정 내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은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뿐이라고 믿었다.                                                  


                                                                

동네 아이들의 가댁질, 딱지치기 소리가 그칠 줄 몰랐던 시끌벅적했던 골목.
차가 들어오기에는 비좁아서 여름이면 안심하고 돗자리를 펴 잠을 청하던 곳.
어떤 집에 잔치가 있던 날은 밤새 사람들의 노랫소리, 웃음소리를 들어야 했고
어떤 집에 싸움이 있던 날은 유리창 깨지는 소리, 아기 울음소리에 잠을 설치기도 했다. 


인심 좋은 할아버지 댁 나무 대문

우산 뼈대로 만든 칼, 병뚜껑을 납작하게 편 후 끝을 가위로 오려 만든 표창을 다트 삼아 던졌던 나무 대문. 그 덕에 고즈넉했던 나무 대문이 며칠 만에 흉한 구멍으로 뒤덮였지만, 이 집주인이던 할아버지께서는 "이 놈들~!" 하며 겁만 주실뿐 회초리를 드시지도, 대문 값을 물어 달라고도 하지 않으셨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현실을 딛고 선 그들은,  모두 이 곳을 떠나갈 날만을 꿈꿨다. 주 6일 12시간 넘게 일하며, 오직 자식들을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갈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으로 살아가던 사람들. 그리고 그 우직한 사람들 속에 우리 엄마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이 이 동네를 떠나게 만든 것은 아파트 청약 당첨이 아니라 아버지의 두 번째 사업실패였다. 

그렇게 9년이라는 이 달동네 생활을 끝내고 또다시 어디론가 쫓겨가던 그 날. 어머니는 이 골목길을 내려가며 소리 없이 눈물을 삼키고 계셨다. 아마 당신도 남들처럼 박수받으며 떠나겠다고 절치부심했던 시간들이 가져다준 허무함 때문은 아니었을까?


10년 만에 찾은 그곳은 우리 집 옆 공터만이 바뀌었을 뿐 모든 것이 그대로인 것 같았다. 
그랬다. 우리 집 대문처럼, 집 앞 골목길처럼                                                  


                                                                              

잘난 것 하나 없던 날 그토록 좋아해 준 참 착했던 여자아이와 매일 같이 통화하던 공중전화도



해질녘이 되면 할머니가 늘 앉아계시던 의자도 

       


어둑어둑 해져가는 긴 골목길도...


모두 그대로 인 것 같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더 이상 소녀의 고운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차가운 공중전화와
이젠 주인을 잃은 쓸쓸한 의자만이 외로이 자리를 지키며
하교한 아이들로 북적이던 골목길엔 정적만이 가득하다. 
오직 변하지 않은 단 하나 


                                                                                

새로 칠한 앞 집 담벼락에 그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휘갈겼던 나의 낙서


<사랑해>


15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저 세 글자의 의미를 나는 여전히 모른다.
그리고 앞으로도 몰랐으면 좋겠다.
의미니 방법이니 모른 채 저 낙서를 하던 그 시절 가슴에서 복받쳐 오르던 그 마음 하나만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 에필로그
조카 사랑이 100일 잔치를 마치고 딱히 할 일이 없어 옛 동네를 찾아가서 사진을 찍어 보았습니다.
미래가 암울한 것만큼이나 과거를 잃어버린 다는 것은 슬픈 일이겠지요?
억지 노력해도 세월은 내 알록달록했던 추억들을 하나둘씩 검게 칠하겠지만
가끔은 이렇게 찾아가 숨어있는 추억들을 다시 색칠하는 것도 해볼 만한 일인 것 같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잊지 않기 위해서..

2007년 11월 22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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