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내 나이 9살, 89년의 초여름, 집주인이었던 전도사님이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 가족을 길바닥에 쫓아내던 다음날, 아침 일찍 부랴부랴 짐을 싸들고 이사 온 동네. 다니던 학교까지 삼십 분을 걸어가야 했기에 다른 학교를 다니던 동네 또래들이 더 낯설게 느껴지던 곳. 하지만 어머니는 삼 형제 모두 졸업할 때까지 전학을 보내주지 않으셨다.
빨간 벽돌 건물 자리는 우리가 살던 9년 동안은 악취가 나는 공터였다. 주인집 대문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던 푸세식 화장실을 대신해 삼 형제에게는 때론 화장실이기도 했고, 그렇게도 집안에 득실거리던 쥐와 바퀴벌레들의 소굴이기도 했다.
이 문을 열면 우리가 씻고 어머니가 음식을 하시던 조그만 부엌이 있고 그 중간에 방으로 들어가는 판자문이 있었다. 겨울밤이면 위 쪽에 뚫린 구멍으로 "쉐~~" 하던 바람 소리를 들으며 찬 물에 쌀을 씻고 설거지를 하시던 어머니의 한숨은 쉬이 그치지 않았다.
나는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호스와 문 사이 조그마한 공간에 쪼그려 앉았다. 그러고는 이 하늘에 희끗희끗 떠 있던 별을 바라보며 얼굴 한 번 뵌 적 없던 외할아버지를 떠올렸다. 그 시절 진정 내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은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뿐이라고 믿었다.
동네 아이들의 가댁질, 딱지치기 소리가 그칠 줄 몰랐던 시끌벅적했던 골목.
차가 들어오기에는 비좁아서 여름이면 안심하고 돗자리를 펴 잠을 청하던 곳.
어떤 집에 잔치가 있던 날은 밤새 사람들의 노랫소리, 웃음소리를 들어야 했고
어떤 집에 싸움이 있던 날은 유리창 깨지는 소리, 아기 울음소리에 잠을 설치기도 했다.
우산 뼈대로 만든 칼, 병뚜껑을 납작하게 편 후 끝을 가위로 오려 만든 표창을 다트 삼아 던졌던 나무 대문. 그 덕에 고즈넉했던 나무 대문이 며칠 만에 흉한 구멍으로 뒤덮였지만, 이 집주인이던 할아버지께서는 "이 놈들~!" 하며 겁만 주실뿐 회초리를 드시지도, 대문 값을 물어 달라고도 하지 않으셨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현실을 딛고 선 그들은, 모두 이 곳을 떠나갈 날만을 꿈꿨다. 주 6일 12시간 넘게 일하며, 오직 자식들을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갈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으로 살아가던 사람들. 그리고 그 우직한 사람들 속에 우리 엄마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이 이 동네를 떠나게 만든 것은 아파트 청약 당첨이 아니라 아버지의 두 번째 사업실패였다.
그렇게 9년이라는 이 달동네 생활을 끝내고 또다시 어디론가 쫓겨가던 그 날. 어머니는 이 골목길을 내려가며 소리 없이 눈물을 삼키고 계셨다. 아마 당신도 남들처럼 박수받으며 떠나겠다고 절치부심했던 시간들이 가져다준 허무함 때문은 아니었을까?
10년 만에 찾은 그곳은 우리 집 옆 공터만이 바뀌었을 뿐 모든 것이 그대로인 것 같았다.
그랬다. 우리 집 대문처럼, 집 앞 골목길처럼
잘난 것 하나 없던 날 그토록 좋아해 준 참 착했던 여자아이와 매일 같이 통화하던 공중전화도
해질녘이 되면 할머니가 늘 앉아계시던 의자도
어둑어둑 해져가는 긴 골목길도...
모두 그대로 인 것 같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더 이상 소녀의 고운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차가운 공중전화와
이젠 주인을 잃은 쓸쓸한 의자만이 외로이 자리를 지키며
하교한 아이들로 북적이던 골목길엔 정적만이 가득하다.
오직 변하지 않은 단 하나
새로 칠한 앞 집 담벼락에 그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휘갈겼던 나의 낙서
<사랑해>
15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저 세 글자의 의미를 나는 여전히 모른다.
그리고 앞으로도 몰랐으면 좋겠다.
의미니 방법이니 모른 채 저 낙서를 하던 그 시절 가슴에서 복받쳐 오르던 그 마음 하나만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 에필로그
조카 사랑이 100일 잔치를 마치고 딱히 할 일이 없어 옛 동네를 찾아가서 사진을 찍어 보았습니다.
미래가 암울한 것만큼이나 과거를 잃어버린 다는 것은 슬픈 일이겠지요?
억지 노력해도 세월은 내 알록달록했던 추억들을 하나둘씩 검게 칠하겠지만
가끔은 이렇게 찾아가 숨어있는 추억들을 다시 색칠하는 것도 해볼 만한 일인 것 같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잊지 않기 위해서..
2007년 11월 22일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