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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인칭관찰자 Jun 25. 2020

늦봄 앓이

편지... K에게

이 맘때였을거야.


변두리 원룸 기숙사에서 함께 삼일을 보낸 후

오후 늦게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던 너를

한 번이라도 더 보겠다고

점심시간을 쪼개 달려온 내게

넌 조심스레 백숙을 내밀었지.


비좁은 냄비 속 잔뜩 웅크린 닭,

졸아서 바닥에 자박이던 국물.

맛은 중요하지 않았어.

재료를 사고, 다듬고, 끓이던 그 모든 시간 동안

넌 나를 생각했을 테니까.


망쳤다며 속상해하던 너를

어떤 말로 위로해주었는지,

내 팔에 꼬옥 매달린 채

나를 배웅하던 너에게

어떤 말로 다음을 기약했는지

난 이제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작별을 고하고

헐레벌떡 내리막길을 달려

황급히 택시에 올랐을 때,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던 너,

그런 너를 바라보며

두었던 나의 다짐은 기억해.


우리 인연의 끝이

이 순간이라 할지라도,

지금 너의 모습을

영원히 기억하겠노라고


차츰 무더워지는 이 맘 때면

문득 그 늦봄의 풍경이 떠오르곤 해.

포니테일,

핑크색 츄리닝,

팔짱을 낀 채

내 모습이 아주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던 너를.



2012년 6월 어느날 처음쓰다

2020년 7월 31일 고쳐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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