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 R에게
상처의 크기는 나이와 비례하지 않는다.
한파를 버티는 아기 새처럼 넌 몸을 잔뜩 웅크리며 입을 열었다.
그 조막만한 입으로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 흘러 나왔다.
네가 겪은 수 많은 상처 중 단지 파편 한 조각을 들은 후 나는
“사람은 누구나 그만큼의 고통은 안고 살아가”
따위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일로 너는
잘 가던 어느 단골집에 발길을 끊었을 것이다.
좋아했던 무언가가 무척 싫어졌을 것이다.
두 번 다시는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 생겼을 것이다.
적어도 너에게 그 일은
도려낸 인연과 돌아볼 수 없는 풍경을 주었을 것이다.
그 어느 날 너는 이 세상 누구보다 아팠을 것이다.
상처의 크기는 나이와 비례하지 않는다.
이제 나는 너가 벗어둔 흉물스런 번데기와
네 등 뒤에 귀퉁이가 조금 이지러진, 채 마르지 않은 날개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