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 23살의 너에게
스물셋의 늦봄
첫 사회생활의 고단함에 지쳐 가고 있던 난,
저수지 옆 신작로를 걸으며
널 생각했다.
종종걸음으로 앞서가며
눅눅해진 나를 위로하던 널
감당 못할 의무를 짊어진 내 어깨에
가만히 머리를 기대던 널
텅 빈 지갑을 속절없이 바라보던 나의 이마에
꿀밤을 주고는 까르르 웃으며 도망가던 널
언젠가는 그런 널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그 시절 내가 살아가는 이유였다.
하지만 끝내 나는 너를 찾지 못했고
잊지 않고 찾아오는 이 계절 속에서
넌 한 토막의 풍경이 되어
텅 빈 거리를 걷는 내 눈 앞에
오늘도 아른거린다.
난 두렵다.
돈을 많이 벌고 큰 집을 가져도
네가 없는 내 삶은
결국 실패로 귀결되는 건 아닌지.
결국 난 늙어 죽을 때까지
그 봄의 거리를 서성이고 마는 건 아닌지.
그래서 난 이 계절이 오면
가끔 일상의 공전 궤도를 이탈한다.
어쩌면 아직 그 길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너를
마주칠 것만 같아서
봄바람에 나부끼는
체크무늬 주름치마를 애써 누르며
내게 손을 흔들 것 같아서
그런 네가 간절하고 또 보고파서.
2017년 이른 봄에 처음 쓰다
2020년 7월 31일 고쳐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