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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인칭관찰자 Jun 28. 2020

그 봄날의 너

편지 ... 23살의 너에게

스물셋의 늦봄 

첫 사회생활의 고단함에 지쳐 가고 있던 난, 

저수지 옆 신작로를 걸으며 

널 생각했다. 


종종걸음으로 앞서가며

눅눅해진 나를 위로하던 널 

감당 못할 의무를 짊어진 내 어깨에

가만히 머리를 기대던 널

텅 빈 지갑을 속절없이 바라보던 나의 이마에

꿀밤을 주고는 까르르 웃으며 도망가던 널


언젠가는 그런 널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그 시절 내가 살아가는 이유였다.


하지만 끝내 나는 너를 찾지 못했고

잊지 않고 찾아오는 이 계절 속에서

넌 한 토막의 풍경이 되어

텅 빈 거리를 걷는 내 눈 앞에

오늘도 아른거린다.


난 두렵다.

돈을 많이 벌고 큰 집을 가져도 

네가 없는 내 삶은 

결국 실패로 귀결되는 건 아닌지. 

결국 난 늙어 죽을 때까지

 그 봄의 거리를 서성이고 마는 건 아닌지.


그래서 난 이 계절이 오면

가끔 일상의 공전 궤도를 이탈한다.

어쩌면 아직 그 길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너를

마주칠 것만 같아서

봄바람에 나부끼는

체크무늬 주름치마를 애써 누르며

 내게 손을 흔들 것 같아서

그런 네가 간절하고 또 보고파서.



2017년 이른 봄에 처음 쓰다

2020년 7월 31일 고쳐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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