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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인칭관찰자 Aug 23. 2020

행복하다

수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방금 목욕탕에 다녀와 안방에 대(大) 자로 누워서 쉬고 있다던 그녀의 고른 숨결이 수화기 너머로 느껴졌다. 나는 그녀에게 용건을 말했다.


 엄마.
오늘 아침 책상에 앉아 있는데,
내가 정말 정말 행복하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건
 엄마가 낳아주고 키워준 덕분이니까,
 그래서 꼭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나는 요즘 행복하다.



 코로나의 재확산으로 시민들의 공포와 피로가 가중되고,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지만, 난 행복하다. 나 역시 직장을 잃고 곤궁한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난 행복하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일상 곳곳에 쓰레기 더미처럼 쌓여 악취를 풍기고 있어도, 분명 나는 요즘 행복하다.



 아무리 부정해봐도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결국 인정했을 때, 나는 이것이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은 아닐까 의심했다. 자기 계발서에 흔하게 등장하는 ‘긍정의 힘’, ‘플라시보 효과’ 그런 것 말이다. 따지고 보면 예전에 그런 식으로 행동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니까 20대 후반 무렵, 사람의 마음 중에는 ‘자존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내가 그때까지 내내 불행했던 이유가 그 ‘자존감’이 낮아서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시중에 유통되던 ‘자존감’ 관련 심리학, 자기 계발서 여러 권을 구매하고서, 그것을 공부하듯 밑줄 치며 읽은 뒤 요점을 정리해 노트를 만들었다.



나의 자존감 요점노트



 난 그 수십 장의 요점노트를 학창 시절 영어 단어장처럼 항상 지니고 다니며 수시로 꺼내보곤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물을 때마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내 노력들을 구구절절 설명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한마디로, ‘애쓴다.’였다. 당시에는 그런 반응이 못마땅했으나, 이제와 떠올려 보면 사실 난 그때 정말 애쓰고 있었다. 무엇을? 나의 행복을 증명하는 것, 알리는 것, 확인받으려는 것을.



지금은 어떠한가?

혹시 그때와 같지는 않은가?

달라졌다면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 차이만으로 지금의 이 행복하다는 감정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묻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감정을 왜 설명해야 하나?

왜 내 행복이 진짜인지 아닌지 감별해야 하나?

그리고 그걸 왜 표현해야 하나?



20년 전 서점가를 강타했던 베스트셀러 ‘한국의 부자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부자는 허위 허식을 버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부자들은 부자로서의 생활이 몸에 배어
 굳이 자랑하지 않는다.
남들이 돈 자랑을 할 때,
 가만히 앉아 있어도
 자신이 부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걸 잘 안다.
 



한창 행복하다고 떠벌리고 다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와르르 무너졌던 경험 이후 행복도 돈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행복하다면 굳이 자랑하지 않아도 행복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까. 오히려 내가 행복하다 말하는 순간이야말로, 실은 전혀 행복하지 않은 순간일 수 있다는 의심을 했었다.



그런데도 나는 왜 이 글을 쓰는 걸까?

그것은 바로 기록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싱거운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소 지루한 경험담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행복은 낯설었다



작년 여름은 내게 지옥과 천당을 오고 간 참으로 극적인 시즌이었다. 오랫동안 앓던 병을 방치했다가 한 달 사이에 세 번이나 응급실에 실려갔던 나는, 매일 밤마다 아침에 멀쩡히 눈뜨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렇게 잇단 병치레로 직면한 경제적인 궁핍과 끝없는 고독-외로움, 산산이 흩어진 자존감, 그때 내게 세상은 정말이지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네 번째 응급실을 제 발로 걸어 찾아갔다가 돈이 없어 허무하게 돌아오던 길, 나는 가족 앞으로 마지막 편지를 녹음하며 하염없이 울었다. 그런 내가 극적인 반전을 맞이한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 담배를 끊으면서부터였다.



내 인생의 가장 큰 반전



 내 병의 가장 큰 원인이 담배였으니, 금연 없이 병이 낫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병을 키웠다. 담배를 지극히 사랑했기 때문이다. 깊게 한 모금 빨았다가 허공으로 뱉는 담배연기는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던 내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스스로 확인하는 신호였다. 하지만 그런 내가 또한 살아 남기 위해 20년을 넘게 피웠던 담배를 끊었다.



그러자 기적 같은 일들이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금세 건강을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내 집중력, 컨디션, 신체리듬이 생전 처음 느껴보는 궤도에 도달했다. 머릿속을 채우던 헛된 망상들이 사라지고 그동안 외면했던 현실을 똑바로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될 때쯤, 지금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에 당첨되었다. 말 그대로 하는 일마다 술술 풀린다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갑자기 찾아온 행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그저 기뻐하고 즐기기도 모자랄 시기, 나는 틈 날 때마다 전자책을 켜고 습관처럼 어느 책을 펼쳤다. 그 책은 바로 ‘자살, 차악의 선택(박형준 저)’이었다. 




내 생활엔 온통 좋은 일, 자랑할 일, 축하받을 일로 가득한데, 정작 나는 자살자들의 사연과 유서가 담긴 이 책에 푹 빠져있었다. 마침 책의 정서와 잘 어울리는 음악을 찾은 것도 한몫했으리라.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올 때까지, 난 인생의 파고를 끝내 넘지 못하고 스스로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가장 슬픈 비극들을 읽으며 울고 또 울었다.



대책 없이 행복했던 순간들이 다소 진정되고서야 왜 하필 그 책을 붙잡고 있었는지 반추할 수 있었다. 이유는 무척 단순했다. 이제껏 한 번도 그만큼의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 좋은 일들이 정말 내 몫인지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누려야 마땅했던 기쁨과 행복이 마냥 내 것이 아닌 것 같아서, 왠지 낯설어서 그래서 남의 슬픈 사연들을 읽으며 '이 좋은 시기도 금방 지나갈 것이다.' '나도 언제 저런 아픔을 겪을지 모른다.'라고 들뜬 마음을 애써 누른 것이다. 



그랬던 여름에 비해 지난겨울은 말 그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던 시기였다. 계획했던 것은 전부 어긋나고, 마음먹은 것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상처 받고 또 그보다 큰 상처로 되갚아 주고 있었다. 바이러스가 창궐하던 시기, 난 사지는 멀쩡했으나 마음이 아팠고, 마음이 나아갈 때쯤 직장을 잃었다. 그리고 올해 여름, 거짓말처럼 또다시 행복이 찾아왔다. 



병 때문에 죽음을 염려하던 시간에 경험한 적 없던 행복이 찾아오고, 충분히 만끽하지 못한 채 녹록지 않은 계절을 견뎌야 했으며, 가장 험난할 거라 믿었던 시기에 또다시 행복을 느끼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의 행복도 가장 대수롭지 않은 일 때문에 당장 내일 아침에 내 곁을 떠날 수 있다고 믿는다. 인생의 덧없음을 뜻하는 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는 말에는, 인생이란 끝도 없이 변하는 것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다시 찾아온 행복에 감사하면서도, 언젠가는 곁을 떠날 지금의 행복을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언젠가 내가 또다시 시련에 몸부림치고 있을 때 지금 이 글을 꺼내보며 행복을 묵묵히 기다리고 싶었다. 내가 왜 행복했는지를 돌아보며... 



* 그러므로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행복해지려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식의 글이 결코 아니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부디 '이 사람은 그런가 보다.'라고만 생각해주길 바란다.




뒤늦게 발견한 재능



언젠가 블로그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신이 이 세상을 낼 적에 모든 사람에게 적어도 한 가지씩 재주는 주셨다지요. 하지만 신은 제게 빛나는 외모도, 굳건한 재력도, 강인한 신체도 주시지 않았어요. 비상한 머리, 화려한 말재주까진 바라지도 않았어요. 그 흔한 손재주도 주시지 않았죠. 그럼 도대체 내게 주신 건 무엇이었을까요? 지난 수십 년간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고작 감수성이에요. 그러면 타고난 글재주나 악기 다루는 재주도 주셔서 밥이라도 먹고살게 해 주시던지, 꼴랑 그거 하나만 주셨어요. 이번 생은 망했어요. 


- <신이 주신 당신의 재주는 무엇인가요?> 중에서



어릴 적부터 그림을 기가 막히게 그렸던 큰 형, 손재주가 뛰어나 무엇이든 뚝딱 잘 만들었던 작은 형에 비해 나는 할 줄 아는 게 참 없었다. 그나마 부리던 글재주가 흔해빠진 수준임을 자인했을 때, 내게 남은 것은 고작 감수성뿐이었다. 그래서 저 글을 쓰던 당시에는 그동안 제대로 믿은 적도 없던 신을 괜스레 원망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야 나는, 살아가는데 하등 쓸모없다 여겼던 그 감수성이 비로소 가장 소중한 재능이었음을 절감한다. 내가 그것으로 인해 사소하고 별 볼 일 없는 것들에 감동하고 또 기뻐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랬다. 

내게 다시 찾아온 행복이란 결코 거창하지 않은, 그저 보잘것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읽고 있는 책마다 마음을 뒤흔드는 구절이 끊임없이 쏟아졌고, 기대하지 않았던 영화 속에서 가슴을 적시는 대사를 들었다. 어제와 똑같은 아침인데 햇빛의 각도와 반려묘 궁궁이의 위치에 따라 내 방바닥에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가 그려졌다. 직접 끓인 김치찌개가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이제는 꽤 먹을만한 수준이 되었다. 나는 고작 이런 일들에 행복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그나마 특별한 일화를 꼽아보자면,


사은품으로 받은 웹툰 이용권의 사용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서, 한동안 보지 않았던 웹툰들을 뒤적이던 밤이었다. 선택을 못하고 줄곧 우물쭈물하던 나는 그 옛날 만화방에서 아저씨들이 주로 보던 이른바 ‘만화방 만화’들을 웹툰으로 볼 수 있음을 깨닫고 신이 났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고행석 만화가의 ‘불청객 시리즈’ 중 한 권을 결제했다. 



하지만 갑작스레 부푼 기대와 달리 내 흥미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 시절 만화방 만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내가 고른 만화도 그저 뻔하고 허무맹랑한 내용일 따름이었다. 이미 더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공장에서 찍어내듯 비슷비슷한 스토리로 만든 수십 년 전 만화방 만화에게 큰 재미를 찾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애써 졸음을 쫓으며 넘겨보다 나는 어느 순간 눈을 번쩍 뜨이게 한 장면을 발견했다.





이 장면을 보자마자 탄식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마음이 몽글몽글 해졌다. 잠은 달아났고, 벌떡 일어나 몇 번이고 구절을 반복해서 읽었다. 



그즈음 나는 이른바 불혹(不惑)이라는 마흔임에도 여전히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다. 취업을 하기 위해서 당장 필요한 것은 자격증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다고 느껴 자꾸만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러자 몇 년 전 실패했던 전업작가에 대한 미련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네가 쌓아온 경력이랑
 해왔던 공부들이 아깝진 않니?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일정 수준에 벌이는 될 텐데...



얼마 전 통화했던 전 직장 팀장님의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충고 덕에 그나마 책은 아직까지 버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공부를 해야 할 이유, 계기를 찾지 못해 시험 날짜는 다가오는데 난 그저 흔들리고만 있었다. 그때 저 장면이 내게로 왔다.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하며 알뜰히 저축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구영탄(만화 속 캐릭터)의 저 대사 속에서 나는 비로소 공부를 해야 하는 단순한 이유를 발견한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

그 여자가 슬픈 표정을 지으면 나도 너무 슬플 것이다. 

웃는 얼굴로만 살게 해주고 싶다. 

그것이 남자인 나의 책임이다


나는 이 우직한 마음가짐을 품고 다음 날부터 미뤄왔던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아직도 가끔 저 장면을 꺼내보며 각오를 다지곤 한다.


내 삶에 중요한 거름이 되는 가르침은 대문호의 오랜 고전이나, 불후의 명작, 공전절후 한 베스트셀러 속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권 당 몇 백 원이면 빌릴 수 있는 뻔한 만화 속에서도, 제목부터 거부감이 느껴지는 흔한 자기 계발서 속에도 내 마음을 비옥하게 만드는 문구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것들을 발견하고 귀하게 여기줄 아는 감수성을 가진 것이다.





나는 나아지고 있다.


내 친구는 언제부턴가 자신의 전성기를 스무 살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녀석은 술에 취하면 어김없이 그 당시의  에피소드들을 꺼내 놓곤 했다. 큰 키, 수려한 외모, 뛰어난 언변 때문에 같은 학교 여학생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던 일, 그중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쫓아다니던 여성과 잠깐이나마 사귀어본 일, 나름 준수하게 생긴 친구와 동성로를 걷다가 헌팅도 어렵지 않게 성공했던 일... 이미 숱하게 들어왔던 이야기였지만 '메밀꽃 필 무렵' 속 허생원처럼 이미 추억에 잔뜩 젖어있는 녀석의 입을 막을 도리는 없었다. 그러면서 말할만한 추억이 모두 소진되면 녀석은 자신의 처지와 신세를 한탄하다 내게 물었다.


넌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


그 질문에 대한 내 답은,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변함없다. 

내게는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난 언제나 살고 있던 지금이 전성기였으니까.



이 말은 지금 내게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나는 얼마 전 직장을 잃고 넉넉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아직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 외로움과 쓸쓸함을 느낀다. 어머니께서는 점점 약해지시는데 나는 아직도 효도다운 효도를 한 적이 없다. 불안정한 현실과 깜깜한 미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한 가지는, 

내가 과거보다 점점 나은 사람이 되어 왔다는 것이다.



나는 참 이기적이고 배려심 없던 녀석이었다. 말과 행동은 생각을 거치는 법이 없었고 늘 제멋대로 굴었다. 법만 어기지 않았을 뿐, 주위 사람들에게 무수한 상처를 남기며 자라왔다. 그래서 나는 '인간이 얼마나 잔혹할 수 있나'를 논할 때 결코 멀리서 사례를 찾지 않는다. 내 모습으로도 충분히 설명되었으니까.


그랬던 내가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인간의 진화에 정확한 시기를 측정할 수 없듯, 나도 언제부터 그랬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내 말과 행동에 누군가 상처를 받은 날에 나도 끙끙 앓았다. 그러면서 행동과 말에 필터를 하나 둘 걸기 시작했다. 그러고도 어색한 침묵을 못 견뎌 끝끝내 실수를 저지르던 내가, 이제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으면 그저 입을 다문다.



나는 이 세상에서 나라는 인간을 가장 신뢰하지 않았던 단 한 사람이었다. 내 끈기가 얼마나 부족한지, 의지가 어찌나 박약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행동을 결심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주변 사람들에게 떠벌리고 다니는 것과 흐지부지 되었을 때 써먹을 변명을 만드는 것, 그 두 가지였다. 


그랬던 내가 마음먹은 일들을 하나 둘 습관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이른바 청소, 설거지, 요리... 부끄럽지만 얼마 전까지 나는 그런 것들을 내 마음 내킬 때만 해왔었다. 그랬던 내가 술에 잔뜩 취한 어느 밤, 설거지뿐만 아니라 싱크대 배수구를 박박 닦고서야 잠자리에 드는 것이 퍽 대견스럽다고 느꼈다. 



또한 나는 나를 가장 맹렬하게 비난하는 인간이었다. 내가 저지른 어리숙한 실수들에 대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어물쩍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스스로를 향해 거친 욕을 쏟아내고 때로는 뺨을 철썩철썩 때리며 몰아붙였다. 결과가 나쁠 때는 오로지 결과로만 잣대를 재고, 과정이 나쁠 때는 결과가 좋아도 결코 만족하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스스로에게 다소 너그러워지기 시작했다. 실수를 저지르면 다짜고짜 퍼붓던 욕 대신 "으이그"로부터 출발하는 거칠지 않은 말들로 어르고 달랬다. 계획한 일들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그것이 온전히 내 탓이 아님을 깨달았고, 과정이든 결과든 긍정적인 것들에 의의를 두었다. 


2020년 8월 나는 이런 내 모습들에 행복을 느꼈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여전히 어리숙하고, 성급하며 또 감정적이다. 

그래서 내가 다시 이 글을 찾았을 때는 그런 이유들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찾아와 오글거림을 참아내며 여기까지 읽어준 나에게 말한다. 



너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늘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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