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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수 Jun 12. 2022

#13 - 이집트인들에게 '친절'이란 무엇일까?

룩소르에서 후르가다를 거쳐 수에즈로 12시간 동안 버스를 탔다.

고버스를 타고 룩소르에서 후르가다로


룩소르를 떠나는 아침이 밝았다. 버스는 오전 8시 30분 룩소르 역 건너편의 ‘Go-Bus Station’에서 출발한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아침잠이 많은 내가 시간에 맞춰 버스를 타러 가는 일이 몹시 고역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새벽 다섯 시면 잠에서 깨어나는 새벽형 인간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너무 싫어서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이곳이라면 새벽반 수업 듣고 출근하는 삶도 가능할 지경이다. 덕분에 여유 있게 조식까지 잔뜩 먹고 짐을 싸서 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터미널에는 나를 포함해서 외국인들이 대다수였다. 아무래도 고버스는 모바일로도 예약이 가능하다 보니 관광객들이 많이 이용하나 보다. 참고로 도메인은 go-bus.com이다.

여기가 고버스 스테이션 건너편 건물인데.. 버스 타는 곳 사진을 못 찍음..

매점에서 장거리 이동의 영원한 친구 Lay감자칩을 두어 봉지 사고 물도 샀다. 화장실도 다녀왔다. 마침 내가 탈 후르가다행 버스가 온 거 같았다. 버스는 깔끔해 보였다. 버스 앞에는 차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서서 표를 확인하고 있었다. 나는 휴대폰 화면에 뜬 모바일 티켓을 보여줬다. 그는 내 배낭을 보더니 짐칸에 수하물로 맡기고 오라고 했다. 그래 내 배낭이 그냥 들고 타기엔 좀 크긴 하지. 버스 출입문 반대편으로 가니 나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던 외국인들이 줄을 죽 서서 짐을 맡기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승객들이 모두 5파운드씩을 손에 쥐고 있었다. 알고 봤더니 버스 탑승 시 수하물을 맡기려면 가방 하나당 5파운드가 추가로 들었다. 추가 비용까지 내는 거면 수하물 분실 시 버스 측에서 보상이라도 해 주려나? 아마 그런 일은 없겠지. 배낭을 맡기고 버스에 타서 조금 기다리니 버스의 시동이 걸렸고, 차장이 차내를 돌아다니며 티켓을 한번 더 확인했다. 정시에 출발하려나보다. 이집트에서는 그래도 열차나 버스의 출발시간은 늘 정확하게 지키는 듯했다. 도착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긴 하지만. 여행객들이 인도와 이집트를 자꾸 비교하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여행자들의 양대 험지가 바로 이집트와 인도라고. 적어도 이동에 있어서 인도보다는 이집트가 그래도 여행하기는 편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왜냐면 이집트는 그래도 출발시간이라도 지키지만 인도는 출발시간도 안 지키는 경우가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딱 8시 30분에 버스가 출발했다.


룩소르 시내를 벗어나니 금방 누런 사막이 나타났다. 사실 이집트에 와서 처음 보는 사막 풍경이었다. 그렇다. 이집트 국토의 대부분은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행 내내 푸른 나일강변을 따라다니다 보니 이집트가 사막에 있는 나라라는 사실을 잠시 있고 있었다. 후르가다까지 가기 위해서는 사막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도로를 타야 했다. 계속  똑같은 사막 풍경이 펼쳐졌다. 나일강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황무지라니. 이 나라는 나일강 없었으면 정말 어쩔 뻔했을까. 처음에는 사막의 황량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금방 지겨워졌다. 나는 넷플릭스를 켜고 미리 다운받아 놓은 영화 ‘돈 룩 업’을 봤다.

좌: 이런 풍경이 세 시간동안.. 우: 그래도 중간에 휴게소에 한번 들리기는 한다.
좌: 한국 기준으로는 허름해 보이지만 이 정도면 이집트에서는 아주 깔끔한 아파트라 볼 수 있다. 우: 후르가다는 관광도시이다 보니 이런 카페도 있었다.

징글징글한 택시기사들의 바가지


영화가 끝날 때쯤 되니 저 너머로 홍해가 보였다. 리조트로 보이는 건물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고, 버스는 후르가다 시내로 진입했으며, 곧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제 여기서 수에즈로 가는 버스를 탈 예정이다. 비록 고버스 앱에서는 수에즈행 버스를 찾을 수가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티켓 카운터로 가서 물어봤다.


나 : 안녕? 난 수에즈로 가고 싶은데 티켓이 있어?

직원 1 : 수에즈? 여기서 수에즈 가는 건 없어.

나 : 오늘 가는 버스가 없는 거야? 아예 없는 거야?

직원 1 : 아예 없어. 여기를 봐.


그는 컴퓨터 화면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정말 없었다. 설마 룩소르 호스텔 사장님이 ‘저 멍청한 한국 놈에게 고난을 안겨주리라!!’는 마음으로 거짓말을 한건 아니었겠지… 그나저나 이런 상황이면 나는 카이로로 되돌아갔다가 수에즈로 가는 고난의 행군을 하게 생겼다. 절대 카이로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 옆자리의 직원 2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직원 2 : 너 수에즈로 갈 거면 여기 말고 ‘Upper Station’으로 가봐.

나 : 오!! 거기에는 수에즈로 가는 버스가 있어?

직원 2 : 확실하지는 않아 하지만 여기보다는 노선이 많아.

나 : 몹시 고마워!!

그렇다. 이집트에는 버스 회사만 십 수개가 있다고 들었다. 수에즈 정도의 큰 도시로 향하는 노선이라면 분명히 버스회사 하나쯤은 운행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이랑은 다르게 버스회사마다 터미널도 다 따로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이집트에는 고버스 하나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구글맵에서 얼른 검색을 해 보았다. 그곳의 정확한 이름은 'Upper Egypt For Transport & Tourism'이었다. 고버스터미널에서 대로를 따라 1.4킬로 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걸어가도 될만한 거리였지만 짐이 많았기에 택시를 타기로 했다. 터미널 앞에는 먹이를 노리는 야수의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택시기사들 무리가 있었다. 나는 그중에 한 명을 붙잡고 택시비를 물었다.


나 : Upper Station으로 가고 싶은데 얼마야?

택시기사 1 : 너에겐 특별한 가격으로 해 줄게.

나 : 그래서 얼마야?

택시기사 1 : 100파운드.

나 : 농담하지 말고. 거긴 겨우 1.4킬로 미터 거리야.

택시기사 1 : 원래 여기는 그 정도 가격이야.


아휴. 이 뻔뻔한 사람들. 100 파운드면 7500원이다. 한국에서도 저 거리면 기본요금이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흥정할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그냥 걸어가야겠다 싶어서 돌아서려는데 다른 택시기사가 말을 걸었다.


택시기사 2 : 내가 특별히 너에게만 80파운드에 가 줄게

나 : 30 파운드면 탈게.

택시기사 2 : 친구! 그 가격은 불가능해!


아무래도 이들은 가격담합을 한 거 같았다. 저 돈 내고 가느니 그냥 걸어가겠다. 그러다 문득 여기는 우버가 되려나 싶었다. 앱을 켜 보니 서비스 가능지역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룩소르에서는 우버를 사용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얼른 Upper Station으로 가는 가격을 확인했다.  15파운드였다. 이러는 내가 그들에게는 우물쭈물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나 보다. 아까의 그 택시기사 2가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택시기사 2 : 이봐 친구. 내가 정말 너만을 위한 가격으로 데려다줄게. 50파운드만 줘.

나 : 우버에서 가격을 확인했어. 난 우버 타고 갈 거야.

택시기사 2 : 우버는 좋지 않아. 내가 20파운드에 데려다줄게.

나 : 미안하지만 이미 우버를 불렀어.


100파운드에서 20파운드로 가격이 떨어지는 마법을 보았다. 기사님들, 이게 바로 경쟁체제란 것입니다. 맨날 호구당하기만 하다가 한 방 먹여준 거 같아서 나는 승리감에 도취되었다. 우버를 타고 가면서 기사에게 택시기사들이 100파운드를 부르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어이없어하면서 택시기사들은 다 사기꾼들이라고 했다. 카이로에서 미니버스 기사도 같은 말을 한 것을 보면 택시기사들의 악명은 현지인들에게도 널리 퍼져 있나 보다.

Upper Station은 이렇게 가까운 데에 있었다.


수에즈로 가는 버스를 찾아 탑승하는데 성공


'Upper Station'은 고버스스테이션과는 많이 달랐다. 고버스쪽은 대합실도 잘 갖춰져 있고, 티켓 카운터에서는 컴퓨터로 발권을 하는 등 현대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었는데, Upper Station은 90년대 우리나라의 시골 버스터미널 같았다. 티켓박스 앞에는 행선지와 시간 등이 적혀있었다. 죄다 아랍어로. 단 하나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일단 티켓박스로 가서 수에즈로 가는 버스가 있냐고 물었다. 티켓 판매 직원은 영어를 단 한마디도 못 알아들었다. '얘 뭐래는 거야?'라는 표정의 직원에게 다시 말했다. 수에즈! 수에즈!! 그것마저 알아듣지 못했다. 여기도 수에즈 가는 버스는 없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 등에 식은땀이 한줄기 흘러내렸다. 최후의 수단으로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서 'Suez'를 아랍어로 띄워서 보여줬다.


티켓 직원 : 아!! 수의즈!

나 : 응 수의즈 수의즈!!

티켓 직원 : !@#$ㄸ@!$$#%!@$!@#~@!


이쪽은 수에즈가 아니라 수의즈에 가깝게 발음하는 듯했다. 그런데 그다음 말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뒤에 서 있던 웬 아저씨가 너무너무 유창한 영어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 너 수에즈로 가려는 거야? 좀 있다 열두 시 반쯤 출발한대.

나 : 어 정말? 너무 고마워. 내가 아랍어를 못해서 미안해.

아저씨 : 괜찮아. 내가 뭐 도와줄 건 없고?

나 : 티켓을 사고 싶다고 말 좀 해 줄래?


아저씨는 표는 버스에 타서 사면 된다고 했다. 나는 너무 고마운 나머지 그에게 한국식으로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때가 대충 열두 시 이십 분쯤이었던 기억이다. 매점에서 끼니를 때울 빵이랑 음료를 사니 버스 한 대가 승강장으로 들어왔다. 저 멀리 벤치에 앉아 있던 아까의 친절한 아저씨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 버스를 타라고. 나 역시 큰 소리로 슈크란(고마워)을 외치며 버스에 올랐다. 고버스와는 다르게 한 50만 킬로는 운행했음직한 몹시 낡은 버스였다. 차장이 와서 어디까지 가냐는 말로 추정되는 질문을 했다. 나는 ‘수의즈’라고 똑 부러지게 말해 줬다. 50파운드 정도였다. 비슷한 거리를 운행하는 고버스에 비해 반 정도로 싼 가격이었다.

Upper Egypt For Trasport & Tourism

버스는 홍해를 오른쪽에 끼고 한참을 달렸다. 엉덩이와 허리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때쯤 시골의 어느 휴게소에 멈췄다. 구글 맵으로 여기가 어딘지 검색해 보았다. 대충 1/3쯤 왔다. 지명은 알 수가 없었다. 구글맵에도 동네 이름이 오로지 아랍어로만 적혀있는 것을 보니 외국인이 거의 오지 않는 동네인가 보다. 탈 때는 몰랐는데 버스에서 내리고 보니 외국인은 나 하나였다. 오늘 하루 종일 제대로 먹은 게 없어서 배가 고팠다. 이곳에서 영어가 통할 리가 없었다. 그냥 한국말을 하며 손짓 발짓으로 샤와르마를 하나 샀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먹고 있는데 그 동네 아이들이 계속 내 주변을 맴돌았다. 어른들도 흘깃흘깃 나를 계속 관찰하는 눈치였다. 이런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 예전에 인도 시골 갔을 때 이후 오랜만이다. 아이들은 나에게 뭔가 말을 걸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나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나도 그냥 가만있었다.

이름 모를 시골 동네의 휴게소


버스는 홍해를 끼고 계속 달렸다.


친절..한 수에즈 사람들


버스는 북쪽을 향해 계속 달렸다. 해가 점점 지면서 황량하기만 했던 해변에 리조트 단지가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에즈 남쪽의 휴양도시인 아인수크나였다. 곧 도로 주변에 공장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수에즈로 넘어온 것이다. 확실히 수에즈는 산업도시라는 느낌이 강했다. 울산이나 여수에서 봄직한 큰 산업단지 같은 공장 건물이 대로변으로 가득 있었다. 산업단지를 지나 좀 달리니 황량한 벌판에 버스들이 늘어서 있었다. 버스에 탄지 9시간 만인 9시 반쯤 수에즈 버스터미널에 내렸다.

터미널 주변에는 정말 아무것도. 아아아아무것도 없었다. 수에즈는 오로지 수에즈 운하를 위한 도시다. 관광객을 위한 배려 그런 건 없어 보였다.  외진 곳이라 그런지 우버도 안 잡혔다. 내가 못 올데를 왔나. 뭔가 이건 되게 크게 잘못된 거 같은데. 최소한 수에즈 시내까지는 가야 숙소든 뭐든 있을 텐데 갈 방법이 없는 거다. 사실 숙소 예약도 못한 상태여서 마음이 계속 쪼그라들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오는 중에 숙박 앱으로 숙소를 계속 검색했지만 비싼 리조트나 고급 호텔 말고는 아무리 찾아도 눈에 띄지가 않았다. 구글맵에서 보니 시내 쪽에 숙박 앱에 나오지 않는 숙소가 몇 개 있었다. 그러니 나는 일단 시내까지는 어떻게든 가야만 했다. 그런데 시내까지는 8킬로미터. 밤에 걸어가기에는 위험했다. 나와 함께 버스를 타고 온 승객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고, 터미널에 혼자 남겨진 나는 망했음을 직감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어떤 아저씨 둘이 나를 불렀다. 그 아저씨들은 아랍어로 나에게 한참 뭐라 뭐라 했다. 뭐라고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아는 아랍어는 하맘(화장실) 이랑 슈크란(감사합니다)이거 두 개뿐이다. 하지만 나는 눈치의 한국인이라 그들이 뭐라 하는지 알아챘다. '너 어디까지 가냐? 우리랑 택시 같이 타자'. 구글맵으로 시내 지도를 보여주니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대안이 없었다. 분명 바가지를 쓸 거 같았지만 그래도 어쩌겠나. 밤에 걸어가다 강도에게 털리는 거보단 택시 바가지가 낫다 싶어서 그들을 따라갔다.

왼쪽 두 사람이 나를 부름.

그들이 전화로 택시를 불렀고, 곧 택시가 도착했다. 택시는 어딘가로 달렸다. 혹시나 싶어 가는 중에 구글맵으로 경로를 검색해 봤다. 다행히 시내 쪽으로 가는 게 맞았다. 가는 중에 아저씨들이 계속 뭐라고 말을 걸었다. 뭐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한국말로 네 네그랬다. 뭔가 나에게 친밀감을 표시하는 거 같긴 했다. 드디어 시내 도착. 바가지를 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얼마인지를 물었다. 그런데 30파운드란다. 우리 돈으로 2300원 정도다. 아까 후르가다의 택시기사들은 1.5킬로에 100파운드를 부른 걸 보면. 관광객으로서 엄청나게 싸게 온 거다. 그 아저씨들이 너무 고마웠다. 그거도 모르고 나는 오는 내내 의심의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아아 누가 이집트인들이 사기를 많이 친다고 했던가. 그건 다 편견이었다! 내 마음은 이집트인들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찼다. 슈크란 슈크란!! 나는 목 놓아 외치며 그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했다. 그런데 같이 타고 온 아저씨들은 돈을 안 내고 가버렸다. 알고 봤더니 이 양반들이 나한테 엉겨 붙어서 시내까지 온 거였다. 난 좋다고 아저씨들이랑 셀카도 찍었는데. 하지만 아저씨들은 집에 가서 자랑하겠지. 곤경에 처한 외국인을 도와줬다고.


도대체 이집트인들에게 '친절'이란 무엇일까. 혼란스러웠다. 아무튼, 시내까지 무사히 왔으니 이제 숙소를 찾을 차례다.

어째튼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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