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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샌달 Jun 08. 2024

우리 집을 소개합니다.

방 2, 거실 1, 월세 5만 원

시(市) 중심에서 2시간 반 정도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리면 우리 동네에 도착한다.

중국에서의 첫 집, 첫 동네.

저층 아파트가 옹기종기 모여 있지만 이름은 없어서 도로명과 단원(单元)으로 알아야 하는 곳.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

우리 동네를 넘어가면 그냥 허허벌판.

해가 지면 가끔 누군가가 몰래 시체를 버리고 가는 곳.

한국의 버스 종점과는 전혀 다른, 말 그대로 종점(終点).


외지인(외국인)은 17살의 나와 18살의 룸메 언니.

나의 첫 룸메이트는 나의 '사람 훈련' 심화과정의 첫 페이지.

첫 룸메와의 생활은 따로 몇 개의 글을 써야 할 정도로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여기서는 패스.


매일 새벽 4시, 평소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장터가 된다.

중국 전 지역이 베이징 시간 기준으로 맞춰져 있기 때문에* 좀 더 어두운 시간, 마오쿠나 미엔쿠를 입고(=내복바지 차림) 그 위에 두꺼운 상의 여러 겹을 껴입은 동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한 자리에 모여 인사하며 각자 살 것들을 구매한다.

(*너무 심한 차이가 있는 경우(ex. 신장위구르자치구), 베이징 시간과 현지 시간을 동시에 쓴다.)

온몸에 졸음을 한가득 달고 장 보러 나간 나와는 다르게 생기 있는 우리 동네 사람들의 반가운 인사를 받다 보면 자연스럽게 장 보는 시간이 길어진다.


새벽장에는 신선한 과일과 채소뿐만 아니라 좌판에 놓여있는 갓 잡은 여러 종류의 고기와 부속물들에서 추운 날씨로 인해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다.

영하 20~30도를 유지하는 겨울 날씨엔 냉장고도, 상할 걱정도 없지.

갓 잡은 고기들의 움찔거림과 손질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 있는 그것들과의 눈 맞춤은 처음에는 너무 무섭고 소름 끼쳤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익숙해져 갔다.

그냥 못 본 척 외면했다고 하는 게 더 맞겠지.


우리 집은 5층짜리 건물의 3층.

현관문은 열쇠구멍만 두 개 뽕뽕 나 있는 강철문으로, 열쇠를 동시에 두 개를 꽂고 돌려야 열리는 구조라서 열쇠를 잃어버리면 문을 뜯어야 한다. 그만큼 보안은 잘되는 것 같으니 안심되기도 했다.


가장 저렴한 비닐장판을 사서 하나하나 잘라 거실과 방바닥에 깔고, 콘크리트 그대로인 회색 벽은 집주인 할아버지가 사람을 시켜 하얀색 페인트로 칠해줬다(대신 기댈 수 없는 벽(옷에 하얗게 묻어 나와서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 더 좋은 걸로 해줄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여담이지만, 중국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가 8인데, 자동차 번호판이나 전화번호에 8을 넣으려면 돈을 주고 사야 한다. 그리고 우리 집 전화번호 여덟 자리 중에 다섯 개가 8이었다!


회색빛 콘크리트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주방에는 간이 준비대로 거친 나무 테이블을 두고, 그 위에 바닥을 깔고 남은 비닐장판을 잘라 올려두었고, 마찬가지로 날 것 그대로의 화장실에는 변기와 세면대, 거울과 온수기만 제 자리에 붙어있다. (화장실 청소가 가장 쉬웠어요!)


거실에는 거친 모습의 나무 테이블 위에 20인치 TV와 첫날 도와주셨던 분이 나한테 선물이라고 사주신 DVD기계를 놓았고, 바닥에는 방석 두 개를 놓아두었다.


각 방에는 슈퍼싱글보다는 크고 퀸사이즈보다는 약간 작은 침대 하나씩. 매트리스가 있긴 하지만 있으나마나 한 두께라서 그냥 프레임 위에서 자는 것과 마찬가지.

매트리스를 사려면 비싸니까 그냥 딱딱함에 적응하고 살기로 했다.


내 방에는 첫날 구매한 책상과 의자를 창문 옆에 두고, 그 맞은편에는 비키니장 하나와 캐리어를 두었다.

그리고 나의 작고 소중한 의자는 구매한 지 일주일 만에 수난을 당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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