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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샌달 Jun 15. 2024

학교 운동장에 화장실이

중국에 산지 6일째가 되던 날, 중국 고등학교로 등교가 시작되었다.

중국 고등학생은 새벽 6시 반까지 등교해야 한다는 사실!

게다가 중국에서 통용되는 표준 시간이 베이징 기준이라 등굣길 하늘은 더 어두운 새벽.


장 보는 날이 아니면 나의 기상시간은 새벽 4시 반. 늦잠을 자면 5시.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깜깜한 하늘보다 먼저 내 방을 형광등으로 밝힌다.


전날 불려놓은 쌀을 안치고,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으며 나와 룸메언니의 도시락을 준비한다.


중국에서의 첫 학교는 매우 아담한 곳이었다.

동네 고등학생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시골학교.

학년별로 반은 두 개씩, 한 반에 60명이 넘는 학생.


교실에는 옛날 배경의 영화에서 봤을법한 책상이 빼곡하게 놓여있다.

살짝 경사가 있고 위로 열어 교과서를 넣어놓는, 부모님 세대보다 더 어르신들이 썼을 것 같은 나무 책상.

그 위에는 하늘색 얇은 책상보를 씌워놓았고, 그 책상보는 개인이 관리하는 시스템.


담임선생님은 역사 과목을 담당하시는 아주 차분한 여자 선생님이셨다.

중국어 한 마디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눈과 손짓으로 인사를 나눈 게 전부였다.


등교 첫날, 배정된 반으로 들어간 순간 놀라서 주저앉을 뻔했다.

얼굴만 하얗게 화장한 여자애가 빗에 물을 묻혀 자신의 긴 머리를 정성스레 빗고 있었다.

참고로 그 친구의 머리 길이는 엉덩이를 넘어서는 길이.

새하얗고 동그란 얼굴을 한 사람이 교실문쪽으로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책상에 그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종지에 물을 받아 빗에 톡톡 물을 묻혀 빗고 있는 광경을 어스름한 새벽에 봤다고 생각해 보라.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첫인상.


중국어를 모르는 나와 한국어를 모르는 60여 명의 같은 반 학생들.

그들과 생활하고 적응하기 위한 나의 노력이 시작되었다.

매일 중국어 단어를 열심히 외우고 정말 빠른 속도로 바디랭귀지 스킬이 늘어서 아주 적은 단어와 능숙한 바디랭귀지로 동급생들과 간단한 소통이 가능해졌다.

책상에 두꺼운 전지를 하나 두고 애들에게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을 쓰라고 했다. 나중에 내가 알아볼 있을 거라고.

중국어를 할 줄 알게 되었을 때 읽어보니, 자신들의 전화번호를 갖은자(大写)로 써두고 "이거 너 못 알아보지? 나중에 읽을 수 있게 되면 전화해." 같은 문구들이 많았다.

*갖은자(大写): 숫자 적을 때 위조 방지를 위해 쓰는 것(一二三四五六七八九十百千 이런 것들을 → 壹贰参肆伍陆柒捌玖拾佰仟 이렇게 쓰는 방법)


쉬는 시간 여자애들끼리 화장실 가는 건 한국과 다를 게 없더라.

근데 어디로 가니?

왜 계단을 내려가니? 이 층에 화장실이 없나 보네.

응? 밖으로 나가야 돼? 비 내리는데?

응? 운동장은 왜? 아... 우와... 아...


푸세식 화장실, 쭈그려 앉았을 때 가슴 밑 정도 오는 벽과 시원하게 뚫려 있는 앞(문이 없음).

일단 왔으니 가야지. 그냥 깡시골에 온 거다 생각하자.

근데 너네 왜 자꾸 나 따라오니? 왜 내 맞은편에 앉으려고 하니?

ㅇ.. 어... 당황스럽네?

너네 먼저 시작해라, 그런 다음에 나는 구석으로 가야겠다.


서로 마주 보고 수다 떨며 큰일을 보는 애들을 뒤로하고 탈출한 나는 그 이후로 물도 마시지 않고, 점심시간마다 집으로 화장실을 다녀왔다.


나와 같은 시기 유학했던 사람들 중 누구도 그런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다고 한다.

부모님과 온 애들은 국제학교나 도심에 있는 괜찮은 학교를 다녔으니까.

우리 학교가 정말 특이했던 거였어.

동네 자체가 종점이니까. 정말 순박한 깡시골이었으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런 특이한 경험 덕분에 이렇게 글로 남길 수 있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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