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산지 6일째가 되던 날, 중국 고등학교로 등교가 시작되었다.
중국 고등학생은 새벽 6시 반까지 등교해야 한다는 사실!
게다가 중국에서 통용되는 표준 시간이 베이징 기준이라 등굣길 하늘은 더 어두운 새벽.
장 보는 날이 아니면 나의 기상시간은 새벽 4시 반. 늦잠을 자면 5시.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깜깜한 하늘보다 먼저 내 방을 형광등으로 밝힌다.
전날 불려놓은 쌀을 안치고,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으며 나와 룸메언니의 도시락을 준비한다.
중국에서의 첫 학교는 매우 아담한 곳이었다.
동네 고등학생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시골학교.
학년별로 반은 두 개씩, 한 반에 60명이 넘는 학생.
교실에는 옛날 배경의 영화에서 봤을법한 책상이 빼곡하게 놓여있다.
살짝 경사가 있고 위로 열어 교과서를 넣어놓는, 부모님 세대보다 더 어르신들이 썼을 것 같은 나무 책상.
그 위에는 하늘색 얇은 책상보를 씌워놓았고, 그 책상보는 개인이 관리하는 시스템.
담임선생님은 역사 과목을 담당하시는 아주 차분한 여자 선생님이셨다.
중국어 한 마디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눈과 손짓으로 인사를 나눈 게 전부였다.
등교 첫날, 배정된 반으로 들어간 순간 놀라서 주저앉을 뻔했다.
얼굴만 하얗게 화장한 여자애가 빗에 물을 묻혀 자신의 긴 머리를 정성스레 빗고 있었다.
참고로 그 친구의 머리 길이는 엉덩이를 넘어서는 길이.
새하얗고 동그란 얼굴을 한 사람이 교실문쪽으로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책상에 그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종지에 물을 받아 빗에 톡톡 물을 묻혀 빗고 있는 광경을 어스름한 새벽에 봤다고 생각해 보라.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첫인상.
중국어를 모르는 나와 한국어를 모르는 60여 명의 같은 반 학생들.
그들과 생활하고 적응하기 위한 나의 노력이 시작되었다.
매일 중국어 단어를 열심히 외우고 정말 빠른 속도로 바디랭귀지 스킬이 늘어서 아주 적은 단어와 능숙한 바디랭귀지로 동급생들과 간단한 소통이 가능해졌다.
내 책상에 두꺼운 전지를 하나 두고 반 애들에게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을 쓰라고 했다. 나중에 내가 꼭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중국어를 할 줄 알게 되었을 때 읽어보니, 자신들의 전화번호를 갖은자(大写)로 써두고 "이거 너 못 알아보지? 나중에 읽을 수 있게 되면 전화해." 같은 문구들이 많았다.
*갖은자(大写): 숫자 적을 때 위조 방지를 위해 쓰는 것(一二三四五六七八九十百千 이런 것들을 → 壹贰参肆伍陆柒捌玖拾佰仟 이렇게 쓰는 방법)
쉬는 시간 여자애들끼리 화장실 가는 건 한국과 다를 게 없더라.
근데 어디로 가니?
왜 계단을 내려가니? 이 층에 화장실이 없나 보네.
응? 밖으로 나가야 돼? 비 내리는데?
응? 운동장은 왜? 아... 우와... 아...
푸세식 화장실, 쭈그려 앉았을 때 가슴 밑 정도 오는 벽과 시원하게 뚫려 있는 앞(문이 없음).
일단 왔으니 가야지. 그냥 깡시골에 온 거다 생각하자.
근데 너네 왜 자꾸 나 따라오니? 왜 내 맞은편에 앉으려고 하니?
ㅇ.. 어... 당황스럽네?
너네 먼저 시작해라, 그런 다음에 나는 구석으로 가야겠다.
서로 마주 보고 수다 떨며 큰일을 보는 애들을 뒤로하고 탈출한 나는 그 이후로 물도 잘 마시지 않고, 점심시간마다 집으로 화장실을 다녀왔다.
나와 같은 시기 유학했던 사람들 중 누구도 그런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다고 한다.
부모님과 온 애들은 국제학교나 도심에 있는 괜찮은 학교를 다녔으니까.
우리 학교가 정말 특이했던 거였어.
동네 자체가 종점이니까. 정말 순박한 깡시골이었으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런 특이한 경험 덕분에 이렇게 글로 남길 수 있어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