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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샌달 Jun 01. 2024

폭설, -25℃, 그리고 발목양말

엄마와 함께 내린 중국 공항. 

건너 건너 아는 분이 마침 중국에 일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미리 연락을 해둔 터라 공항에 마중 나와 있었다. 

함께 택시를 타고 내가 앞으로 살게 될 집으로!


비행기를 탄 시간만큼 더 걸려서 도착한 동네는 5층짜리 건물들이 모여있는 한적한 곳이었다. 

전날 폭설이 내려서 길에는 눈이 가득했고, 눈을 아직 치우지 못한 길은 성인 종아리 반 정도가 빠질 정도로 많이 쌓여있었다. 

바삭바삭하고 흐트러짐 없는 눈을 밟으며 집으로 들어가서 잔뜩 들고 온 짐을 놓고 집을 간단히 구경한 다음 바로 생필품을 사러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기모로 된 옷과 롱패딩을 챙겨 갔지만, 그렇게 춥다고 느껴지지 않아서 갈아입지 않고 나갔다. 

온갖 방한용품으로 꽁꽁 싸맨 채 눈만 내놓은 사람들 사이에 누가 봐도 얇게 입은 나는 가는 곳마다 시선을 받았다.


현재 내 방에는 슈퍼싱글보다는 크고 퀸사이즈보다는 작은 침대 프레임, 그 위에 놓인 1센티미터 두께의 무늬만 매트리스인 것이 끝. 

당장 오늘밤부터 자야 했기에 가장 먼저 베개와 이불, 담요를 샀다. 

연한 초록색의 잔잔한 무늬가 있는 적당히 두툼한 이불과 아주 부들부들한, 지브라 무늬가 작게 섞여있는 진한 갈색 담요. 한참의 흥정을 통해 저렴하게 괜찮은 침구 득템!


방한용품 사러 가는 길에 많은 상점 앞에서 사장님들이 엄청난 속도로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바지 속에 입는 털내복 '마오쿠(毛裤 [máo kù])'를 직접 떠서 판매하고 있는 것. 

현란한 손놀림과 실 사이사이에 솜까지 추가하는 여유에 잠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 옆에 언뜻 보면 실크내복처럼 생겼는데 안에 아주 두꺼운 털이 달린 '미엔쿠(棉裤[mián kù])'도 함께 팔고 있었다. 

도와주시는 분이 이 지역 사람들은 청바지 안에 마오쿠나 미엔쿠를 입는다고 하며 지금보다 더 추워질 거니까 하나 사는 걸 추천하셔서 미엔쿠를 하나 구입했다.


이어서 봄, 여름에 신을 법한 가벼운 운동화에서 겉은 인조가죽, 안에 털이 달린 검은색 방한부츠로 바꾸고, 일상복으로 입을 검정 스키바지도 구매했다.


책걸상을 사러 장소 이동.

보기에 아주 가벼워 보이는 하얀색 기본 책상과 등받이와 앉는 곳이 동그랗고 나름대로 푹신해 보이는 팔걸이 없는 작은 의자를 주문하고 배송을 맡긴 후 집으로 돌아왔다.


학교에서 돌아온 룸메언니와 인사를 나누고, 도와주신 분께 감사인사를 전하고, 며칠 뒤 한국으로 돌아갈 엄마와 함께 내 방으로 들어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중국 시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는데 중국어로 된 간판과 사람들이 중국말을 한다는 거 외에는 크게 다른 게 느껴지지 않고, 전혀 춥지도 않았다. 

아직 중국에 왔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겠지. 


그렇게 중국에서의 첫날이 끝났다.


다음날 아침, 엄청난 추위에 잠에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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