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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샌달 May 25. 2024

일곱 살과 일주일

내가 일곱 살 때 사촌오빠가 미국으로 갔다. 

자세한 건 알지 못하고 기억도 나지 않지만, 오빠의 설렘 가득하고 행복해하는 얼굴은 확실히 기억난다. 

그때부터 나도 막연하게 미국을 가고 싶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어린 나에게 미국은 외국을 의미하는 단어였고, 그날부터 열심히 미국(=외국) 가게 해달라는 기도가 시작되었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미국으로 한정하지 않은 외국을 가고 싶다는 기도로 바뀌었고, <황제의 딸>과 같은 중국드라마를 재밌게 봤지만, 나도 모르게 주입된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인해 '중국 빼고' 외국을 가고 싶다는 조건이 추가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의 마무리를 앞둔 어느 날,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수업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이야기를 하자고 하셨다.

"너 중국 갈래?"

갑작스럽긴 했지만, '중국도 외국이니까!'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면서 큰 고민 없이 "갈래!"라고 대답했다. 10년 만에 내 기도가 응답받은 것 같아서, 외국에 갈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이 기뻐서 다른 생각이나 고민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렇게 나의 중국행이 결정되었다. 

아는 사람이라곤 그냥 누군지 아는, 나보다 한 살 많은 언니가 유일한 낯선 이국땅으로.


대사관에 가서 비자부터 신청하고, 비자가 발급되는 기간 동안 중국으로 갈 준비 시작!


고등학교 자퇴서 제출을 위해 엄마와 함께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그때 선생님이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차피 실패하고 금방 돌아올 거 자퇴 말고 잠시 다녀오는 걸로 하시죠. 자퇴하고 갔다가 돌아와서 다시 학교 들어오기 어렵습니다."

빈말이라도 응원하지는 못할망정 확신에 찬 모습으로 어차피 실패하고 돌아올 거라니... 

선생님이자 어른이 할 말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 말을 엄마도 같이 들었다는 것이 너무 속상했다.

자퇴서를 제출하고 가방을 가지러 교실로 돌아갔고, 무슨 일인지 궁금했던 우리 반 애들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너 갑자기 어디가?"

"중국..."

"ㅇ... 어? 언제 가는데?"

"일주일 뒤에."

"어?!?!"

너무 갑작스러운 자퇴와 출국 소식에 당황한 얼굴들을 뒤로한 채, 기말고사를 코앞에 둔 애들에게 의도치 않은 충격을 선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 우리 반 애들에게 학교에 잠깐 오라는 연락을 받고 교실로 향했다. 

뒷문으로 조용히 들어가려고 했으나 잠겨있어서 앞문으로 들어가니 반 애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모두 나를 향하고 있었다. 

칠판에는 메시지와 그림들이 빼곡히 적혀있었고, 교탁 위엔 초코파이를 쌓아 만든 케이크가 놓여있었다.

담임선생님 수업시간을 잠깐 빌려서 짧게 열린 송별회. 

서른다섯 명이 전지 두 장에 빼곡히 적은 롤링페이퍼를 받는 순간 울어버렸다. 

(몇 명은 나 울리기 성공했다고 좋아하는 거 봤다!)

방학하면 다시 만나러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롤링페이퍼를 소중히 품에 안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가까운 서점으로 가서 다양한 중국어 책 중 '코카콜라'로 하나를 골라 캐리어에 넣고, 중국 도착해서 당장 필요할만한 생필품과 물품들을 틈틈이 구매하여 이민가방에 차곡차곡 넣으면서도 실감 나지 않았다. 

며칠 뒤 나 진짜 중국에 가 있는 건가? 진짜로?


12월 3일.

얇은 긴팔 티셔츠에 청바지, 당시 유행하던 보온성 꽝인 솜잠바, 발목양말과 가벼운 운동화를 신은 열일곱 살의 나는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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