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나의 첫 선생님
李老师와의 첫 만남, 첫 수업
나의 첫 중국어는 정년퇴직한 소학교(小学=초등학교) 선생님께 배웠다.
퉁퉁하고 덩치 큰, 눈매가 살아있는 할머니.
평소 총기(聰氣) 가득한 눈과 장군 같은 포스로 계시지만, 내 앞에서는 호탕한 웃음소리와 순수한 표정으로 귀여움을 한껏 뿜어내시는 우리 선생님.
룸메언니가 먼저 그 선생님께 배우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와 함께 언니를 따라 선생님 댁으로 인사드리러 갔다.
인사보다는 면접에 가까운 자리였지.
날 보고 가르칠지 말지 결정하기로 한 첫 만남이었으니까.
아는 말이라고는 성조 없는 '니하오'와 '씨에씨에'.
눈빛으로라도 말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들어가서 인사하고 앉았는데 바로 수락하셨다.
첫 수업날. (아직 학교 가기 전)
한번 가본 길은 잘 찾기 때문에 룸메언니에게 걱정 말라며 학교를 보내고 혼자 선생님 댁으로 향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아주 넉넉한 시간을 잡고서.
45분 정도 동네를 열심히 돌았는데 선생님 집을 찾을 수 없었다. (실제로는 15~20분 거리)
답답했던 나는 길 가던 사람을 잡고 공부한 몇 개의 중국어 중에 "请问 [qǐng wèn](말씀 좀 여쭙겠습니다)"을 말하고 손가락으로 선생님 집 단원 '1-2-1'을 열심히 표현한 후, "어떻게(손을 들고 어깨를 들썩하며) 가나요(열심히 걸어가는 시늉을 하며)?"라고 한국말로 물어봤다.
그 사람은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지나갔다. 당황스러웠을 텐데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려고 한 게 고마웠다.
근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집으로 얼른 돌아가서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바로 받은 선생님께 영어도, 중국어도 못하는 나는 최대한 아는 걸 끄집어내서 말했다.
"老师 [lǎo shī](선생님), I can't find you."
왠지 선생님이 마중 나오신다고 하는 것 같아서 전화를 끊고 다시 밖으로 나가 눈밭을 열심히 달렸다.
동네를 몇 바퀴 돈 건지 영하 25도 날씨에 땀이 날 정도로.
하지만 또 못 찾고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한 상황. 그때 갑자기 생각난 중국어 단어들!
역시 사람은 위기에 처하면 강해지는 건가?
"찐티엔 부취↘ 밍티엔 취↗? (今天不去,明天去?(오늘 안 가고, 내일 가요?))"
아는 단어를 최대한 동원해 전달한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화기 너머에서 "응응(嗯嗯)!!"
이렇게 해결되고 그다음 날엔 헤매지 않고 잘 찾아가서 선생님을 만나 찐한 포옹부터 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거동이 불편하신데도 내 걱정이 되셔서 한참 걸어 나오셨었다고 한다.
손녀 오기 기다리다가 마중 나오는 할머니 마음이셨던 것 같아.
늘 나와 룸메언니를 손녀처럼 대해주셨으니까.
수업은 중국 소학교 어문(語文) 교과서(=초등학교 국어 교과서)로, 1학년부터 시작!
어문책과 연필, 지우개를 챙기고, 선생님 발음을 녹음하기 위해 녹음&재생 기능이 있는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와 공테이프를 챙기면 중국어 공부 가방 완성.
그렇게 한국어를 모르는 중국인 할머니와 중국어를 모르는 한국인 고등학생의 수업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