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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샌달 Jul 06. 2024

알아들었니?

중국어 왕초보니까.

선생님과 할아버지는 각각 자기 방에서 생활하신다.

나와 룸메언니가 놀러 갔을 때 함께 만두 빚거나 요리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각자의 방에서 시간을 보내신다.

풍채 좋고 호탕한 선생님과 다르게 할아버지는 왜소한 체격의 조용하신 분.

두 분의 소통은 방과 방 사이 벽 위쪽에 있는 창문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래서 그 창은 늘 열려있다.

나와 수업할 때도 예외는 아니다.


선생님이 늘 할아버지를 부르는 호칭이 있는데, 자주 들어서 자동으로 반복학습이 되었다.

중국어 기초가 전혀 없었던 나에게 단어 하나하나가 소중했기 때문에 뭐든 열심히 배우고 연습했다.


수업 중간중간 선생님이 나에게 반복적으로 말하는 것도 있었는데,

약간 흘러가는 발음으로 말씀하셔서 무슨 뜻인지 모르고 그냥 넘어갔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 도중 선생님이 크게 심호흡을 하신 후 또박또박 나에게 말하셨다.

"알.아↘들↗었↘니↗?"

놀란 눈으로 선생님만 바라보는 내게 수업시간에 자주 말씀하시던 "明白了吗[míng bai le ma]?"가 이 뜻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룸메언니한테 물어보고 연습하신 거라고.

얼화(儿化*)로 인해 내 귀에는 '밍발러마?'로 들렸고, 어떤 글자인지 몰라서 찾아보지 못했었다.

덕분에 발음과 뜻, 용도가 명확하게 각인되었고, 내가 강의할 때 정말 많이 쓰는 말 중 하나가 되었다.


* 明白[míng bái]: ①[형] 분명하다. 명확하다. 명백하다. ②[형] 공공연하다. 숨김없다. 솔직하다. 공개적이다. ③[형] 총명하다. 현명하다. 분별 있다. ④[동] 이해하다. 알다.
* 儿化[ér huà]: [명] 글자 뒤에 ‘儿’이 붙어, 읽을 때 앞 글자와 붙어 같이 소리 나며, 앞 음절의 운모(韻母)를 권설(捲舌) 운모가 되게 하는 것을 말함.
(출처: 네이버중국어사전)


그리고, 잊지 못할 또 하나의 단어가 있다.


하루는 선생님께 할아버지에 대해 말씀드릴 게 있었다.

아주 공손하게 손을 펴서 할아버지 방을 가리키며 "那位老头儿~~"이라고 말하자마자 선생님이 폭소를 터뜨리셨다. 정말 크고 긴 웃음소리와 함께 눈물까지 흘리시면서.

(*位[wèi]: [양][존칭] 분, 명 (사람을 셀 때))

그러시고는 할아버지에게 "老头儿!她叫你‘老头儿’(老头儿! 얘가 당신을 '老头儿'이라고 불렀어!)"라고 소리치시고는 계속 큰 소리로 웃고 계셨다.

왜 웃는지, 내가 무슨 말실수를 한 건지 가르쳐주실 생각도 하지 않으시고.

정말 즐거워 보이는 모습으로 나를 귀여워해주셨다.


중국어를 아는 사람은 읽으면서 이미 웃고 있겠지만,

'老头儿[lǎo tóur]'은 '영감, 할아범'이라는 뜻이다.

비슷한 연배의 어르신이, 또는 자신의 아버지를 애정을 담아 이렇게 부를 수는 있지만, 나는 아니잖아.


선생님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선생님께 할아버지는 어떻게 불러야 하냐고 여쭤본 적이 있다.

때 알려주셨다. '老头儿'이라고 부르면 된다고.

그래서 정말 공손하게 정성을 다해 또박또박 말한 건데.

할아버지(爷爷[yé ye])보다 영감, 할아범을 먼저 배운 셈이네.


당시에는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었다.

전혀 의도치 않게 예의 없는 아이가 되어버린 기분이었거든.

중국어를 아예 모르기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지만.

덕분에 또 하나의 단어가 각인되어 버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열일곱 살의 아이가 아주 공손한 자세와 말투로 "저 영감님"이라고 부른 거잖아.

할머니, 할아버지 눈에는 그냥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그냥 귀여워 보이셨을 것 같다.


소소한 추억들이 잔뜩 쌓여 그 시기를 회상해 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

우리 선생님 너무 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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