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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샌달 Jul 20. 2024

'사람훈련' 심화과정의 시작 (1)

어릴 때부터 나이에 비해 정말 많은 사람을 접하면서 살았다.

겪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일도 '사람' 때문에 많이 겪으면서.

누구나 살면서 사람 때문에 힘든 일이 많지만, 유독 나에게 많이, 자주 그런 일들이 생겼다.

나는 그걸 '사람훈련'이라고 부른다.


청담동에서 부유하게 살다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유학을 온 룸메언니.

부모님이 원하는 건 뭐든 다 들어주면서 키운 막내딸.

어릴 때부터 중국어 과외를 받아서 이미 유창한 상태로 나보다 1년 정도 먼저 중국에 와서 이미 적응이 다 된 상태였다.

옆 라인 조선족 아주머니가 모든 집안일을 해주고, 중국인 남자친구와 연애도 하고 있었으니까.


그와 반대로 나는 장녀이자, 일주일 만에 중국행이 정해진 중국어 왕초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집을 그리워할 시간이 전혀 없었던 첫 룸메와의 10개월은 결과적으로 나의 모든 표정을 빼앗아갔다. 

늘 인상을 찡그리고 있다는 걸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고 힘겨웠던 룸메와의 생활 일부를 공유해보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험담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치열하게 산 나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뿐이다.


#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부르는 그녀

우리 동네가 아주 외곽에 위치하고 있어 특별히 갈만한 곳도 없고 위험하기 때문에 학교에 있는 시간 외에 거의 대부분 집에 있다.

각자 방에서 공부나 할 일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살기 위해 열심히 중국어를 터득해야 하는 나에게 하루가 너무 짧았다. 

그 와중에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부르는 룸메언니 때문에 더 짧아진 나의 시간.

"잠깐 내 방에 와봐."라는 말을 하루에 수십 번 들어야 한다.

언니가 나를 부르는 이유는 딱 두 가지.

자기가 공부하는 책에 있는 단어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이 단어 알아?"

중국어 수준이 아예 다른데 내가 어떻게 알겠어? 당연한 듯 모른다고 답하면

"왜 몰라? 너 배웠잖아!! 왜 모른다고 해?!!" 라며 소리를 지른다.

처음에는 뭔가 싶어서 당황했다가 하도 자주 그래서 '또 그러나 보다.' 하며 넘어갔다.

또 다른 이유는 어디가 아프다고 날 부른다.

머리가 아프다, 배가 아프다, 잇몸이 아프다 등등 몸에 있는 모든 신체기관이 돌아가면서 자주 아프다.

그때마다 내가 엄마처럼 이것저것 챙겨주고 돌봐줬지. 

아픈 거 해결해 주고 재워주기까지 내가 다 해줬다.


# 꿀잠 자기 어려운 환경

매일 밤 12시부터 20분 정도, 언니가 갑자기 큰소리로 무언가를 읽거나 떠든다.

새벽 4~5시에 일어나야 하는 나는 그전에 간신히 잠에 들었다가 그 소리에 매일 깨는 거지.

한바탕 시끄럽게 한 언니는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코를 골며 잠에 빠지고,

금방 잠들기 어려운 나는 뜬 눈으로 뒤척이다가 뒤늦게 잠드는 일상.

매일 새벽 4~5시에 일어나야 하니까 언니도 일찍 자라고, 밤에 힘들다고 얘기를 해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큰소리에 잠이 깨고, 언니의 코 고는 소리와 이 가는 소리로 선잠을 자는 날의 연속이었다.


# 지금 하라면 못 할 것 같은 (※주의: 읽으면서 상상 금지!)

어느 날 언니 머리 전체에 빨간 뾰루지가 생겼다. 크기도 제법 큰 것이 빼곡하게 촘촘히.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어떤 약을 처방해 주면서 아침, 저녁으로 하나씩 다 발라줘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한 달 가까이 아침, 저녁으로 약을 발라줬다.

면봉에 약을 묻혀 그 많은 걸 하나하나 다 발라주면 언니의 머리카락은 다 젖고, 나는 진이 빠지고.

처음 2~3일만 고마워하고 그 이후에 당연시 여기며 성질을 부려도, 빨리 낫기를 바라며 매일 그렇게 했다. 

언니 엄마도 이렇게까지는 못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했을까? 비위 상하는 것보다 돌봐주려는 마음이 컸던 걸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풀어볼까?

읽으면서 괜히 기분이 안 좋아졌다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그걸 왜 다 받아주고, 다 해주면서 지냈냐고? 

답답하다고? 

다 받아준 나도 잘한 건 아니라고?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냥 특별한 이유를 갖지 않고 돌봐줬다.

너무 오냐오냐 커서 모르는 게 많나 보다, 자기 조절이 아직 어렵구나 생각하면서.

그럴 수도 있지. 그런 사람인가 보다 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면서 지냈다.

달라지고 발전될 모습을 기다리면서. 그만큼 나도 성장하고 있는 것일 테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때의 나는 매사에 열심을 다해 살아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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