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나이에 비해 정말 많은 사람을 접하면서 살았다.
겪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일도 '사람' 때문에 많이 겪으면서.
누구나 살면서 사람 때문에 힘든 일이 많지만, 유독 나에게 더 많이, 자주 그런 일들이 생겼다.
나는 그걸 '사람훈련'이라고 부른다.
청담동에서 부유하게 살다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유학을 온 룸메언니.
부모님이 원하는 건 뭐든 다 들어주면서 키운 막내딸.
어릴 때부터 중국어 과외를 받아서 이미 유창한 상태로 나보다 1년 정도 먼저 중국에 와서 이미 적응이 다 된 상태였다.
옆 라인 조선족 아주머니가 모든 집안일을 해주고, 중국인 남자친구와 연애도 하고 있었으니까.
그와 반대로 나는 장녀이자, 일주일 만에 중국행이 정해진 중국어 왕초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집을 그리워할 시간이 전혀 없었던 첫 룸메와의 10개월은 결과적으로 나의 모든 표정을 빼앗아갔다.
늘 인상을 찡그리고 있다는 걸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고 힘겨웠던 룸메와의 생활 일부를 공유해보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험담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치열하게 산 나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뿐이다.
#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부르는 그녀
우리 동네가 아주 외곽에 위치하고 있어 특별히 갈만한 곳도 없고 위험하기 때문에 학교에 있는 시간 외에 거의 대부분 집에 있다.
각자 방에서 공부나 할 일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살기 위해 열심히 중국어를 터득해야 하는 나에게 하루가 너무 짧았다.
그 와중에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부르는 룸메언니 때문에 더 짧아진 나의 시간.
"잠깐 내 방에 와봐."라는 말을 하루에 수십 번 들어야 한다.
언니가 나를 부르는 이유는 딱 두 가지.
자기가 공부하는 책에 있는 단어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이 단어 알아?"
중국어 수준이 아예 다른데 내가 어떻게 알겠어? 당연한 듯 모른다고 답하면
"왜 몰라? 너 배웠잖아!! 왜 모른다고 해?!!" 라며 소리를 지른다.
처음에는 뭔가 싶어서 당황했다가 하도 자주 그래서 '또 그러나 보다.' 하며 넘어갔다.
또 다른 이유는 어디가 아프다고 날 부른다.
머리가 아프다, 배가 아프다, 잇몸이 아프다 등등 몸에 있는 모든 신체기관이 돌아가면서 자주 아프다.
그때마다 내가 엄마처럼 이것저것 챙겨주고 돌봐줬지.
아픈 거 해결해 주고 재워주기까지 내가 다 해줬다.
# 꿀잠 자기 어려운 환경
매일 밤 12시부터 20분 정도, 언니가 갑자기 큰소리로 무언가를 읽거나 떠든다.
새벽 4~5시에 일어나야 하는 나는 그전에 간신히 잠에 들었다가 그 소리에 매일 깨는 거지.
한바탕 시끄럽게 한 언니는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코를 골며 잠에 빠지고,
금방 잠들기 어려운 나는 뜬 눈으로 뒤척이다가 뒤늦게 잠드는 일상.
매일 새벽 4~5시에 일어나야 하니까 언니도 일찍 자라고, 밤에 힘들다고 얘기를 해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큰소리에 잠이 깨고, 언니의 코 고는 소리와 이 가는 소리로 선잠을 자는 날의 연속이었다.
# 지금 하라면 못 할 것 같은 (※주의: 읽으면서 상상 금지!)
어느 날 언니 머리 전체에 빨간 뾰루지가 생겼다. 크기도 제법 큰 것이 빼곡하게 촘촘히.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어떤 약을 처방해 주면서 아침, 저녁으로 하나씩 다 발라줘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한 달 가까이 아침, 저녁으로 약을 발라줬다.
면봉에 약을 묻혀 그 많은 걸 하나하나 다 발라주면 언니의 머리카락은 다 젖고, 나는 진이 빠지고.
처음 2~3일만 고마워하고 그 이후에 당연시 여기며 성질을 부려도, 빨리 낫기를 바라며 매일 그렇게 했다.
언니 엄마도 이렇게까지는 못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했을까? 비위 상하는 것보다 돌봐주려는 마음이 컸던 걸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풀어볼까?
읽으면서 괜히 기분이 안 좋아졌다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그걸 왜 다 받아주고, 다 해주면서 지냈냐고?
답답하다고?
다 받아준 나도 잘한 건 아니라고?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냥 특별한 이유를 갖지 않고 돌봐줬다.
너무 오냐오냐 커서 모르는 게 많나 보다, 자기 조절이 아직 어렵구나 생각하면서.
그럴 수도 있지. 그런 사람인가 보다 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면서 지냈다.
달라지고 발전될 모습을 기다리면서. 그만큼 나도 성장하고 있는 것일 테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때의 나는 매사에 열심을 다해 살아냈다는 것.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