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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샌달 Jul 27. 2024

'사람훈련' 심화과정의 시작 (2)

#집안일

집에서는 부모님이 다 해주고, 중국 와서는 조선족 아주머니가 다 해줘서 집안일을 잘 모른다는 룸메언니.

어릴 때부터 눈으로, 행동으로 집안일을 배운 나.


내가 온 이후, 조선족 아주머니는 더 이상 필요가 없었다. 내가 하면 되니까.

언니는 조선족 아주머니에 대한 불만이 많았던 터라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방청소와 빨래는 각자 알아서, 거실과 주방, 화장실 청소는 분담해서 하기로 했다.

이전 우리 집 소개글을 봤다면 알겠지만, 주방과 화장실은 특별히 청소할 것이 없다. 주방은 간이조리대만 닦아주면 되고, 화장실은 전체적으로 물만 뿌리면 되니까.

거실 청소가 힘들지.

싸구려 비닐장판에 물걸레질을 하면 먼지와 머리카락이 더 들러붙어 청소하기 힘들다.

틈날 때마다 청소를 하지만, 늘 만족할 만큼 깨끗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럼 청소 분담은 어떻게 했을지 예상이 되는가?

주방과 화장실은 룸메언니가, 거실은 내가.

언니 방에서 기어 나오는 긴 머리카락으로 거실 바닥 청소가 더 힘들었다.


요리는 온전히 내 몫.

내가 요리를 하면 언니가 설거지를 하기로 했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차려서 언니를 깨우고, 두 개의 도시락을 싸서 같이 등교를 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저녁, 언니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자기가 왜 매일 설거지를 해야 하냐고.

언니가 하겠다고 한 건데, 또 왜 저러는 걸까?

갑자기 자기가 밥을 하겠단다. 그래서 그러라고 했다.

못 미더워서 슬쩍 봤더니, 전기밥솥 내솥에 쌀을 부은 뒤, 물을 넣고 한번 손으로 휘저은 다음 바로 전원스위치를 눌렀다.

어디서 본 건 있는지 딱 한 번이지만 쌀을 휘젓긴 했네.

근데 그 물을 버리는 것까지는 못 봤나 보다.


뿌듯해하는 언니가 민망하지 않게 그냥 놔두고 반찬을 만들었다.

언니는 '밥'을 한 걸로 이미 자기 할 일을 다했다고 뿌듯함에 취해있었다.

찝찝함을 뒤로하고 언니가 한 밥을 먹었다.

이제 밥은 나에게 맡기라고 말하기도 전에 자기 이제 밥 안 한단다.

정말 다행이었다.


#울 시간도, 아플 시간도 없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하는 상황에서 룸메까지 케어해야 했던 나는 그 힘듦을 해소할 시간도, 그리움에 울 시간도 없었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보낸 게 오히려 낫지 않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그게 다 축적되어 나중에 한꺼번에 몰아치면 너무 힘드니까 그때그때 풀어주는 게 중요하다. (그때는 몰랐다)


어릴 때부터 힘들거나 아플 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듣는 그 사람이 속상할까 봐 걱정돼서.

나만 힘들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대부분의 일들이 누구에게 말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

굳이 다른 사람도 함께 기분이 다운될 필요는 없잖아.

혼자 이리저리 해결 및 해소방법을 찾으며 살아왔고, 현재의 내가 되었다.


하루는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초저녁부터 침대에 누워있었다.

갑자기 내방 문이 열리더니 언니가 자기 친구들 만나러 가자고 했다.

처음 내 입으로 아프다고 말했다.

"나 아파. 몸이 너무 안 좋아."

그 말에 언니는

"내 친구들이 너 보고 싶다고 하잖아!!! 얼른 일어나!!!"

소리를 지르며 난리 치는 언니를 따라 언니 친구들이 모여있는 놀이터로 갔다.


나는 혼자 작은 벤치에 앉아있고, 언니는 자기 친구들과 수다 떨며 잘 놀고 있었다.

'나는 지금 왜 여기 있어야 하는가'하는 생각을 하며 가만히 앉아있다 보니 언니가 내 앞으로 씩씩거리며 걸어왔다.

"야 너 아프냐고 내 친구들이 물어보잖아! 왜 그러고 앉아있어?!!!"

하아... 내가 아까 나오기 전에 아프다고 말했잖아?


그렇게 처음으로 나의 힘듦을 말한 게 허공에 흩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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