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룸메언니와 나는 아직 폰 없이 집전화만 사용하고 있었다.
국제전화카드를 구매해 가족과 짧은 통화를 하거나 동네 친구들과 약속을 잡는 용도가 전부였기 때문에 딱히 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늘 집, 학교, 시장 등 가는 곳이 정해져 있고,
대부분의 시간은 집에 있으니 가끔 가족들이 잘 지내는지 거는 짧은 안부 전화도 늘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집전화로 충분했다.
어느 날, 우리의 유일한 연락수단인 집전화가 먹통이 됐다.
바로 친구 아버지께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고 건물 계단 옆 전화배선함을 확인해 보니 우리 집 선만 잘려있었다. 아주 깔끔하게.
누가 이런 짓을 한 걸까? 소름이 돋았다.
이 동네에 외국인은 딱 우리 둘 뿐이고,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아는데.
동네사람들은 우리가 시시각각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는데...
괜히 우리가 아는 사람들이 다 의심되기 시작하고, 무서워졌다.
심지어 우리가 도움을 요청한 친구 아버지까지도.
일단은 친구 아버지가 공구함을 가져와 잘린 선을 이어주셨다.
그렇게 이 일은 마무리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열흘 정도 지난 어느 날 또 한 번 우리 집 전화가 먹통이 됐다.
언니와 나는 바로 전화배선함을 확인하러 계단으로 향했다.
또 잘려있는 선.
게다가 이번에는 쉽게 잇지도 못하게 잘라놨다.
확실하게 의도를 갖고 자른 게 분명해 보였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둘이 손을 꼭 잡고 공안국(公安局(우리나라로 따지면 경찰서))에 찾아갔다.
룸메언니가 유창한 중국어로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공안(경찰) 아저씨가 차에 타라고 했다.
공안국은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린데 차를 타고 간다고?
죄지은 것도 없는데 공안차를 타려니 괜히 떨렸다.
그렇게 공안 봉고차에 공안 3명, 나와 룸메언니가 타고 우리 집 앞으로.
이미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있었다.
다들 우리가 어디에 갔는지 이미 다 알고 있었을 테니까.
사람들의 눈빛과 행동을 훑어보며 차에서 내렸다.
의심하고 싶지 않지만, 저들 중에 범인이 있을 것 같았다.
공안 두 명이 우리와 함께 배선함을 확인하러 갔다.
동네 사람 그 누구도 우리에게 말을 걸지 못하고 있었다.
배선함을 열고, 보고, 닫고, 끝.
5분도 안 되어 공안 아저씨들은 차를 타고 돌아갔고, 우리는 바로 집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다시는 우리 집 전화선이 잘리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구매했다.
그래서 범인은?
그건 다음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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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바로...
룸메언니가 혼자 살 때 집안일을 도와주시던 조선족 아주머니는 우리 옆 라인 1층에 살고 있다.
그 남편은 사지가 마비되어 하루종일 휠체어에 탄 채 활짝 열린 창문으로 밖을 보거나, 아예 밖으로 나와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하나같이 아주머니 남편이 머리가 좋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하루종일 그 좋은 머리로 '저 한국 여자애들을 어떻게 할까' 고민한 거야.
그 아이디어를 아주머니가 행동으로 옮겼고.
내가 오면서 조선족 아주머니는 더 이상 언니의 집안일을 해줄 필요가 없어졌다.
다르게 말하면, 편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잃게 된 거지.
아마도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게 아닐까 추측만 해본다.
덕분에 중국공안 차 타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