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 만에 중국에서 첫 귀국.
18킬로그램이 쪄서 얼굴은 보름달이 되었고, 한 번도 미용실에 가지 못한 머리카락도 많이 길었다.
한 마디로 내 모습은 마치 해그리드? ㅎㅎㅎ
감당되지 않는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고 귀국장을 나왔을 때, 첫 귀국이라고 마중 나온 부모님이 저 멀리에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열심히 가고 있었는데 내가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귀국장 문을 바라보고 있던 부모님.
중국인 비하는 아니지만 중국인처럼 변해버린 딸을 알아보지 못하신 거였다!
우리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10개월 동안 힘들었던 몸과 마음에 치유제가 되었다.
내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눈물이 나고, 내 몸 어디를 건드려도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난 정말 씩씩하게 잘 지내다가 왔는데 자꾸 눈물이 나오니 억울했다.
계속 나 진짜 괜찮다고, 잘 지내다가 왔다고 얘기하면서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내가 눈물을 보이면 가족들 속상하잖아. 나 진짜 잘 지내다가 왔는데...
한국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스트레스로 인한 붓기가 훨씬 많았던 내 몸은 서서히 회복이 되었고, 버티고 이겨내면서 지내느라 알게 모르게 힘들었던 마음도 치유받았다.
역시 우리 가족이, 우리 집이 최고!
다시 돌아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살아갈 힘을 잔뜩 충전한 시간이었다.
중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날, 가족 모두가 공항으로 배웅을 나왔다.
그리고 울었다.
왜 울었는지 말로 설명하기 어렵고 복잡했지만 우리 가족은 다 알고 있는 듯했다.
중국으로 돌아가는 공항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운 날이었다.
중국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집'을 해결해야 했다.
귀국하기 바로 직전, 급하게 집을 구해서 이사를 했다.
일단 룸메언니와 떨어지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컸기 때문에 당장 이사 갈 수만 있으면 괜찮았다.
게다가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가 외국인을 졸업시켜 본 적이 없어서 졸업장 발급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급하게 구한 집은 집 안 바닥 전체가 상점에 있을법한 카펫이 깔려있었다.
현관에 들어가자마자 작은 싱크대와 화장실이 있고, 양옆으로 방이 두 개.
화장실에는 세면대와 변기가 나란히 놓여있고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서 있을 정도의 공간만 있었다.
우선 이사를 하고 정신 차리고 보니 살 수가 없는 집이었다.
사실, 현관 열자마자 꿉꿉한 공기와 조금만 움직여도 먼지가 날리는 뻣뻣한 카펫 바닥부터 살 집이 아니었지.
그저 얼른 독립하고 싶은 마음에 집을 계약할 당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탓이다.
중국으로 돌아온 이후,
한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 돌아온 조선족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 집을 구하고 이사를 했다.
벌써 이사만 두 번째. 당시 따로 이삿짐센터가 없었다.
내가 트럭(+기사)을 구하고 짐을 싸서 1층에 놓아두었다가 예약한 시간에 트럭기사가 오면 짐을 싣는 방법.
기사에게 짐을 옮기거나 싣는 걸 부탁하려면 돈을 더 줘야 했기에 웬만한 건 내가 다 했다.
내가 아무리 낑낑대고 힘겨워해도 돈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절대 움직이지 않는 트럭기사를 보면서 또 세상을 배우기도 했다.
드디어 나 혼자 산다!
룸메언니는 교회 친구와 함께 살기로 했단다.
과연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은 이미 결과를 알지만, 그리고 아마 이걸 읽는 당신도 예상할 수 있겠지만)
일단 내가 드디어 혼자 산다는 게 중요했다.
새로운 동네에서의 나 혼자 생활과 새로운 학교에서의 날들이 기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