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없인 못 살아 정말 못 살아!"
해외에 나가면, 라면을 먹으면서 김치 생각이 나는 게 당연한 한국인.
그렇게 따지면 나는 한국인에 속하지 못할 수도.
어릴 때부터 다른 김치는 좋아했는데 유독 배추김치와는 친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배추김치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내 또래라면 공감하겠지만, 학교 급식이 정말 많은 사람의 입맛을 바꿔놓았다.
먹고 싶지 않은 반찬도 무조건 배식받아야 하고, 남기는 것도 안된다고 하며 억지로 다 먹게 했었다.
강제로 마신 우유 때문에 토를 하던 수많은 어린이들.
(제티, 네스퀵, 마일로에 의지해서 어떻게든 마시려던 노력마저 차단한 악질 선생님도 있었다.)
그 영향으로 나 역시 소고기뭇국, 배춧국, 각종 콩밥 등 멀리하는 몇 가지 음식이 있다. (안 먹지는 않지만 딱히 선택지에 두지도 않는)
배추김치에 대한 나의 중립이 살짝 싫어하는 쪽으로 기울게 된 시작점 역시 급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혼자 중국에 간 고등학생.
대부분 가족 전체가 중국에 왔기 때문에 부모님이라는 보호막이 있었던 친구들과 달리 나는 혼자.
'애 혼자' 왔다는 이유로 안쓰럽게 보는 시선들이 몇몇 있었지만, 어떻게 이용해 먹을까 생각하며 내 뒤통수를 "후려 갈기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그 덕분에 지금의 단단한 내가 되었으니 결과적으로는 감사하지.
나를 챙겨주려는 친구 부모님들은 모두 혼자 밥 해 먹기 힘들지? 하며 배추김치'만' 챙겨주셨다.
챙겨주시는 것이 감사해서 거절도 못하고 다 받아온 나.
그리하여 내 냉장고에는 가지각색의 배추김치로만 가득했다.
내 속도 모르고 "김치가 많으면 부잔데 이제 너 부자네!"라고 이야기하는 어른들을 보며 어색한 리액션으로 감사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그 말의 출처가 어디야?!
돈을 아껴야 하기에 일단 받은 김치를 이용해 매 끼니를 만들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김치찌개, 김치볶음밥, 김칫국, 볶음김치, 김치전을 시작으로
참치, 고기, 생선, 햄, 통조림, 치즈, 구황작물, 갖가지 채소와 버섯 등등 섞을 수 있는 재료들은 다 섞어보고
통째로, 큼직하게 잘라서, 길게 찢어서, 다져서, 믹서기에 갈아서
생으로, 탕, 볶음, 구이, 찜, 튀김, 부침, 삶기, 중탕까지.
정말 김치로 할 수 있는 요리는 (괴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까지 모두) 다 해본 것 같다.
그냥 일반 냉장고였기 때문에 김치가 맛있게 익어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고 있었고
죽은 김치도 물에 씻어 어떻게든 살려서 요리를 해 먹으며 그렇게 배추김치와는 점점 더 멀리멀리.
이 정도면 김치를 좋아하던 사람도 질릴 것 같지 않은가?
"네가 미련하게 돈 아낀다고 김치만 먹어서 그렇지. 너의 잘못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당시의 나는 돈을 최대한 아껴야 한다는 것이 1순위였기 때문에 다른 건 생각하지 못했다.
현재의 나는 여전히 배추김치와 친하지 않다.
가끔 파김치, 물김치, 깍두기 등 다른 김치를 담가서 먹기도 하지만 배추김치는 굳이 손을 대지 않는다.
김치 없이 밥을 잘 먹고, 김치만 있으면 밥맛이 없어진다.
(함께 식사메뉴를 고를 때 배추김치만 잔뜩 들어간 김치찌개 먹자고 하는 사람과는 다시 같이 밥을 먹고 싶은 마음이 안 든다.)
어떤 사람에게는 편식한다는 이야기로, 어떤 부분은 짠내 나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나는 지금 무미건조하게 "이런 일이 있었어. 그냥 그렇다고." 정도의 말투로 이 글을 쓰고 있다.
다들 그런 음식 있지 않나요?
어떤 이유로 질려버려 한동안 또는 평생 멀리하게 된 음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