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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샌달 Aug 31. 2024

수포자의 담임은 수학선생님 (1)

첫 학교에서의 짧은 시간을 뒤로하고 졸업장 발급이 가능한 학교로 옮겼다.

중국에서의 두 번째 학교엔 외국인이 총 6명, 그리고 전부 한국인.


중국어로 말하기는 아직 어려웠기 때문에 내가 공부한 단어들을 열심히 조합해서 편지를 써갔다.

학교에 가서 처음 만난 사람은 교장 선생님.

공손히 인사를 드리고 교장 선생님께 편지를 건넸다.


바로 이어서 담임이 선생님도 만나게 됐다.

'착실' 두 글자가 커다랗게 쓰여 있는 듯한 첫인상.

적당히 벗어진 이마와 180cm 정도 되는 키, 잇몸이 훤히 보이는 도드라진 입, 만화로 그린 프랑켄슈타인이 생각나는 30대 후반 남자 선생님.

중국은 고등학교 3년 내내 담임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졸업 때까지 함께 할 선생님.


교장선생님은 편지를 써온 학생은 처음이라며 담임 선생님에게 너무 과하게 칭찬을 하시더라. 

(귀는 많이 트이고 있었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공부 잘하는 아주 우수한 학생이라고.


네? 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요?

저 공부의 ㄱ도 꺼낸 적이 없다고요!!!

그냥 전 잘 부탁드린다는 내용만 편지에 적었는데 어딜 봐서 제가 공부를 잘한다는 거죠?


하지만 나는 말을 하지 못했고, 담임 선생님의 눈은 초롱초롱 빛이 났다.

곧이어 교장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을 나에게 정식으로 소개해주며 (이 글의 제목에서 이미 눈치챘겠지만) 수학 선생님이라고 하셨다.


우와 어떡하지...?

한국에서 '공통수학'만 배우고 온, 그러나 이미 중반부터 수포자였던 나인데...

여긴 이미 '수Ⅰ'이 끝나고 '수Ⅱ'를 시작한 상태.

그리고 중국의 시험에는 객관식이란 없다. 찍을 수가 없다는 얘기지.

아 몰라... 나에게 기대하지 마세요 제발.

첫 시험이 끝나면 선생님도 자동으로 알게 되시겠지 뭐.


당장이 문제였다.

유학생이라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라는 이유로 나를 제일 앞에 앉혔다. (나는 키가 큰 편이다.)

맨 앞줄에 앉아있는 아이들은 키가 130~140cm 대인데 나보고 어떡하라고 저러나...

혹시나 애들에게 방해가 될까 봐 그날부터 자리가 바뀌기 전까지 한동안 나의 목과 어깨, 허리는 최대한 굽어져 있었다.

늘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던 나의 자세가 망가지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회복하려고 노력 중)


등교시간은 어김없이 6시 30분까지.

담임의 시계는 5분 빠름. 그리고 담임은 고지식의 정석.

즉, 6시 25분 전에 교실에 들어가야 세이프라는 말이다.

지각하면 어떻게 되냐고?

칼 같이 6시 30분 이후에 온 학생은 교실 복도에 서 있어야 한다.

선생님 본인도 자기 시계가 5분 빠르다는 걸 인지하고 있어서 자기 시계로 35분이 될 때까지 교실 복도에 세워놨다가 교실로 들여보낸다.


그럼 진짜로 지각한 애들은 어떻게 되냐고?

다음 화에 이어집니다.



그건 그렇고,

이번 학교는 첫 학교와 몇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학년 별로 반이 네 개씩 있고,

작게나마 매점, 식당, 강당이 있는 첫 학교보다는 큰 학교 규모와

유학생 졸업장 발급이 가능하다는 점.


#조회와 행진

월요일 아침마다 각 잡힌 국기 게양식이 포함된 조회가 있다.

그리고 매일 아침과 오후에 행진을 해야 한다.

공산주의 국가라는 사실이 새삼 느껴지는 부분.

반 평가로 들어가기 때문에 행진할 때 팔과 다리를 올리는 각이 얼마나 잘 맞는지가 중요하다.

(중국이나 북한 군인들이 행진하는 장면이 연상되는)

고지식한 우리 담임만 유학생(=나)도 행진에 포함시키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제외됐다. (다행)

트레이닝복 같이 생긴 교복을 입고 각 잡힌 모습으로 당연한 듯 행진하는 애들을 바라보며 여러 감정과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

드디어 실내에 있는 화장실! 게다가 문도 있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하던지!

그렇다고 완벽하게 정상적인 화장실은 또 아니었다.

양쪽 벽면에 4칸씩 총 8칸. 칸도 나눠져 있고 문도 있는데 4칸씩 뒷길이 이어져있다.

볼일을 보고 물을 내리면 졸졸졸 흐르는 물을 따라 이어진 뒷길로 흘러 모든 칸을 지나간다.

'그것'이 한 곳(제일 안쪽 칸)으로 모여서 한꺼번에 내려가는 방식의 화장실. 

(그 칸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았다.)


#동급생

첫 학교의 동급생이 순박한 느낌이었다면, 이 학교 애들은 잘 논다는 느낌.

세상을 잘 알고 있다고 해야 하나?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 말투나 행동이 좀 더 자유분방하고 거침이 없다.

중국어가 점점 트이기 시작하는 시기에 만났기 때문에 첫 학교 때보다는 애들과 교류가 많았다.

그 이야기는 차차 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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