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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샌달 Sep 07. 2024

수포자의 담임은 수학선생님 (2)

온수기 데워지는 시간까지 계산해서 일찍 일어나야 하기도 하고,

화장실이 너무 추워서 보통 전날 밤에 머리를 감고 다.


하루는 밤에 자기 바빠 등교 전에 머리를 감았다.

하지만 말릴 시간이 부족해서 젖은 채로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아 학교에 도착하니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린 그대로 얼어있었다.

손으로 뚝뚝 부러뜨리며 교실에 들어가는데 동급생 한 명이 나에게 말했다.

"너도 머리 안 감았구나?"

머리 감고 바로 왔다고 하니

"너 미쳤어?!! 이런 날씨에 씻으면 얼어 죽을 수도 있어!!!" 라며 나를 혼냈다.

중국인들은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수시로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래, 너무 춥긴 하더라. 하지만 청결이 더 중요해.

그리고 절대 지각할 수 없어!!


우리 반 담임선생님의 지각생 처리는 이렇다.

학교 시계 기준으로 30분에 도착한 애들을 모두 교실로 들여보낸 후,

그날 자기 기분에 따라 지각한 학생들을 한 대씩 때린다.

어느 날은 그 큰 손으로 애들의 뺨을, 또 어느 날은 구둣발로 정강이를 차는 등 랜덤 체벌.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도 한 번도 지각해 본 적은 없지만

매일 아침 보고 듣는 모습으로 인해

분명 시간이 여유로운데도 매일 등교 시간에 심장이 쿵쾅쿵쾅 거렸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지각은 없었다.)


그런데, 한번 위협을 느낀 순간이 있었다.

애들의 모습을 남겨놓고 싶어서 쉬는 시간에 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갑자기 머리 위에서 큰 손이 쑥 내려와 손에 있는 폰을 가져갔다.

놀란 마음에 "왜애애?!" 라며 뒤를 돌아보니 서있는 담임선생님.

자기도 한 장 찍으라고 하는 듯 1초 포즈를 잡더니 금세 변한 표정으로 학교에서 폰 사용 금지라고 하셨다.

그 사실을 몰랐던 나는 다시는 안 꺼내겠다고 하고 폰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반 애들은 알고 있었는데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채 사진 찍고 있었던 거네?)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우리 반에 잘생겼다고 인기 많은 남자애가 한 명 있었는데, 점심시간 이후로 보이지 않았다.

수학 수업 시간에 갑자기 담임선생님이 교실문을 거칠게 열고 그 애의 멱살을 잡은 채 교실로 끌고 들어왔다. (선생님과 남자애의 키와 덩치가 비슷했지만 힘으로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러고는 교탁 옆에 내동댕이 친 후, 손과 발을 사용해 몇 분간 무차별 폭행을 하기 시작했다. (내 자리 맨 앞자리...)

선생님 손발이 멈추자마자 그 남자애는 벌떡 일어나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옷을 툭툭 털더니 나가버렸다.


나중에 이유를 들어보니 학교 건물 뒤편에서 담배 피웠 때문이라고 했다.

지각만 해도 교칙 위반이라고 때리는 사람인데 담배는...

(그 남자애는 며칠 후에 멀쩡하게 등교했다.)


담임선생님을 그냥 꽉 막힌 고지식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화가 나면 잘 참지 못하는 다혈질에 힘도 센 사람이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에 

내가 폰 사용한 것을 그냥 넘어가준 게 기적이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쿵쾅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첫 시험날.

어문(=국어) 시험만이라도 빈칸 없이 채우기를 목표로 마음을 내려놓고 100% 주관식인 시험을 치렀다.

중국어가 잔뜩 적힌 시험지 뭉치를 떠나보낸 후, 한국인끼리 매점에 모여 잠깐의 수다를 떠는 것이 시험 끝난 후의 루틴이 됐다.


시험 결과 발표날, 성적순대로 앉힌다는 담임선생님 말에 너무나 기뻤다!

난 모든 답을 다 풀지는 못했으니까 맨 뒷자리겠지?

드디어 허리와 어깨를 펴고 앉을 수 있겠네!!


당연한 듯 맨 뒷자리로 가는 나에게 거기 아니라고 이리 오라는 담임선생님.

나보다 성적 낮은 애가 있다고? 난 어문만 제대로 풀었는데?

배정된 자리에 앉아 뒤에 앉은 애들을 세어 보니 9명이나 있었다! 쟤넨 뭐지...?


좁은 교실에 60명이 넘는 학생이 3 분단으로 나누어 2명, 5명, 2명으로 앉는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오른쪽으로 한 칸씩 이동한다.

빼곡한 교실은 보기만 해도 이미 답답하지만

5명이 앉는 분단의 중앙 자리 차례가 되면 정말 숨이 턱 막힌다.

뒷줄에는 대부분 남학생들이 앉아있는데, 쉬는 시간마다 농구를 하고 땀에 흠뻑 젖어 돌아온다.

(춥다면서 왜 자꾸 나가는 건데?)


여담이지만, 중국 애들은 주로 농구를 한다. 야오밍(姚明)이 NBA에 있었던 때라 그 자부심도 있었고.

스포츠 경기에 관심 없는 나에게 "한국은 NBA 1 라운더 선수 없지?"라며 전혀 타격 없는 말을 자주 했다.

그리고 중국이 축구를 못한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추운 날씨 탓에 창문은 굳게 닫혀있고, 교실의 찬공기로 애들의 땀은 금방 마른다. (그리고 그 교복을 다음날 다시...)

바삭바삭할 정도로 건조한 옷(천)에서 축축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이건 그냥 내 경험일 뿐, '거봐! 중국 애들 안 씻잖아!'라고 일반화하지 않길 바란다.)


이런 일상이 반복되는 학교 생활.

그래서 내 필통엔 늘 샘플로션과 향기 나는 펜이 있었다.

수시로 손과 코에 로션을 바르고, 향기 나는 펜 뚜껑을 코에 바짝 대고 수업을 들었다.

습관이 됐는지 그때 이후로 현재까지 내 가방 속엔 향기 나는 제품 하나는 무조건 들어있다. 

(직장을 다니며 중국 출장을 다닐 때도, 강의를 할 때도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다.)



첫 시험이 끝났으니 담임선생님도 내 수학 실력을 알게 되었다.

시험지에 누가 봐도 문제 풀이를 적으라고 만든 문제 아래 공백이 있었지만,

배운 적이 없는 문제를 어떻게 풀겠는가?! 나름의 최선만 보이고 제출했지.

바로 사라져 버린 날 향한 기대에 한시름을 놓았다.


그래도 학생의 본분은 공부!

다른 과목은 혼자 어떻게든 노력해 볼 수 있었지만 수학은 어려웠다.

한국인 친구에게 수학 과외 선생님을 소개받았다.

원래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창창한 미래가 있었는데 문화 대혁명 시기 지식인 탄압으로 이런 지방 구석에서 평생을 보냈다며 마오쩌둥을 싫어하는 할머니 선생님.


당장 학교 진도를 따라가야 했기에 기초 없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은 상태로,

최대한 상세히 써주시는 선생님의 풀이를 애써 따라가며,

내 생활비를 쪼개서 받는 과외인 만큼 열심히 했다.

가끔 수업이 끝난 후에 할아버지가 얼후(二胡)를 연주해 주셨다.

긴장을 풀어주려고 하시는 건 감사했지만,

수업에서 애써 담은 내용이 연주소리와 함께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 오히려 더 긴장을 바짝 해야 했다.

얼후 연주하는 법을 배워보고 싶다는 딴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할 일 빼고 다 재밌어 보이는 법이니까.)

*二胡: 이호. [호금(胡琴)의 일종으로, 현(弦)이 둘이고 음이 낮은 악기 (출처: 네이버중국어사전)


남은 고등학교 재학 기간 동안 점수나 등수가 확 오르는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과 노력으로 학생의 본분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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