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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샌달 Sep 14. 2024

버스에서 생긴 일

어린 시절, 엄마가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마음의 창을 항상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부정적인 생각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으려 늘 노력하며 살고 있다.


대화할 때는 상대방의 눈을 바라본다.

그 사람의 말을 경청하기 위해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리액션이 크지 않더라도 

눈빛에서 진심이 전달될 것임을 믿기 때문에.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찾고 싶은 나는 호기심도 많다.

매일 지나다니는 길가에서 무심한 듯 피어있는 작은 꽃을 발견하거나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의 색과 구름 모양의 닮은 꼴을 찾을 때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어떻게 이 틈에 꽃을 피웠지? 오늘 하늘색은 어떻게 저렇게 칠했지?

그때의 눈빛이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으면 늘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내 시선을 따라 함께 바라본다.


중국에서의 첫 동네와 두 번째 동네 모두 시 중심에서는 버스로 2시간~2시간 반 정도 걸린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은 호기심 많은 눈빛을 맘껏 발사할 수 있는 시간.

모든 것이 신기하게만 보였던 중국 생활 초반에는 그 눈빛으로 인해 아찔한 순간들도 있었다.


버스가 한산한 시간,

여고생 둘이 버스에 올라 비어있는 많은 좌석을 두고 굳이 둘이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한 명이 다른 한 명의 몸을 조물조물하기 시작했다.

처음 본 광경에 나도 모르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가 손의 주인공과 눈이 마주쳤는데 당장이라도 따지러 올 것 같은 눈빛과 자세였다.

시선 방향을 바꾸려고 하는데 왜인지 고개와 시선을 바로 돌릴 수가 없었다. 너무 당황해서 그랬나?

눈을 먼저 내리깔고 꾸역꾸역 내 고개를 창밖으로 돌리며 상황은 마무리됐다.


사람들이 꽤 많은 시간,

추운 날씨에 꽉 닫은 뿌연 창문과 다닥다닥 붙어있는 사람들 틈에 서 있는 나.

창밖 구경을 할 수 없으니 내 가방을 꼭 붙잡고 멍하니 고개를 살짝 내렸는데

내 오른쪽 옆 아주머니 가방 속에서 지갑이 나오고 있었다.

바로 뒤에 있는 소매치기가 지갑을 꺼내고 있는 순간, 내 시선의 방향이 딱 그쪽으로 향한 기막힌 타이밍.

소매치기와 눈이 마주친 나는 또 빤히 보는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얼음이 되었다.

소매치기는 다시 지갑을 넣고 바로 다음 정류장에 내려서 택시를 타더라.

사람이 많아서 해코지당하지 않았다는 게 감사하기도 하고,

아주머니는 모르겠지만 내 덕분에 지갑을 지켰다는 게 뿌듯했던 그날의 경험.


대부분 깔끔하고 좋은 버스지만, 우리 동네에 가는 버스 컨디션은 열악하다.

나무로 된 의자 등받이와 앉는 곳.

앞뒤 좌석 간격이 매우 좁아서 다리를 최대한 접어 내가 앉은 좌석 아래로 집어넣어야 했다.

두 명씩 앉는 의자임에도 좌석도 작은 편이고.

늘 사람이 많아서 옴짝달싹 못 한 채 꼬박 2시간 반을 타야 한다.


1시간 반 정도 가다 보면 중간에 비포장도로 구간이 있는데,

꿀렁이는 차의 흔들림, 나무판과 쇠 받침이 내는 소리가 답답한 공기와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점점 적응해 갔다. 역시 뭐든 다 적응해서 살게 된다!


만원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가 앉은자리 옆에 아저씨 두 명이 서 있었다.

갑자기 내 팔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고, 아저씨 둘이 대화하기 시작했다.

심한 방언이라서 뭐라고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알 것 같았다.

바바리맨을 만났을 때 울었다는 애들의 마음이 그때 이해가 됐다.

무서운 게 아니라 더럽고 당황스러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거였구나.

그날 이후로 버스를 탈 때 답답하더라도 무조건 창가 자리에만 앉았다.


스무 살 때(베이징 생활), 친구가 여름방학 여행으로 중국에 왔다.

최대한 많은 곳을 구경시켜 주기 위해 버스를 정말 많이 타고 다녔다.


한 번은 시내에 차가 너무 많이 막혀서 10분 거리가 40분이 된 적이 있다.

그날, 친구는 중국에서 몇 년 살면서 볼 수 있는 것들을 한방에 보고 갔다.


버스 앞에 서 있는 택시 뒷자리에서 여자 한 명이 내리더니 갑자기 운전석을 열어 기사 아저씨를 내리게 한 뒤 뺨을 때렸다.

이유를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 친구가 중국은 '원래 이런 일 자주 일어나냐?'는 친구의 물음에 '나도 처음 본 거라 모른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시간이 흐르고,

꽉 막힌 6차선 도로 옆 보도에 덩치 큰 두 남자가 왜소한 한 남자를 무참히 폭행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구경하는 무리가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고.


중국은 왜 교통사고 등과 같은 위급하고 안 좋은 상황에 도와주지 않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자기까지 연루될까 봐 그렇다고 했다.

교통사고를 발견하고 신고를 하면 뺑소니일 경우 가해자로 몰릴 있고, 다친 사람의 보호자가 오지 않는 경우 신고자가 병원비를 물어줘야 한다는 이야기.

어디까지나 나한테 이야기해 준 사람의 말이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 없지만, 이런 생각으로 선뜻 개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 안에서는 앞쪽에 앉은 할아버지 한 명이 통화를 하는지 말끝마다 욕하고 있었다.

갑자기 나를 바라보며 저 말이 무슨 뜻이냐고 발음하려는 친구의 입을 얼른 막고 내리면 알려주겠다고 했다.

30분 동안 쉬지 않고 욕하던 할아버지가 한 정류장에서 내리는데 그 옆에 할머니가 함께 있었다.

통화한 것이 아니라 할머니한테 뭐라고 하면서 그렇게 욕을 한 거였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찰진 발음을 의도치 않게 반복 학습한 내 친구.

너무 리얼한 중국인 발음의 욕을 구사하게 되었다.

역시 반복 학습이 최고구나.

많이 듣고 말하는 것이 언어 습득 최고의 방법이라는 걸 의외의 상황에서 다시금 깨닫게 됐다.


중국에 몇 년 살아도 잘 못 볼 상황들을 하루에 본 친구는 중국에 대한 특이한 첫인상을 가지게 되었다.

그 때문인지 나를 걱정하며 안전하게 잘 지내라는 것을 재차 강조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친구에게 색다른 중국 여행 기억을 남긴 시내버스 투어.


중국에서 열악한 환경의 버스와 긴 시간을 겪어봐서인지

아무리 험하게 운전해도 한국 버스에서 크게 멀미하지 않게 된 것 같다.


난 여전히 버스를 타고 창밖 거리를 구경하는 것도, 사람들이 움직이는 걸 구경하는 것도 좋아한다.

대신 눈빛 강도를 좀 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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