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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샌달 Sep 21. 2024

발냄새와 신체검사

다시 시간을 거슬러 첫 동네, 그 순박한 마을에서 지낼 때의 일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남았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좌식 생활, 중국은 입식 생활이 기본이다.

우리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신발을 벗고 생활하지만,

중국은 자기 전까지 신발 또는 실내화를 신고 생활한다.


내가 살던 곳은 추운 북방지역이었기 때문에 모든 신발이 보온에 중점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 지역 사람들은 전혀 통풍이 되지 않는 털이 수북한 신발을 잘 때를 제외하고 늘 신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거실 전등이 고장 나서 수리공을 불러야 했다.

우리 집 현관에 도착한 수리공 아저씨는 선뜻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이유는 신발을 벗을 수 없어서.

우리가 괜찮다고 그냥 벗고 들어와도 된다고 하자 머리를 긁적이며 신발 끈을 한참 풀고 들어왔다.


순식간에 탁해진 집안 공기에 놀란 것도 잠시, 아무렇지 않은 척 매우 신속하게 움직였다.

전등을 수리하려면 밟고 올라갈 무언가가 필요한데

룸메언니 의자는 바퀴가 달린 관계로 (중국에 와서 처음 구매한) 나의 작고 소중한 의자 당첨.

내 의자는 분명 검은색인데, 수리하는 동안 점점 색이 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언가가 의자 쿠션으로 빠르게 스며들고 있는 듯한 느낌.


수리공 아저씨가 떠난 후에 희미한 발자국을 따라 바닥을 닦아냈다.

그리고 내 의자를 어떻게든 살려야 했다.

(지금이야 어떻게 해야 할지 바로 검색해 보면 되지만, 당시엔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소독약으로 닦아내고 페브리즈를 잔뜩 뿌린 후에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했다.

볕이 잘 드는 곳에서 햇빛 소독도 시켜주고.

그렇게 며칠을 반복한 후에야 사용할 만한 상태가 됐고, 그 후로는 계속 의자 위에 두툼한 방석을 깔고 생활했다.

이것 때문에 의자를 다시 살 수는 없으니까.


그날 이후 다른 사람이 우리 집에 올 때를 대비해 신발에 씌울 봉지를 넉넉히 준비해 두었다.

신발을 신은 채 집에 들어올 수 있도록.

친구 아버지가 알려주신 꿀팁!


학교에서 신체검사가 있는 날.

키와 몸무게를 재야 한다며 반 전체가 다른 교실로 이동했다.

난 신체검사할 필요가 없지만, 내가 혼자 교실에 있는 게 신경 쓰이셨던 담임 선생님으로 인해 함께 이동하게 됐다.


남녀 학생을 각각 한 방에 들어가게 하고 문을 꽉 닫는 선생님.

추운 지역이라 애들이 옷을 많이 껴입고 있어서 위아래 내복만 입은 채로 키와 몸무게를 재기 위함이었다.

겉옷을 제외하고 애들이 입고 있는 옷이 상의는 내복, 티, 니트/기모옷 + @, 하의는 내복, 마오쿠, 청바지 또는 스키 바지가 기본이었다.


처음 겪어보는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지독한 냄새와 공기로 인해 얼른 여기를 탈출해서 숨을 쉬고 싶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가득 채운 의도치 않게 내복만 입고 있는 애들을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어야 했던 나.

키나 살집(거의 다 마른 애들이었지만)과 상관없이 반 애들 대부분 골격이 크지 않고 라인이 없다는 공통점이 보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훨씬 라인이 예쁘고 비율이 좋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됐다.

탁한 공기 속에서 멍하니 있다가 몸 선의 다름과 아름다움, 중요성까지 알게 되었다.


교실로 돌아와서 정말 순수한 궁금증으로 짝꿍에게 양말을 가리키며 "这个...每天...换??"이라고 물어봤다.

(당시 나는 중국어를 거의 모르는, 아는 단어 몇 개를 간신히 조합해서 소통하는 수준.)

자신 있게 돌아온 대답 "三天一次。"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손가락 세 개를 펴서 다시 확인까지 시켜주는 그녀는 1~2주에 한 번 갈아 신는 애들도 많다고 했다.

* 这个 [zhè ge]: 이거
* 每天 [měi tiān]: 매일
* 换 [huàn]: ① 교환하다, 바꾸다 ② 교체하다, 바꾸다, 갈아입다(신다)
* 三天 [sān tiān]: 3일
* 次 [cì]: [양사] 번, 횟수


시골 마을이니까, 상당히 춥고 건조한 지역이니까 그럴 거야.

그냥 이 지역 사람들의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모습인 거야.

'入乡随俗'니까.

나는 나대로 잘 살면 되니까.

* 入乡随俗 [rù xiāng suí sú]: [성어] 그 고장에 가면 그 고장의 풍속을 따라야 한다. 다른 나라에 가면 먼저 그곳의 금령(禁令)을 물어보아야 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해당지역 문화를 존중하다. 지역 풍속에 적응하다.
[출처: 네이버중국어사전]

외국인 거류비자 발급을 위해서는 지정병원에 가서 신체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형식상 하는 검사'라는 것이 느껴질 만큼 대충 진행된다.

남자와 다르게 여자는 복부 초음파가 추가된다. 임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함이라고.

(그렇다기엔 갈비뼈만 집중적으로 심하게 누르다가 끝났지만.)


신체검사를 경험한 사람들이 무조건 언급하는 혈액검사.

팔꿈치 안쪽에 주삿바늘을 꽂고 피를 뽑는 것까지는 정상인데

피를 다 뽑은 후에 그 부위를 알코올 솜으로 한참 동안 문질러준다.

아주 힘껏, 열심히.

그게 다 끝난 후에야 내 팔을 되찾을 수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피검사 장소가 딱 팔만 넣을 수 있는 공간만 남기고 투명한 벽으로 막혀있다. 마치 예전 시외버스 매표소처럼.

검사가 끝날 때까지 그 팔은 내가 전혀 건드릴 수 없다는 뜻.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피를 뽑은 팔 전체가 멍들어 있었다.

내가 검사한 계절은 여름.

겨울에 추운 만큼 이곳의 여름은 무척 덥기 때문에 시원한 반팔 필수!

시퍼렇고 커다랗게 멍든 팔을 드러내고 다녀야 한다.


볼 때마다 웃음이 나는 모습 그대로 교회에 갔는데 나와 같은 색의 팔을 가지고 온 사람이 몇 명 더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며 "너도? 나도."

정말 한참을 깔깔대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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