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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유학생활 들어본 적 있나요?
18화
"咱俩培养感情"
평범한 하루가 될 뻔한 나날들
by
철샌달
Sep 7. 2024
평범하게 지나간 날이 손에 꼽히는 이번 학교에서의 생활.
중국은 6살부터
초등
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
고등학교 2학년의 경우, 한 반에 16살부터 19살까지
있는
셈.
언니, 오빠라는 호칭은 친척/사촌지간에만 부르는 게
일반적이며,
나보다 나이 많은 중국인에게 언니, 오빠라고 부르면 본인들이 괜히 나이 든 것 같다고 싫어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하지만 난 한국인인걸?
초반에는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내 이름을 막 부르는 게 예의 없어 보이고 너무 어색했다.
한국인 유학생의 필수 코스!
본인들의 이름을 한국어로 어떻게 쓰고 발음하는지 궁금해하는 중국인에게 쓰는 법과 발음을 가르쳐줘야 한다.
허투루 알려주기는 싫어서 예쁜 글씨와 정확한 발음 교정까지 추가.
내 이름은 한국어로 어떻게 발음하냐고 묻는 애들에게 알려주니 바로 이름을 막 부르길래
한국어로 말할 거면 '언니/누나'를 붙여야 한다고 알려줬다.
그러자 바로 다시 중국어로 부르더라.
한국 노래 가사 알려주는 것도 해야 할 일 중 하나.
내가 천천히 발음하면 애들이 각자 종이를 준비해 들리는 대로 발음을 적어놓는다.
읽어주는 것만으로 부족하다는 몇몇 애들에게 짧게 노래까지 불러줘야 했다.
평범한 하루가 될 뻔한 어느 날,
교내
방송에
강당으로 모이라며 여러 이름을 부르는데 갑자기 내 이름이 불렸다.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한 내 양옆으로 애들이 와서 팔짱을 끼더니 같이 가주겠다고 했다.
강당에 도착해서 보니 '교내 노래대회 예선장'이었다.
신청한 사람만 참가하는 예선인데 내 이름이 왜?
내 팔짱을 끼고 '같이 가주겠다고
한'
두 명이 신청했던 것!
신청할 때 곡명도 써야 하는데 확인해 보니 내가 그녀들에게 알려준 노래였다.
맙소사! 난 아주 조용히 살고 싶다고
!
이러면 너무 당황스럽잖아.
한국인이 부르는 한국노래를 기대하며 날 바라보는 초롱초롱한 눈빛들...
선생님들께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아쉬워하는 애들을 뒤로한 채 그 자리에서
얼른 벗어났다.
어느
보통날 쉬는 시간의 교실
,
남자애 한 명이 내 옆으로 와서 말했다.
"咱俩培养感情[zán liǎ péi yǎng gǎn qíng]。"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주변에 있는 애들이 '친구가 되자'는 뜻이라고 알려줬다.
친구 하면 되지 뭐.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내가
대답을 한 이후부터 그 애의 행동이 이상했다.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나를 가깝게 대하는 느낌이랄까?
요리조리 잘 피해 다니면서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앞자리에 앉은 여자애가 할 말이 있다며 나를 교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 남자애가 한 말이 친구가 되자는 뜻이
아니라고.
이성 간에 말하는 '培养感情'은 사귀자는 뜻이라고
.
'培养感情'을 직역하면 '감정을 배양하다'라는 뜻이다.
咱俩培养感情, 즉 '우리 둘의 감정(애정)을 키워보자'라고 말한 거였다!
무섭기도 하고 느끼하기도 한 그 애의 고백에 대한 대답을 얼른 정정해야 한다.
그런 뜻인지 몰랐다고 정중하게 사과를 한 뒤에 우리는 그냥 친구라고 확실하게 말했다.
그 애도 그냥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으로 고백한 것 같았으니까.
오후 수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 옆에 앉은 남자애가 나에게 학교 끝나고 바로 집에 가야 하냐고 물었다.
무슨 일 있냐고 하니 자기 생일파티에 초대를 하려고 했던 것.
그렇게 준비 없이 바로 그 애의 생일을 축하해 주러
가게 되었다.
우리 반에 이름이 '왕양'인 애가 세 명 있었는데, 그날
은 왕양 A의 생일.
생일파티 참석자는 왕양 A와
그의 여자친구, 왕양 B, 여자애, 그리고 나.
장소는 왕양 A 자취방. 방이라고 하기 애매한, 집과 집 사이 공간에 간이 창고로 만들어놓은 듯한 작은 공간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왕양 둘은 음료를 사러 나갔다.
'아 벌써 집에 가고 싶다.'
돌아온 그들 손가락 사이사이에 잡혀있는 맥주병들.
어른이 사 오라고 했다고 하면 술과 담배를 살 수 있는 중국이기에 가능한 일.
'아까 집에 갈 걸 그랬나?'
너무나 자연스럽게 맥주를 따서 내게 권하는 애들에게 정색하며 강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술 마시면 나쁜 사람이 된다는 생각이었다.
맥주에 이어 담배를 입에 문 애들에게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멍하니 서있는 것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왕양 B는 한 자리에서 연달아 여섯 개비를 폈고, 1시간 남짓만에 담배 반 갑이 사라졌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폈구나?
나 너 좀 무서워.
너랑 감정을 키우지도, 친한 친구도 되지도 않을래.
생일파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장소를 이동한다고 해서 그 틈을 타 집에 가려고 했지만 실패.
2차 장소는 지하에 위치한 실내 롤러장.
내 머릿속엔 계속 집, 집, 집...
꽤 어두운 실내조명 아래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과 구석진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
난 탈 줄 모르니 그냥 테이블에 앉아서 구경하겠다고 했다.
'
사실
탈 줄 알지만 난 지금 타고 싶은 마음도, 힘도 없단다.'
왕양 A와 여자친구는 아주 친밀한 모습으로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었고, 왕양 B와 여자애는 갑자기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보다 먼저 집에 간 건가 하며 두리번거리다가 구석에서 발견된 둘.
음, 그렇군. 잘됐다.
어머어머! 난 아무것도 못 봤다
!
얘네 잘 노는 언니오빠들이었구나.
집에 너무 가고 싶다. 정말 정말, 너무너무.
드디어 생일파티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 원래도 빠른 걸음에 속도가 붙었다.
집 현관에 들어가자마자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신발도 못 벗고 한동안 쓰러져있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몸, 정신, 영혼까지 에너지가 모두 소진된 느낌.
중국에서 처음 가본 생일파티의 강렬함을 뒤로하고 다시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하루들이 계속됐다.
그리고, 나와 더 친해졌다고 생각하는 그들과 마음에서부터 더 거리가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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