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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샌달 Jul 13. 2024

한자의 매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방법

唐诗宋词

어린 시절, 한문(漢文)이 잔뜩 섞인 신문을 편안하게 읽는 아빠 옆에 앉아있으면 내게 어떤 글자인지 알려주셨다. 멋진 글씨체로 써주시면서.

덕분에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한문을 접하게 됐다.

아빠와의 놀이가 학교 한문과목이나 국어과목에 한자가 나왔을 때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작점이 된 것이다.

그 뒤에는 자연스레 좋은 성적이 따라왔고.


우리나라 국어 교과서에 다양한 내용이 담겨있듯 중국 어문 교과서에도 다양한 내용이 담겨있다.

공산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해 희생한 '애국지사' 관련 내용의 비중이 많기는 하지만.

중국 학교에서 늘 외쳐야 하는 '为人民服务(인민(국민)을 위해 봉사하라/복무하라)'만 봐도 이미 공산당 체제의 국가라는 것이 실감 난다.

거기에 더해서 교과서에 끊임없이 나오는 공산당원의 미담은 중국 학생들에게 '애국'을 세뇌시키려는 것 같아 보였다.

* 为人民服务: 인민(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상과 행위. 마오쩌둥 공산당 주석이 처음으로 제안한 공산주의 도덕의 기본 특징과 규범 중 하나이자, 중국 공산당 당원과 중화인민공화국 국가기관 및 그 일원의 법정 의무.
(출처: 바이두 백과 百度百科)


소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정말 많은 양의 당시(唐詩)와 송사(宋詞)를 배운다는 것도 중국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고전 시가를 배운다.

그러나 중국은 무조건 다 암송해야 한다는 것이 한국과 다르다.

내 주변 중국인들을 보면, 성인이 된 후에도 여전히 당시, 송사를 꽤 많이 기억하고 있다.


소학교 어문 교과서로 중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내게 가장 처음 강한 인상을 준 건 당시(唐詩) 중 한 편이다.

yǒng é
咏鹅(唐·骆宾王)
   
é    é    é , qū xiàng xiàng tiān gē    
鹅  鹅  鹅  ,曲  项  向  天  歌  。
bái máo fú lǜ shuǐ , hóng zhǎng bō qīng bō      
白  毛  浮  绿  水  ,红  掌  拨  清  波  。
* 咏[yǒng]: [동사] 노래하다; 시를 읊다
* 鹅[é]: [명사] 거위
* 向[xiàng]: [개사] ~을 향하여
* 歌[gē]: [명사] 노래; [동사] 노래하다
* 波[bō]: [명사] 물결


중국어를 처음 배우면서 'e' 발음이 왜 그렇게 웃기던지.

입모양을 '으'로 시작해 소리를 '어'로 뱉는 발음.

깊은 소리를 끌어올리는 듯한 소리가 아직 십 대였던 나에게 '아저씨 소리'를 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근데 그 발음이 시의 처음부터 세 번 반복되다니,

한적하고 고요한 풍경 속에서 점잖게 시를 짓는 모습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발랄함으로 느껴졌다.

발랄한 발음과 상반된 느낌의 글자는 획수가 많아 예쁘게 균형 맞춰 쓰기 힘들었고.


소학교 교사셨던 우리 선생님.

교과서에 당시와 송사가 나올 때마다 중국 아이들이 학교에서 하는 것처럼 나에게도 암송을 시키셨다.

정말 몇 글자 없는 짧은 글인데 어찌 그리 외우기 어렵던지.

숙제 검사를 하실 때, 단순히 그냥 외운 걸 말하는 것이 아닌 '낭송'을 요구하셔서 쑥스러움까지 극복해야 했다.


그럼에도, 당시와 송사를 배우면 배울수록 매력적이라고 느껴졌다.

'이 글자는 어떤 뜻을 포함하고 있을까?'

'저자는 이 짧은 글 안에 어떤 세계를 담고 싶었을까?'

'나도 언젠가는 이 뜻글자인 한자를 많이 알아서 짧은 말로 깊은 이야기를 전달해보고 싶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중국어를 배우는 동기부여도 됐고.


글자가 어디에, 어떻게 자리하냐에 따라 다른 뜻을 나타낸다는 점,

짧은 글로 깊고 많은 뜻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말하기보다 쓰는 것이 좋은 내게 위로가 되었다.


대학시절 '당시(唐詩)', '송사(宋詞)' 수업을 선택했다가 기말시험에서 한 학기 동안 배운 당시를 모두 다루는 시험지 뭉치를 받기 전까지 당시와 송사는 '매력적인 것' 카테고리에 포함되어 있었다.


잠시 삼천포로 빠져도 될까?

당시(唐詩) 수업을 정말 열심히 들으며 필기했던 노트를 동기 오빠가 '잠시' 빌려간 후 잃어버렸다고 해서 시험공부를 정말 어렵게 했었다. 그리고 시험 날, 오빠가 옆에 앉게 됐다.

시험 시작 전, 내게 당당히 모르면 자기 답 커닝하라고 말하는 걸 무시하고 어마어마한 양의 시험지에 정말 열심히, 아프게 답을 서술했다.

시험지를 제출하기 위해 정리하면서 보이는 '대놓고 내 쪽에 치우치게 놓인 그의 시험지'. 거기에는 필기 노트에 적어놓았던 감상과 생각, 해석들이 그대로 적혀있었다.

잃어버린 게 아니라 돌려주기 싫었던 것. 자기만 시험 잘 보고 싶어서.

다행히 내 시험점수는 괜찮게 나왔지만, 그날 이후 아무에게도 노트를 빌려주지 않기로, 난 저 나이에 저렇게 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봤자 그도 스물여덟 살이었네.)


글을 쓰다 보니 오랜만에 唐诗宋词 필사하며 그 매력을 느껴보고 싶어졌다.

내가 한참 좋아하며 암송하고 다니던 당시(唐詩) 한 수로 이번 화를 마무리해 봐야지.

chūn yè xǐ yǔ
春夜喜雨(唐·杜甫)

hǎo yǔ zhī shí jié , dāng chūn nǎi fā shēng
好雨知时节,当春乃发生。
suí fēng qián rù yè , rùn wù xì wú shēng
随风潜入夜,润物细无声。
yě jìng yún jù hēi  ,jiāng chuán huǒ dú míng
野径云俱黑,江船火独明。
xiǎo kàn hóng shī chù ,huā zhòng jǐn guān chéng
晓看红湿处,花重锦官城。

<봄밤에 내린 기쁜 비>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 봄이 되니 이내 내리네.

바람 따라 몰래 밤에 찾아 들어와 만물을 적시네, 가만가만 소리도 없이

길은 온통 구름이라 어두운데 강 위에 뜬 배의 불빛만이 밝구나.

새벽에 붉게 젖은 곳을 보노라면 금관성에 꽃들이 겹겹이 피어있으리라.

(출처: 고진아 외,『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중국문학』(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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