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미 2026 월드컵 조추첨 결과를 보고 든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
내년에 열리는 북중미 2026 월드컵 조추첨 결과가 발표되었다. 우리나라는 A조로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한민국, 그리고 플레이오프 결과로 마지막 한팀이 결정되는데, 플레이오프 팀들은 덴마크, 아일랜드, 체코, 북마케도니아 중 한 팀이 될 예정이다. 아마 확률적으로는 덴마크 혹은 아일랜드와 한 조가 될 확률이 높다. 반면, 이웃나라 일본은 F조로 네덜란드, 일본, 튀니지, 그리고 플레이오프 팀 스웨덴, 폴란드, 우크라이나, 알바니아 중 한팀이 될 예정이다.
대한민국 언론과 유튜브는 난리가 났다. 1포트 강팀들인 프랑스나 스페인, 브라질과 같은 강팀들을 피하고 그나마 나은 멕시코와 한팀이 되었다며 벌써부터 1승 제물을 찾고 있다. 그리고 그 제물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되고 있다. 그리고 옆나라 일본은 불쌍하게도 네덜란드, 튀니지와 한팀이라며, 죽음의 조라며 벌써부터 추모하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어째 이 분위기가 낯설지 않다. 언젠가 본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은 같은 조의 알제리를 두고 16강 제물이라며, 언론은 객관적인 분석보다는 감정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당시 알제리 선수단에는 유명한 선수들이 제법 있었는데 그저 알제리라는 낯선 국가이름을 보고 직관적으로 약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대참사가 발생했다. 반면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페인, 독일과 함께 죽음의 조에 걸린 일본을 비아냥 거렸지만 그들은 당당하게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한국 축구는 오랫동안 이러한 패턴을 반복해왔다. 이길 수 있는 팀에게는 방심하고, 질 것 같은 팀에게는 겁먹고 주눅들었다. 객관적인 분석보다는 분위기나 감정에 의존적이고 다른 축구를 한국 정서를 기준으로 판단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이번 조편성 계기로 우리나라 축구의 문제점이 뭘까 생각하다가 유소년 축구까지 생각하다가 한국 사회 전체로 이어졌다.
축구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네덜란드를 보자. 네덜란드 축구의 뿌리는 아약스, PSV, 폐예노르트 등과 같은 클럽이 중심이다. 네덜란드의 전통있는 클럽들은 1960년대부터 일관된 축구 철학으로 코치와 같은 지도자 교육을 자체적으로 발전시켰다. 반면 우리나라와 같은 나라들은 국가대표 중심, 협회 중심으로 축구를 운영한다. 클럽 중심 축구는 클럽이 선수를 키우고 국가가 보조하는 역할인 반면 협회 중심 축구는 국가가 틀을 만들고 클럽들이 보조한다. 그리고 네덜란드 뿐만 아니라 축구 좀 한다는 나라들은 대부분 클럽 중심 축구를 구사한다.
네덜란드는 1970년 크루이프의 토탈사커 이후로 50년 동 자신들만의 축구 철학이 명확했다. 그들은 축구 철학이 명확했기 때문에 클럽이 운영하는 유소년 시스템부터 대표팀을 거쳐 코치가 되기까지 세대가 바뀜에도 계속해서 자신들의 축구 철학을 고수할 수 있었고, 선수가 바뀌어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헝가리나 오스트리아 같이 예전에는 축구 강국이었다고 할지라도 전쟁이나 정치적 상황으로 축구 시스템이 초기화 되는 상황이 벌어지면 다시 복구하는데 최소 20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축구 협회가 대부분의 권한을 가지고 있고 클럽은 자신들의 권한이 적기 때문에 독자적인 축구 철학이나 육성 시스템을 만들기 어렵다. 우리나라 축구는 국가대표 성적이 곧 축구 협회의 권위를 상징하므로 단기적으로 성적내기 급급하고 네덜란드처럼 장기적인 유소년 시스템이 불가능한 것이다. 반면 네덜란드 국가대표는 클럽이 키워낸 선수들이 뛸 수 있는 또하나의 기회일뿐 정체성은 여전히 클럽에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축구 철학이 있는가? 옆동네 일본만해도 처음에 스페인식 티키타카를 벤치마킹한다는 소리를 듣고 '스시타카'라고 비아냥 거릴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들은 어느새, 우리나라를 훨씬 앞질렀갔고 이제는 라이벌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으로 몇 수 위 실력을 보여준다. 일본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히 하기로하고 일단 우리나라에는 축구 철학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에 바뀔때마다 스타일이 들쭉날쭉 변하고 즉흥적이며, 결과적으로 한국축구에는 정체성도, 철학 없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한국축구가 어떻냐고 물어보면 그들이 하는 말은 항상 "한국은 빠르고 강하다"라고 하는데, 얼마나 할말이 없었으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서 국가 중심의, 협회 중심 축구와 클럽 중심 축구로 나누어 살펴보았는데, 그렇다면 일본은 어떨까? 일본은 놀랍게도 우리처럼 국가 중심 축구를 한다. 그러나 일본이 축구 강국이 된 것은 단순히 인프라에 투자를 많이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은 협회가 축구 시스템을 만들되, 운영은 클럽에게 맡기는 방식을 선택했다. 일본 축구가 나아가야할 방향성이나 축구 철학, 육성 모델은 일본 축구 협회가 제시하고 이를 실행하는 것은 클럽이었던 것이다. 즉, 일본 축구 협회는 유소년 학교, 클럽, 지역 리그를 전체적인 하나의 구조로 통합한 것이다.
일본 프로 축구 리그인 J리그는 단순히 프로리그 창단이 목적이 아니라 일본을 축구 강국으로 만드는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우리나라가 유소년 선수들을 학교와 협회가 담당하는 것과는 달리 일본은 클럽이 축구 교육 기관이 되도록 법으로 정해버렸다. 물론 일본 축구도 협회 중심이기 때문에 아직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로 클럽 팀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히 자신들만의 철학이 있다. 세계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 수십년간 누적되어 온 것이다. 일본의 스시타카는 처음에는 조롱을 당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2010년대 이후 자연스럽게 스페인식 티키타카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구사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한국과 일본의 결정적 차이 중 하나는 바로 코치 교육이다. 한국은 코치 양성 시스템이 협회 중심이고 현장 경험보다는 시험 성적 중심이며, 폐쇄적이다. 반면 일본은 모든 코치 교육을 스페인, 독일과 같은 축구 선진국들과 연계하고, 학교 지도자 레벨까지도 국가 코치 교육을 표준화 시켰다. 그리고 코치에게 직업적 안정성을 부여하기 위해 유소년 코치를 전문직으로 육성했다. 결국 두 국가의 유소년을 가르치는 스타일이 다르다보니 성장속도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한국 축구 유소년 교육의 특징은 운동부 문화, 군대식 훈련, 체력/근성 위주, 기술/전술 개념 부족 등이 오랜 세월을 거치며 고착화된 것이다. 그저 운동장 뛰기나 허들을 시키며 훌륭한 선수가 태어나길 바라는건 무리 아닐까. 반면 일본은 시작부터 해외 지도자들을 적극적으로 초빙해 해외의 축구 철학을 일본 스타일로 변형 시켰다. 이는 마치 조선시대와 일본 메이지 유신 시대를 보는 듯하다. 자국의 방식만 강조한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은 적극적으로 세계에 개방적인 태도를 보임에 따라 세계적인 최신 기술을 기대로 흡수한 것이다. 일본은 축구가 아니더라도 거의 모든 분야에서 배울건 배우고 일본식으로 재해석한 후 적용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게다가 선수를 키워내는 과정에서도 한국은 결과를 중시 했기 때문에 어렸을때부터 덩치크고 빠른 선수를 선호했다. 지도자 입장에서도 경기에 지면 자신의 직업이 사라질수도 있기 때문에 당장 이길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반면 일본은 과정 중심으로 유소년은 결과보다 패스나 탈압박 같은 기술의 완성도를 우선시했다. 결국 시간이 지나 일본은 기술적으로도 공 예쁘게 차는 스타일이 되었고 우리나라는 에너지는 넘치지만 기술은 떨어지는 스타일이 된 것이다. 이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해외 전술을 접해도 표면적으로만 따라하고 자신만의 철학이 없으므로 깊이에서 차이가 난다.
결국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일본은 스페인, 독일, 코스타리카와 함께 죽음의 조에 편성되었지만 당당하게 조 1위로 16강 진출을 했었다. 그들은 스페인, 독일이라는 축구 강대국을 상대로 동일한 방식, 동일한 철학으로 상대했고 정확히 실행함으로써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국내 유소년 축구 시스템에 답이 없다고 느낀 학부모들은 2000년대 이후 자녀를 스페인이나 독일과 같은 축구 선진국으로 축구 유학을 보내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유소년 생활을 한다면 월드클래스 선수가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당시 수많은 TV프로그램에서 레알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유소년 선수들을 취재하면서 한국 축구의 희망이라고 홍보했었다. 그 당시 언론들은 선수들을 미친듯이 띄웠지만 그에 비해 실제로 성공한 선수는 극소수다. 왜냐하면 이러한 방식은 시스템이 선수를 키우는게 아니라 어린 아이에게 서바이벌 생존 게임을 강요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축구 유학의 본질적인 문제는 축구 실력만 중요한게 아니라는데 있다. 아주 어린 나이에 해외로가면 언어도 배워야하고, 우리나라와는 다른 문화에도 적응해야한다. 게다가 그들 입장에서 자국민들과 경쟁을 해야하고 실패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받아줄 곳이 없다. 즉, 어린 선수들을 해외에 던져놓고 살아남으면 천재고 실패하면 버려지는 구조인 셈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남은 선수로 이강인 선수가 있다.
물론 비슷한 시기에 일본 선수들도 유학을 많이 갔지만 한편으로 일본은 해외 코치를 일본으로 적극적으로 불러들임으로써 일본에서도 유럽식 시스템으로 자라난 것과 비슷한 환경을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선수들은 자국에서 유럽식 교육을 받고 해외 진출을 하기때문에 해외에 나가도 이미 전술, 기술적 이해도가 준비되어 있었고 이는 적응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한국 축구는 육성 시스템이 아니라 개인의 재능으로 버텨왔다. 한국 출신의 세계적 선수들은 대부분 시스템이 키웠다기 보다는 개인의 재능과 노력으로 살아남은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박지성 선수가 그랬고 김민재 선수가 그랬다. 그들은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며 발전시키고 성장했다. 그들은 대한민국 시스템이 만든 인재가 아니라 대한민국 시스템의 한계를 스스로 이겨낸 인재들인 것이다.
운동장 한바퀴 더 돌면 축구 실력이 향상된다고 가르치는 곳에서는 아무리 선수 개인이 노력하며 운동장을 돈다고 하더라도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감독, 코치 말 잘듣고 운동장 뛰면서 노력하는 선수들은 제대로 성장할 기회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결국 박지성, 김민재와 같이 타고난 능력으로 버티는 사람들을 보며 노력해도 안된다고 생각해지고, 재능만이 최고이며 노력의 가치를 평가절하한다. 그러다가 가끔씩 천재가 나오면 시스템이 키워낸 인재라고 홍보한다. 한국에서의 천재는 시스템 덕분이 아니라 시스템을 뚫고 나온 예외적인 사레일 뿐인 것이다.
좋은 시스템은 어떻게 선수를 육성할까? 나는 대표적인 사례가 네덜란드의 스네이더, 크로아티아의 모드리치, 일본은 카가와 신지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보면 시스템이 어떻게 선수를 만드는지 알수 있고 한국에는 이런 유형의 선수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은 체격이 작고 피지컬이 좋지도 않으며 개인기가 화려하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다. 그러나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이 좋고 전술적인 위치선정으로 주변 공간을 활용하며 좋은 패스를 보여준다. 이런 유형의 선수들은 그저 '운동장 달리기'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물론 그들도 원석으로서의 축구 재능이 있었겠지만 그걸 다듬고 키워낸 것은 시스템의 힘인 것다. 아마 스네이더가 한국에서 축구했으면 작고 느려서 축구에 안맞는다고 평가받지 않았을까. 그 결과 10번 스타일의 선수들은 한국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역대급 꿀조에 속했다며 기뻐하는 대한민국을 보며 상대들을 생각해보았다. 물론 브라질이나 프랑스보다는 멕시코가 낫긴하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는 멕시코를 상대로 월드컵에서 이겨본적이 단 한번도 없다. 남아공을 1승 제물이라고 하는데 알제리가 생각나는건 기분 탓일까. 플레이오프를 거쳐 올라올 팀은 덴마크 혹은 아일랜드가 올라올 가능성이 높은데 덴마크 역시 우리나라가 한번도 이겨본적 없는 국가이며 아일랜드는 플레이오프에서 드라마를 쓰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가 32강 토너먼트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승은 해야할 것 같은데 괜히 씁쓸해진다. 반면 일본은 네덜란드 정도를 제외하면 다 상대할만한 팀들이고, 경우에 따라 이전에 스페인, 독일때와 마찬가지로 네덜란드를 이길수도 있다고 본다.
단순히 축구를 넘어 거의 모든 분야에서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더 씁쓸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