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을 불러와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
축구선수 박지성은 월드컵을 통해 히딩크 감독을 만나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한다.
만약 그의 인생에서 히딩크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저 그런 선수로 남았을까, 아니면 히딩크 없이도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는 어떻게 히딩크라는 운을 잡을 수 있었을까.
아니 애초에 어떻게 운을 자신에게 불러올 수 있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박지성의 대학시절부터 차근차근 되짚어보자.
대학생 박지성
고등학생 박지성은 명지대학교에 진학한다. 사실 축구선수에게 명지대는 최고의 학교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대학 이후 프로입단까지 염두했던 박지성은 그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 스스로의 축구 재능은 그저 그랬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이후 대학교 2학년때 일본 J리그 최하위팀인 교토 퍼플 상가라는 팀으로 입단한다. 물론 시간이 흘러 박지성은 결국 맨유에 간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지만, 결과를 모르는 상황에서 박지성의 커리어는 명지대에 이은 교토 퍼플상가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의 축구 재능은 세계적으로 보았을땐 그닥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재능이 아주 뛰어났다면 고려대를 거쳐 J리그 1등팀으로 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남이 보는 나의 재능
물론 재능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아르헨티나 축구 전설 리오넬 메시처럼 어렸을 때부터 명문팀에 입단하는 경우도 있지만, 재능이 늦게 개화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박지성이 명지대에 입학한 시기는 1999년인데, 그 당시 우리나라 유소년 시스템을 생각해보면, 순수 축구 실력보다는 학연, 지연이 더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아마 박지성이 축구하던 시절의 시스템의 한계로 인해 벌어진 일들 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명문팀이 선수를 뽑는 기준이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다. 스카우터들도 실수할 때가 있다. 특히 박지성처럼 눈에 띄는 스타일이 아니라 팀 전체를 살리는 스타일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놓칠수도 있다. 한마디로 박지성은 단순히 골이나 어시스트가 아닌 평가하지 어려운 형태의 재능을 가진 선수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팀의 강등을 막기 위해 대학생 유소년을 영입하려고 한 교토 퍼플상가는 더욱 절실하게 숨은 보석을 찾아다닌게 아니었을까. 결국 박지성은 대학교 2학년때 입단하게 되는데, 입단하자마자 1년에 38경기를 뛰며 실전 경험을 쌓으며 빠르게 성장한다. 확실히 대학교에서 축구하는 것과 프로팀에서 실전 감각을 익히는 것은 분명 뚜렷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간판과 실력 사이
그 당시 박지성은 속으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교토 퍼플 상가라는 자신의 간판을 곧 자신의 실력이라고 동일시했을까? 즉, 자신은 명지대, 교토 퍼플상가 수준이라고 스스로의 실력을 정의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긋는 셈이 되므로 성장하기 힘들다. 아니면 더 좋은 팀들이 나의 실력을 못알아봐서 비록 교토에 있지만, 언젠가 날 알아봐주는 팀이 있다면 나갈수 있다고 생각하는건 어떨까? 이러한 사고방식은 자칫 현실부정으로 왜곡될 수 있다. 나도 대학생 시절을 생각해보면 친구들 중에 자신은 여기 올 실력이 아닌데 수능 망쳐서 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사실 그런 사람들 치고 잘 된 케이스는 거의 못본것 같고 심한 경우 재수, 삼수, N수 계속 수능만보다가 인생을 망쳐버린 경우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박지성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는 박지성이 위 두 가지 케이스가 아닌 제 3의 관점으로 생각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그것은 바로 현재 자신의 위치를 안정하되, 실력은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이 교토 퍼플 상가 선수라는 팩트를 인정하면서도, 여기서 무엇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인생의 다음 스텝이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에겐 그 사실을 인정하는게 치욕스럽게 느껴질수도, 어렵게 느껴질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내가 J리그 최하위 팀에 속해있더라도 이것이 내 위치라는 현실을 직시해야한다. 이 사실을 부끄러워하거나 부정해서는 안되고, 자신의 현재 출발선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한다. 박지성이 실제로 이후 퍼플상가에서 보여준 것처럼,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말로만 떠드는건 의미없고, 스스로 행동하고 증명해야한다. 여기서 중요한건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어제의 나와 비교하는 성장 중심의 마인드셋이다.
운과 타이밍
박지성은 교토 퍼플 상가 이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히딩크가 있는 네덜란드로 진출하면서 세계적으로도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다. 그리고 그 후에는 잘 알려진대로 퍼거슨의 맨유로 입단하게 된다. 그런데 만약 박지성 인생에서 히딩크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의 축구 인생은 어땠을까? 그저 그런 선수로 남았을까 아니면 히딩크가 아니었어도 날아오를 수 있었을까?
나는 박지성이 히딩크가 없었어도 어느 정도 성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맨유까지 가기는 힘들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의 인생에서 히딩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히딩크는 박지성을 월드컵이라는 세계무대로 진출 시켰고, 박지성은 그 기회를 살려 골까지 넣으면서 전세계 스카우터들의 눈도장을 받았다. 박지성이라는 이름을 세계에 노출시킨 것이다. 아무리 축구를 잘하는 사람이어도 집에서 혼자 축구한다면 아무도 알아차릴 수 없다. 월드컵 이후 히딩크는 직접 박지성을 네덜란드 명문팀인 PSV 아이트호벤으로 데리고 간다. 이는 히딩크의 추천서가 제대로 먹힌 것인데, 그 당시를 생각해보면 유럽 명문팀이 아시아의 J리그 하위팀 선수를 주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박지성은 히딩크가 없었어도 J리그에서 잘하고 있었으므로 더 상위권 팀으로 이적했을 것이고, 기회가 닿는다면 벨기에나 스코틀랜드 같은 유럽 중하위 리그로부터 기회가 왔을수도 있다. 그러나 PSV, 맨유급의 팀으로 이적하는것은 아주 힘들었을 것이다. 애초에 박지성이 맨유로 갈 수 있었던 것은 전세계 유망주들이 모여있는 PSV를 갔었기 때문이며, 애초에 PSV를 가지 못했다면 맨유로 가는 루트도 사실상 막힌다고 봐야하기 때문이다. 만약 PSV가 아닌 다른 유럽 중하위 팀을 갔었다면 아무리 잘해도 맨유가 주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히딩크는 박지성의 실력 자체를 높였다기 보다는 그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의 잠재력을 폭발시킬만한 환경으로 연결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박지성은 히딩크에게 큰 도움을 받았지만 의존적이진 않다. 박지성은 스스로 자랑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만약 박지성이 히딩크에 의존적이었다면 맨유에서 잘하진 못했을 것이지만, 그가 맨유의 퍼거슨 아래에서도 잘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그의 핵심 실력은 외부에서 온것이 아닌 내면에 존재했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히딩크는 박지성의 재능이 빛을 볼 수있게 만든 일종의 증폭기 역할을 한 셈이다.
물론 축구선수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운과 타이밍, 네트워크 등은 중요하다. 박지성의 경우 히딩크와 2002 월드컵이라는 타이밍이 그의 인생에 들어맞았던 것이다. 사실 이건 달리생각해보면 씁쓸한 현실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실력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실력, 기회, 타이밍 등 모든 것이 다 맞아떨어져야 한다.
만약 히딩크를 만나지 못했다면?
이번에는 박지성이 히딩크를 만나지 않았고, 최종적으로 벨기에 리그 정도 뛰다가 은퇴했다고 상상해보자. 이경우 실력은 맨유의 박지성과 동일했다고 가정하면 내면의 자부심이 맨유 박지성과 동일했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자존감의 근원이 자신에게 있고, 스스로의 플레이가 만족스럽다고 해도 말이다. 아무리 간판이 중요하지 않다고 할지언정 자신이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봤을때, 명지대, 교토퍼플상가, 벨기에 팀이 기억된다면, PSV, 맨유와 비교했을때 아쉬움이 많이 남을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박지성은 선수시절 열심히 했고, 맨유라는 팀에 갔으니까 자존감에 간판까지 더해져 정신적으로 더 건강해진 느낌이 든다. 당장 우리 주변만 봐도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자신의 인생을 거쳐간 간판들을 보며 우울증이나 패배주의에 빠지는 경우를 적잖이 볼 수 있다.
결국 중요한건 인생의 내러티브
사람들은 겉으로 내면이 중요하니까 간판에 연연하지 말라고 말을 하지만 그건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자기 인생의 내러티브(narrative, 이야기, 서사)로 살아간다. 무슨 말이냐면 자기 인생을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 이야기가 의미있다고 느껴야 정신적으로 건강할 수 있다.
만약 박지성이 명지대와 J리그를 거쳐 벨기에 중하위팀에서 은퇴했다고 가정하면 객관적으로 볼때나 스스로 생각했을 때나 괜찮은 선수 정도지 레전드까지는 생각하기 힘들다. 반면 명지대와 J리그를 거쳐 PSV, 맨유를 간다음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한다? 그의 인생 스토리는 순식간에 영웅 서사로 바뀐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아마 박지성 스스로도 해냈다고 느낄 것이다.
물론 벨기에로 간 평행세계의 박지성도 노력은 똑같이 했을 수 있다. 그럼에도 결과가 달라짐으로 인해 이야기가 달라지고 결국 자존감에 까지 영향을 준다. 사실 외부 검증 없는 자존감은 불완전한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자존감의 근원이 스스로에게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100%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타인의 인정을 통해 자아를 확인한다. 아무리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해도 주변에서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확신은 점점 약해지기 마련이다.
잔인한 사실은 노력과 결과의 비대칭성이 주는 절망이다. 즉, 노력과 결과가 비례하지 않는 것인데,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은 노력했는데 왜 성공하지 못했냐며 자책하고 패배주의에 빠지기 일수다. 그들이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닐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결과가 따라오지 않았고 그 결과가 그들의 간판으로 남아 평생 짊어지고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생의 운과 타이밍은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말그대로 운이니까 무작정 기다려야할까? 나는 운을 잡기 위한 노력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우선 자신을 노출해야 한다. 히딩크가 박지성을 전세계 스카우터들이 볼 수 있게 노출시킨 것처럼 우리도 스스로를 노출시켜야 한다. 운은 확률이 맞지만, 주사위를 몇번 던지느냐는 스스로 정할 수 있다.
집에만 있는 사람은 노출이 0에 가깝다. 회사만 다니는 사람도 노출은 거의 없다. 나도 예전에 회사 다닐때 생각해보면 1년 동안 회사 다니면서 만난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이런 식으로는 죽을때까지 몇명 만나지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반면 회사 다니면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거나 커뮤니티, 블로그 등을 한다면 훨씬 노출의 정도를 높일 수 있다. 박지성도 히딩크에게 자신을 노출시켰기 때문에 국가대표팀에 발탁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K리그에 있으면 주로 한국 스카우터들 위주로 보지만 J리그를 가면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스카우터들이 주시하고, 대표팀이나 월드컵을 가면 전세계가 지켜본다.
노출을 높이는 또하나의 방법은 경계를 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영역에만 머물러있다. 통계학과면 통계에만, 축구선수라면 축구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박지성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국가의 경계를 넘었고, J리그와 대표팀의 경계를 넘었다. 그 후에는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까지 넘어선 것이다. 경계를 넘을 때마다 노출 면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러면서 여러 판을 동시에 벌리면서 노출을 더욱 높일 수 있다. 박지성도 J리그 선수와 대표팀 선수라는 두개의 판을 동시에 벌림으로써 확률을 높였다. 여러 판을 벌리면 한쪽에서 히딩크가 안나와도 다른 한쪽에서 나올수 있는 확률이 생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히딩크는 박지성의 가족이나 친구처럼 깊은 관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찌보면 약한 관계라고 볼 수 있는데, 의외로 약한 관계에서 기회가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약한 관계의 인맥을 늘리는 것도 운을 늘리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겠다. 이를 위해선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야하므로, 방에서 혼자 조용히 활동하기보단, 밖에서 나를 볼 수 있도록 보이게 해야한다. 블로그, SNS, 발표 등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이 볼 수 있게 말이다. 그러다가 작은 기회가 찾아오면 작다고 흘려보내지 않고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떄로는 작은 기회가 큰 기회로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