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코딩, 그리고 빅테크 기업의 대량해고
빅테크 기업들의 잇따른 대규모 해고가 진행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2025년 누적 해고 규모는 약 1만 7000명,메타(meta)는 최근 2년간 2만명 해고, 인텔도 전체 인원의 20%에 해당하는 2만 2000명 인원 감축 계획을 발표했다. 나는 이런 대량 해고 사건들을 보면서 예전 산업혁명 시대와, 이 시대의 코딩이라는 기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코딩(coding). 최근에는 코딩이라고 많이 부르지만, 이전에는 프로그래밍이라고 불렸던 그 단어. 지금도 인기가 많지만 최근 몇 년동안 개발자라는 직업의 인기는 굉장했다.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했던 지 상관없이 개발자라른 직무는 마치 용광로처럼 모든 사람을 끌어들였다. 특히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절에는 개발자 전성기를 방굴케 할 만큼 채용, 이직도 많았다. 그렇게 개발자는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최고의 유망 직업으로 각광 받으면서 대학 입시에서도 의대 다음가는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몇년 지나지 않아, 빅테크 기업들의 대량해고 기사가 나왔다.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대부분의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한 가운데, 그래도 건재할 것 같았던 개발자 직무에서 가장 먼저 대량해고가 발생한 것이다. 아마 개발자 지망생 분들은 인공지능이 직업을 없앨 것이라는 공포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대량해고라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처음에는 대량해고라는 기사가 놀라웠지만, 생각해보면 실제 개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인공지능이 업무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쉽게 느낄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주니어 개발자가 하루 8시간 동안 짜야할 코드도 10초만에 작성해주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인력 감축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 일지도 모르겠다.
요즘의 대량 해고 기사를 보면 예전 산업혁명 시대가 생각난다. 기계의 발전으로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하자 이에 일자리를 빼앗겼다고 느낀 노동자들은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도 있던 시기다. 나는 그 시기를 살아보진 못했지만, 아마 그 시기에도 신문에 대기업의 대량해고 기사가 많이 뜨지 않았을까? 이 시대의 대중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그때 그시절 사람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 당시 해고된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산업혁명 시기에는 수많은 직업이 사라졌지만 반대로 새로운 직업도 많이 생겼다고 한다. 기존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라도 다른 직업으로 전향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산업혁명 때나 지금나 대량해고가 일어나더라도 살아남았던 직업들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들은 미술, 음악, 작가와 같은 직업들이다. 예전에 카메라가 발명되었을때, 사람들은 화가라는 직업은 없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람이 아무리 잘 그린다고 한들 사진만큼 뛰어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화가라는 직업은 아직도 건재하다. 다만 세부적으로 추상화나 웹툰 작가, 디자이너와 같은 직업으로 조금 방향이 바뀌었을 뿐. 요즘도 마찬가지다. AI의 등장으로 미술, 음악과 관련된 직업도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나는 앞서 언급한 미술, 음악, 작가와 같이 나를 표현하는 직업, 즉, 창작과 관련된 직업들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 "창작을 하면 되겠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예술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고, 창의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스스로를 두고 주입식 교육에 최적화된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나는 태어날때부터 창의성 없이 태어나는게 아니라 성장과정에서 창의적으로 행각하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거나, 기회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우리가 받아온 교육 방식에서 말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정답을 찾는 방법을 배운다. 이를 큰 범주에서 "교육"이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 교육은 주로 정답 찾는 것에만 포커스가 맞춰진 경향이 있다. 정답 찾는 교육을 초,중,고를 거쳐 12년 동안 받고, 수능시험이라는 테스트로 정답찾기 기술의 화룡점정을 찍는다. 정답을 잘 찾는 기술로 서열이 정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20살 성인이 되는데, 성인이 되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대학에 가서도 학문에 대한 탐구보다는 정답찾기 교육이 20대에도 쭉 이어진다. 이는 회사에 취업해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서도 직장 상사가 원하는 정답은 정해져있고, 나는 그 정답을 향해 달려나갈 뿐이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나이에 따라 해야만 하는 일들도 정답처럼 정해져있는데, 굉장히 획일화된 사회이다.
그렇다면 회사에서 일하는 나는 무엇일까? 나는 회사 다닐때 이런 질문을 자주 떠올렸다. 회사 라는 조직 안에서 일하다보면 나라는 개성넘치는 '개인'이라기 보다는 조직 내에서의 하나의 '역할' 혹은 '기능'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떄가 있었다. 물론 회사는 복잡한 일을 효율적으로 나누어 수행하므로 각자의 역할과 책임이 명확해야한다. 그래서 때로는 개인의 창의성보다는 정해진 일을 정확히 해내는 능력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구조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조직의 일부분처럼 느낀다. 물론 회사가 거대한 조직으로 움직이다 보니, 모든 개인이 자신의 색을 온전히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나만의 방식으로 '나답게' 일할 수는 있다. 정해진 역할 안에서도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반영할 수 있고, 작은 선택 하나에도 내 취향이나 철학을 담을 수 있다. 누군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서, 누군가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또 누군가는 동료와의 대화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준다.
흔히 회사원을 거대한 기계 속 작은 부품에 비유하기도 한다. 현실에서 누군가 퇴사하면 곧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채우고 그 역할을 수행한다. 이건 그 사람 개인이 특별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조직은 개인이 아닌 기능 단위로 설계되어 있다는 구조적인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간혹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나 없으면 회사 안돌아가지"라고 농담을 하기도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과연 그럴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문득 '나는 왜 이렇게 기능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하는 의문점이 든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게 되는데, 아마 어렸을 때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곳은 아마 학교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내가 살아오며 받은 교육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평생 받아온 교육은 무엇인가. 우리나라 교육은 정답을 찾는 기능을 잘 수행하도록 교육받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수십년동안 학교에서 교육받고 회사에서 그 능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기능을 다하거나 필요 없다면 해고. 마치 마이크로소프트나 메타와 같이 말이다. 본인들은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하는 이 코딩이라는 기술은 아주 어려운 기술이며,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나는 전문가이며 대체 불가능한 인력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자부심을 가질만하다. 코딩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입문 장벽이 높고, 스트레스가 커서 익숙해지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어려운 기술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니 자부심 가질 만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마 그 옛날 산업혁명때 해고 당하신 분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코딩이라는 기술 자체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다보면 놓치는 것들이 생길 수 있다. 주변에 개발자들이나 대학원생들을 보면 코딩을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 숭배하는 지경에 이른 사람들을 꽤 많이 볼 수 있다. AI 자체의 성능, 모델 크기, 응답 속도에만 감탄하지 정작 무엇을 구현할 수 있을지 생각지는 못하는 경우다. 하지만 코딩은 도구일 뿐이다. 내가 붓으로 그림을 그릴 줄 안다고해서, 그것이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최신 붓에 감탄만 하면서 정작 그림은 그리지 않는다면 의미가 있을까. 중요한 것은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이다. 코딩도 마찬가지다. 코딩을 할줄 안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는 의미부여를 하기 어려운 시대다. 자신이 코딩 왠만큼 잘짠다고 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코딩은 내가 생각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데 필요한 도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당신은 코딩이라는 도구로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가. 여기서부터는 창작의 분야인데, 그렇다면 창작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우선 창작이란 무엇인지부터 정의해보자. 창작은 나의 생각을 담아 세상에 내놓는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창작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이를 위해서는 나 자신에 대한 이해와 세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세상을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우리는 유튜브, TV, 신문 등을 통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파악하지만 대부분 우리가 접하는 내용은 2차, 3차 가공을 거친 것이고 누군가 이득을 보는 구조로 되어있다. 따라서 이런것들을 볼때는 그 이면을 봐야하는데 그게 여간 쉬운일이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데 반해 쏟아지는 정보는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에 대한 이해는 어떨까. 나에 대한 이해는 더 어렵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어떤 환경을 좋아하는지 등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자면 끝이없다. 족히 10년 이상은 걸릴만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은 어렸을때부터 자신을 바라보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저 국영수 문제 정답을 맞추는데 집중하고 문제풀이 이외의 것들을 20살 이후로 미뤄버린다.
그렇다면 20살때 이후로는 자아탐색이 시작될까? 많은 사람들은 이제야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동안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던 만큼, 처음 맞닥뜨리는 '나'에 대한 질문 앞에 방황하는 경우가 많다. 10대에 겪었어야할 고민을 20대에 처음 겪는 것일지도 모란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를 대2병이라고 표현한다. 문제는 여전히 그 해답을 자신의 내면이 아니라 제도와 시스템 안에서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전공과 적성이 맞지 않는다며 또다시 수능 시험을 준비하고, 새로운 학과를 고르지만 그 역시 실제로 경험해본적은 없는 분야다. 점수에 맞춰 진학하거나 처음 경험한 전공이 적성과 맞을 확률은 얼마나될까? 진짜 나를 알게 되는 과정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리고 깊은 질문을 필요로 한다.
설령 20살때 부터라도 자아탐색을 시작한다고 해도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데는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어림잡아도 10년은 걸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30살 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조금씩 감을 잡기 시작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다. 20살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정답을 맞추는 삶을 살아간다. 대학, 취업, 결혼, 육아... 사회가 정해놓은 정답에 맞춰 달리다보면, 나라는 존재를 깊이 들여다볼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 삶에 회의가 들면 사람들은 "고3 때 정답을 더 잘맞췄어야 했나?" 마치 지금의 불행이 과거의 선택 때문이라고 믿으며 스스로를 탓한다. 그리고 그 아쉬움을 아이에게 투영한다. 자신은 정답을 맞추지 못해 기회를 놓쳤지만, 자식만큼은 정답을 잘 맞춰서 행복해지길 바라며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기능, 더 좋은 점수를 위해 학원으로 내몬다.
우리는 점차 더 똑똑한 도구들을 손에 쥐게 될 것이다. AI 라는 이름의 도구는 이전 시대의 그 어떤 기술보다 빠르고 정교하며, 점점 인간의 능력을 대체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여전히 '무엇을 할 것인가'는 인간의 몫이다. 인공지능은 입력에 따른 출력을 만들어낼 뿐,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 자신이다. 코딩, AI는 도구다. 도구는 감탄의 대상이 아니라 활용의 대상이다. 기술을 숭배하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기술로 무엇을 표현할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