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두 검사> 감상평

체제에 순응할 것인가, 신념을 지킬 것인가.

by 장철원

우연히 상영 중 영화 목록을 보다가 <두 검사>라는 작품이 재밌어보여 관람했다. 시놉시스가 마음에 들었는데, 상영관도 몇 군데 없는 데다가 30명 남짓 들어가는 아주 작은 상영관에서 상영했다. 지난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작은 상영관 속 영화들은 월클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 본 <두 검사도> 아주 인상깊은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1937년 스탈린 대숙청 시기의 두 검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체제를 따른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신념을 따를 것인가를 묻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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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VD?

본격적인 영화 이야기를 하기 앞서, 배경에 대해 조금 이야기하자면, 영화의 배경인 1937년 당시에는 NKVD(내무인민위원회, "엔카베데" 라고 읽음) 조직이 존재했는데, NKVD는 비밀경찰, 정보기관, 치안, 범죄자 처형 집행 등의 역할을 모두 수행하던 기관이었다. 표면적으로는 그렇지만, 사실상 스탈린 대숙청 시기의 NKVD는 죄없는 사람도 잡아가는 조직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반혁명분자 명단을 작성한 후 밤에 사람을 체포하고 고문해서 거짓 자백을 받은 후, 형식상 재판을 거친후 총살형을 집행하거나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는 일을 했다. 1937년~1938년 스탈린 대숙청 시기에 무려 150만명이 체포되고 70만명이 총살되었으니 끔찍한 시기였을 것 이다.




나는 영화보면서 스탈린의 소련이라면 이미 공산주의 체제가 완성되었으니 별 문제 없을거라고 생각하며 굳이 죄없는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일 이유가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스탈린의 공산주의는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과는 달리 스탈린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구조였다. 그러니 스탈린 입장에서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위협할 가능성이 1%라도 있으면 미리 죽이는 숙청이 필요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군 장교는 구데타를 일으킬 수도 있으므로 미리 숙청하고, 지식인들은 체제 비판을 하며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숙청하는 식이다. 그들은 죄가 없는 사람들도 마구 잡아들여 숙청했다.




이 시기 NKVD의 무서운 점은 이번 달에 반혁명분자 5,000명 체포하라는 식의 숙제 할당량이 존재했다는 점인데, 이를 채우기 위해서는 실제 범죄자만 잡아들여서는 할당량을 채우기 힘들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길에서 죄없는 사람을 잡아다가 고문해서 거짓 자백을 받아내는 방식을 활용하게 된다. 이렇게 너도 나도 내 주변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잡혀가는 것을 보자 사람들의 생활 방식도 변했다. 기존에는 서로 토론하던 사회였다면 대숙청 기간에는 서로 대화도 하지 않는 분위기로 바뀐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 잡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무서운 사실은 이 시기에 NKVD 책임자들도 결국 숙청당했다는 것이다. NKVD가 시민들을 체포하고 총살하는 과정에서 NKVD 간부들이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고 결국 간부들마저 숙청당하는 것이다.



큰 줄거리

영화 <두 검사>의 주인공 검사는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한 신입 검사이다. 그는 무고한 사람이 고문당한 것을 보고 검찰 총장에게 NKVD를 수사해야한다고 말하는데, 검찰총장은 오히려 주인공을 반혁명분자로 판단하고 체포하는 식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당시에는 검찰조차 NKVD를 수사할 수 있는 조직이 아니었고 사실상 같은 권력 체계안에 있었다. 따라서 만약 검찰이 NKVD를 수사하려고 하면 검찰조차 국가의 적이 되는 식이었다. NKVD는 법보다 위에 있었고, 그 NKVD 위에 스탈린이 위치한다. 따라서 <두 검사>의 검찰총장처럼 NKVD를 따라야만 살아남아 승진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대숙청 기간에 NKVD가 어떤 사람을 고문했는데, 이를 본 한 검사가 그들을 고발하지만 역으로 체포되고 국가전복 음모죄로 총살당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전해진다. 사실 이런일이 한번 벌어지면 그 후에는 아무도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무고하게 잡힌 노인

주인공은 영화 초반 죄없는 사람이 고문을 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조사를 하기 위해 교도소로 방문한다. 그는 고문당한 노인을 만나 대화를 했는데, 그 노인은 다름아닌 주인공이 다니던 대학교에서 강연을 했던 교수였다. 그 당시 스탈린은 총보다 글을 쓰는 사람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통해 사람들 생각을 바꾸고, 체제를 비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학교에서 강연한 경력이 있는 노인은 굉장히 위험한 경력을 가진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사람은 곧 영향력이 있는 사람으로 위험한 사람이라는 판단으로 이어진다. 그 당시에는 굳이 지식인까지가 아니더라도 단순히 똑똑한 사람들도 많이 잡혀갔다고 한다. 독일어를 할줄 알면 독일 스파이로 몰아가고 일본어를 할줄 알면 일본 스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노인은 주인공에게 스탈린을 만나서 무고한 사람들이 NKVD에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달라고 부탁하는데, 어짜피 모두 스탈린 주도하에 일어난 일들인데도 스탈린에게 알려달라는 말을 한 것으로보면, 노인은 대숙청을 스탈린이 주도했다는 사실을 모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에는 스탈린에 관한 프로파간다가 엄청나서 스탈린은 곧 위대한 지도자라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스탈린은 정의로운데 아래에 있는 관리직들이 몰래 나쁜 짓을 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보면 노인이 자신의 피로 쓴 쪽지를 교도소 간수가 지방검찰청에 순순히 전달해준 이유도 짐작이 갔다. 만약 해당 쪽지를 보고 찾아가는 검사가 있다면 그 사람은 반동분자로 추출 가능하니 NKVD 입장에서는 할당량을 채울 수 있어 오히려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쪽지보고 찾아가는 사람이 사명감있는 사람 쪽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시절에는 이러한 행동이 위험한 행동이 될 수 있었다.



모스크바로 향하는 주인공

감옥에서 노인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후 주인공은 검찰 총장을 만나러 가기위해 모스크바행 기차를 탄다. 그는 기차에서 외발 노인을 만나는데, 그는 화가 많이 난채 혼잣말로 울분을 토한다. 그는 레닌 시절, 국가를 위해 한몸 바쳤지만 혁명과정에서 한쪽 다리를 잃고, 정작 자신을 챙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노인이 기차에서 하는 이야기조차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정의감 넘치는 주인공 검사마저 노인이 이야기하는 동안 앞에서 졸더라. 노인은 다른 사람들이 듣거나 말거나 우리가 만들려고 했던 나라는 이런 나라가 아니었다고 말하는데, 이 장면은 마치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미친사람 취급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주인공은 모스크바에서 힘들게 검찰 총장을 만나 모든 사실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체포되고 끌려가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소련풍 음악이 나오는데 소름 돋았다. 애초에 주인공이 도망갈 수 없었던 것이, 검찰 총장은 주인공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표를 끊어줄테니 타고 가라고 배려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의심하지 않고 기차에 올라타게 되는데 마침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이 주인공 같은 사람들을 체포하는 NKVD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주인공은 기차에서 그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기타치고 노래를 부르지만 그게 주인공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이야.



진실을 가리는 법

나는 현대 사회가 비록 스탈린 시절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때부터 발전해온 진실을 가리는 방법들은 여전히 쓰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에서는 사람들의 분노, 공포 감정을 강하게 자극하고, 저 놈이 문제라며 적을 만든다. 그들은 끊임없이 편을 가르고 통계를 왜곡한다. 반면 그들이 전하고 싶은 말은 계속해서 반복하는 선전의 기본공식을 따르면서 말이다. 예전 나치 시절이나 스탈린 시절이나 냉전 시대나 지금이나 근본적으로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아마 나같은 개인이 진실에 접근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주인공은 영화초반에 노인을 만나게 해달라며 교도소장에게 찾아가는데, 교도소장은 주인공을 보며 "어떨때는 비누로 손을 씻어도 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다. 그리고 주인공이 "그게 무슨 소리요?"라고 되묻자 말을 얼버무린다. 교도소장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마 그는 당신이 아무리 깨끗하게 살아간다고 한들, 죄가 없어도 충분히 잡혀갈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한게 아니었을까. 결국 이 일에 너무 깊게 관여하면 당신도 잡혀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말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스스로 정의로운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일 때문에 죽을수도 있다. 우리는 보통 법을 어긴 적이 없고, 나쁜 짓 안하고 열심히 살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스탈린 시절에는 그 사람이 문제가 있어서 잡아가는게 아니라 잡아야하기 때문에 없는 문제도 만드는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결과가 보장되는 행동은 없다.

요즘 AI를 비롯한 여러 이유로 기업들이 인원감축을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권고사직 당하고 있는데, 최근에도 오라클에서 3만명을 해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들은 과연 성실하지 않아서 권고사직 당한 것일까? 개인의 성실함이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 <두 검사>와 통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열심히 살면 성공하고 회사에 충성하면 회사가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얼마든지 해고당할수도 있다. 손을 비누로 씻어도 병에 걸릴 수 있듯, 정의로운 사람도 반동분자로 체포될 수도 있고, 열심히 일한 사람도 해고당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를 보며 극단적인 생각은 위험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순진무구하게 세상은 공평하다고 믿는 것도 위험하지만, 반대로 모든 것은 조작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세상은 아주아주 복잡한 것이 아닐까. 열심히 하면 다 잘되는 것도 아니고, 연극처럼 모든 것이 미리 다 정해져있는 것도 아닌, 현실은 그 중간 어딘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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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하는 사회

영화 중간에 검찰 총장을 만나러 가는 길에 주인공은 건물 계단에서 어떤 여자가 종이 뭉치를 떨어뜨린 것을 주워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에서 주변 사람들은 멀리서 그저 지켜보기만 하고 여자는 자신을 도와준 주인공에게 고맙다는 인사조차 하지 않고 황급히 지나가는 이 장면은 당시 사회 분위기를 보여준다. 행여나 여자가 주인공에게 고맙다라는 말을 해버리면 그들 사이에는 관계가 생기고, 이는 오해를 불러일으켜 NKVD에 체포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말은 당연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고 황급히 도망가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 시절에는 서로 가까운 사람끼리 신고하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나중에 신고 안했다가 걸리면, 알고도 신고를 안했으니 공범으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보면 주인공은 작중에서 계속 위험한 행동을 계속 한 것이다. 그는 고문 피해자를 찾아가서 말을 들어주고, 상관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심지어 모스크바에 가서 검찰총장에게 직접 보고 했으니 말이다. 스탈린 시절에는 질문을 많이 하거나, 기록을 보거나, 글을 쓰는 등의 지식인들은 위험 인물로 간주되었다. 반면 아무 생각없는 사람, 시키는대로 하는 사람은 안전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마

요즘 사람들을 보면 점점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뉴스, 유튜브, 인스타에서는 사람들을 붙잡아두기 위한 자극적인 컨텐츠만 생산되고, 학교나 회사에 다녀오면 저녁에는 힘들어서 생각할 힘조차 없어지고, 끊임없이 명품을 홍보하며 사람들이 돈쓸 생각만 하게 만든다. 예전과는 조금 다르게 조직들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궁리를 하다보니, 사람들의 시간을 뺏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그러다보니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유튜브 보다 인스타보다 잠들어버리며 생각할 시간조차 없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으면 누가 이득을 볼까.




현대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자원은 돈이나 정보가 아니라 집중(Attention)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요즘 같은 경제를 Attention Economy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한 사람의 시간, 집중력, 감정이 돈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기업들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계속 자신들의 서비스에 머물게 만들지 궁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분노, 공포, 성, 비교, 인정, 중독, 도박, 편가르기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사용해 사람들을 머물게 만든다.




요즘 시대는 과거와는 명백히 다르지만 어딘가 비슷한 면도 있다. 옛날에는 책을 읽는게 금지였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은 책을 읽을 수 있는데도 안읽는다. 예전에는 언론이 검열 당했지만 요즘은 뉴스가 너무 많아서 무엇을 믿어야할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말하면 처벌 받았지만, 요즘은 말을 자유롭게 할수는 있지만 아무도 안듣는다. 예전에는 정보가 부족해서 구하기가 어려웠지만 일단 구하기만 하면 신뢰성은 높았다. 반대로 요즘은 정보가 넘처나는 시대라 정보를 구하기는 쉽지만 그게 믿을만한 정보인지는 구별하기 힘들다.




유튜브의 폐해연히 상영 중 영화 목록을 보다가 <두 검사>라는 작품이 재밌어보여 관람했다. 시놉시스가 마음에 들었는데, 상영관도 몇 군데 없는 데다가 30명 남짓 들어가는 아주 작은 상영관에서 상영했다. 지난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작은 상영관 속 영화들은 월클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 본 <두 검사도> 아주 인상깊은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1937년 스탈린 대숙청 시기의 두 검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체제를 따른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신념을 따를 것인가를 묻는 작품이다.


유튜브의 폐해

그래서 글쓰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과정을 거치면서 기존의 생각들이 나만의 방식으로 정리되면서 자신만의 생각이 생기고, 반대로 생각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요즘 주변을 보면 유튜버가 하는 말을 자기 생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책을 읽는건 시간이 너무 오래걸린다며 유튜버가 책 내용을 요약해주는 영상을 본다고 하던데, 나는 이 방법이 그다지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책은 읽으면서 계속 능동적으로 생각 해야 겨우 이해가 되는 반면, 영상은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 해석해서 전달해주기 때문에 큰 힘을 들어지 않아도 마치 이해가 된 것만 같은 착각이 생긴다. 애초에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저자의 생각이 압축된 문자를 읽고, 스스로 정리하면서 내 생각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것은 저자의 생각을 유튜버가 해석한 영상을 보고 개인은 수동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할 뿐이다. 즉, 유튜브 영상을 보는건 저자의 생각이 아닌 유튜버의 생각을 들은 것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중요한 능력은 혼자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항상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고, 영상을 보고 음악을 듣는 현대인들은 가만히 있는 시간을 못견디는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발적 고립 사회

스탈린 시절에는 강제로 사람들을 고립시켰다면 요즘은 자발적으로 스스로 고립되는 것처럼 보인다. 스탈린 시절에는 사람들과 서로 만나는 게 위험해서 만남을 꺼렸다면, 요즘은 만나는게 자유인데도 서로 만나지 않는다. 결국 두 시대 모두 사람들은 서로 무관심해지고, 점점 관계가 약화되고 개인화 된다.




나는 강제적 고립보다 자발적 고립이 더 무섭다고 보는데,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보면 예전에는 감옥처럼 강제로 통제했지만 지금은 자율적 통제로 넘어왔다고 한다. 사람을 더이상 물리적으로 때리지 않고, 훈련시키는 것으로 통제한다. 학교에서는 시간표, 시험, 성적으로, 회사는 성과평가로 훈련시킨다. 내 점수는 계속 기록되고 자연스럽게 알아서 눈치보며 살게 되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시스템을 잘 따르는 소수에게는 상을 주는데, 상이라는 희망을 준다는 점에서 스탈린 시절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최상위권에게는 명문대 입학, 대기업 취업이라는 상을 주고, 시스템은 이러한 보상을 이용해 각 개인이 스스로 움직이게 만든다. 상을 받기 위해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시스템을 잘 따르게 되며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계속 달리게 된다. 이것이 자발적 통제 아닐까. 예전에는 채찍으로 움직이는 사회였다면, 요즘은 당근으로 움직이는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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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

영화 <두 검사>는 스탈린 체제에서 인간은 두 종류로 나뉜다는 것을 의미하는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신입 검사처럼 양심과 법을 따르는 사람, 검찰총장처럼 권력을 중시하고 체제에 복종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주인공 신입 검사는 법은 국가보다 위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무고한 사람을 고문하는 것은 범죄라이므로 처벌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반적인 법치국가 관점에서 맞는 말이다. 반면 검찰총장은 NKVD 건드리면 국가의 적이되며, 스탈린이 곧 법이며, 정의로운 사람은 살아남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결국 영화에서는 검찰총장이 살아남는다.




만약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사실 신입 검사처럼 행동하면 100% 죽는다고 봐야하고 성공을 위해서는 검찰총장처럼 체제에 복종해야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단 살아남아야 하니까 모른척하지 않을까. 스탈린 체제에서는 모른척하는 사람들만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문제 제기한 사람들은 모두 죽었을테니 말이다.




이 영화는 당신이라면 이런 세상에서 어떤 인간으로 살아갈 것이냐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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