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by 천세아

서산에서 엄마는 내내 기초생활 수급자였다. 나는 어렸고, 엄마는 병들었고, 오빠는 초졸이었다. 일을 구하기도 힘들었고, 술 문제로 일터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외삼촌과 외숙모는 엄마에게 돈과 쌀을 빌려갔다. 돌려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중엔 엄마도 상황이 너무 힘들어지자 삼촌의 부탁을 거절했다. 그게 자존심이 상했거나 분했던 모양이다. 아이들에게 고모 집에 가지 말라, 학교에서 나를 봐도 아는 척하지 말라고 했다. 그전까지 문제없던 사촌들과의 관계는 어느 날부터 차갑게 식었다. 어린 나는 이유를 알면서도 내심 서운했지만, 아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던 외삼촌의 성격을 알기에 한편으로는 이해하기도 했다. 그 일 전까지는 말이다.

어느 날 낮, 혼자 집에 있는데 집 전화가 울렸다. 평소엔 빚쟁이들이 대부분이라 받지 않았지만, 그날은 왠지 모르게 수화기를 들었다. 빚쟁이가 아닌 외숙모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날 선 첫마디가 들려왔다.


"너 우리 OO이 때렸냐?"


OO이는 그 집 셋째 딸이었다. 유독 나를 잘 따르던 아이, 자기 언니보다 내가 더 좋다고 말하던 아이. 내가 그 애를 때릴 리 만무했다. 심지어 그날은 학교에서 마주치지도 못했다. 그런데 그 애가 나한테 뺨을 맞았다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적 없다고 했다. 옆에 OO이가 있으면 바꿔달라고 했다. 당사자와 삼자대면하면 오해는 풀릴 것이었다. 그런데 웬걸, 수화기 너머 그 아이는 뻔뻔하게 말했다.


"언니가 나 때린 거 맞잖아."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었다. 내 상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일이었다. 아니, 내가 당사자인데 어떻게 나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지? 이제 초등학교 4학년밖에 안 된 아이가?

나중에 알고 보니 대략 이랬다. 그날이 삼복더위라 아이가 집까지 걸어오느라 볼이 벌게졌는데, 외숙모가 대뜸 물었다.


"너 볼이 왜 이렇게 빨개? 누구한테 맞았어? 재연 언니가 때렸어?"


아이는 얼떨결에 끄덕였다. 그게 발단이었다.

내가 맹세코 아니라고 해도 외숙모는 막무가내였다. 그렇게 억울한 통화가 끝나고 다음 날이 되었다.

학교 점심시간, 급식을 먹으려 줄을 서 있었다. 저 멀리서 누군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던 외삼촌이 보였다. 당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급식실로 가려면 운동장 가장자리를 빙 둘러 줄을 서서 들어갔으니, 점심시간에는 전교생이 운동장에 다 나와 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기가 막히게도 저 멀리서 나를 단번에 찾아낸 외삼촌은 살기 어린 눈빛으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가와 내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다.


"네가 내 딸을 때려?"

"너도 똑같이 해줄까?"


그 광경을 본 담임 선생님이 저 멀리에서 달려왔다. 뒤이어 다른 반 선생님들도 달려와 외삼촌을 뜯어말렸다. 그 사이 나는 바지에 소변을 지리면서 집으로 내달렸다. 거기 계속 있다가는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집으로 도착하니 좁은 마당에서 엄마와 큰오빠가 쭈그려 앉아 어묵을 꼬치에 끼우고 있었다. 내가 눈물 콧물 범벅에 소변까지 지리며 들어오니 놀란 엄마와 오빠는 무슨 일이냐며 다그쳤다. 나는 겪은 일을 얘기했고, 큰오빠는 당장 외삼촌을 죽여버리겠다며 식칼을 들고 나서는 것을 엄마가 뜯어말렸다. 그때는 직접 가지는 않고 전화로 실랑이를 벌이다 흐지부지 끝났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 뒤에 겪게 된 끔찍한 일들은 아주 선명하게 기억하지만 말이다.

한순간의 오해, 혹은 타인의 의도가 만들어낸 거짓은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력을 지닌다. 진실은 때로 폭력보다 더 날카롭게 우리를 베어내며, 특히 어린 마음에 새겨진 불합리의 경험은 잊히지 않는 흉터로 남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머문다. 나는 정말 괜찮았던 걸까? 그 아이는 그때 왜 그래야만 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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