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덜 광고 같은 광고 이야기
오늘은 2021년 3월부터 2022년 5월 30일까지 다녔던 오길비 뉴욕의 마지막을 회고하고자 한다. 정확히 지금이 새벽 12:24 AM이라서 기분이 센티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어쩄든, 어제 오길비 뉴욕을 하루 만에 그만뒀다. 보통 회사를 그만둘 때는 2주 정도 노티스를 주고, 남은 일을 하는 게 관례(?)다. 하지만, 계약서에 굳이 2주 기간을 줘야 한다고 써져 있지 않다면 나처럼(?) 그날 사직서를 내고 그날 그만둘 수 있다. 나는 사실 이전에 Leo Burnett Chicago에서 일했을 때는 2주 노티스를 줬었다. 그랬더니, 이놈들이 갑자기 일을 엄청나게 많이 주는 게 아닌가? 속으로 '아 놔, 이거 해도 해도 너무 한 거 아냐?'라는 생각을 했고, 우리 가족이었잖아? 그랬던 거 아니었어? 나 혼자 짝사랑 한 거였구나? 그런 거였구나? 깨달았었다. 그 뒤로, 계약서에 2주 노티스를 주지 않고, 나도 회사도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At-will" employee로 오길비 뉴욕과는 계약을 했었다. 그래도 내가 사직서를 제출한 방식은 다음과 같다.
HR Manager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메일을 보낸다. (회사 다니는 동안 HR이 누군지 몰랐지만, 회사를 그만두는 날 HR을 알아내고 첫 이메일이 사직서다ㅋㅋ)
나, "안녕하세요? 저 오늘부로 퇴사하고 싶은데요. 절차가 어떻게 돼요? 알려주세요."
HR, "마지막 날이 포함된 사직서를 작성해서 이메일에 첨부해 주세요."
나, "그동안 정말 행복하게 많이 배우고 성장해서 좋았다. 새로운 대행사에서 좋은 기회가 와서 떠난다. 나는 5/30일 오늘부로 그만두고 싶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동안."
HR, "보통 관례상 2주 노티스는 주는 법인데, 오늘 바로 그만두시는 이유가 있나요?"
나, "솔직히, 제가 이직하는 대행사에서 빨리 시작해야, 더 나은 기회와 더 나은 보상이 오기 때문이죠."
HR, "Understandble. Exit Interview 세팅할게요."
30분 뒤, HR과 화상 통화를 했다. 나는 당연히 카메라를 켜고 들어갔는데, HR이 카메라를 안 켜고 왔다. 나는 멀뚱멀뚱 꺼져 있는 카메라에 "Hello?"를 외쳤다. HR이 자기 카메라에 문제가 생겨서 안 켰다며 황급히 카메라를 켰다. 서로가 초면인 상황. 서로 How are you? 이런 질문도 없다. 그냥 첫마디부터 단도직입적이었다.
HR, "How was Ogilvy?"
나, "Very nice people. Very very nice people. 훌륭한 대행사라서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다 좋았습니다."
HR, "그래? 근데 그만두는 결정적인 이유를 솔직히 말해줄 수 있어? 괜찮아~"
나, "아니에요~ 정말 정말 좋았어요. 그냥 새로운 대행사가 더 조건이 좋아서 빨리 그만두고 싶어요!"
HR, "그래 이해가 된다. 근데, 다른 결정적인 이유가 없어? 그냥 말해줘도 돼~"
나, "흠... 굳이 뽑자면, 대행사에 리더십에 아주 큰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대행사에 CCO가 1년 주기로 바뀌니, 선장 없이 항해하는 큰 배 같은 느낌이랄까요? 저도 CCO 믿고 온 거였는데, 제 실수였던 것 같아요."
HR, "그렇구나. 이해가 된다. 그래, 그동안 수고했고, 앞으로 행운을 빌게!"
나, "네, 수고하세요."
대략 3분 정도 이야기했나? ㅋㅋㅋㅋㅋ;;;;
그러고 나서, 내가 일하고 있던 IKEA 팀 씨디들을 만났다. 하필, 그만두는 당일 2시에 아이디어 발표가 있었고, 나는 마지막까지 그래도 할 건 해야지 하고... 브랜드 필름 아이디어 2개를 준비해 갔었다. 현재 IKEA 팀 CD들은 아주 젊다.
씨디, "셸던, 그만두는 거야?!"
나, "네. 그동안 정말 즐겁게 일했었어요. 정말 감사했어요."
씨디,"그래. 어디로 가는 거야?"
나, "72andSunny 뉴욕으로 가요."
순간, 정적이 3초 정도 흐르고, 애들의 축하의 환호성이 나왔다. 우와!!!! 나...'뭐지? ;;;;;'
이전에 72andSunny 뉴욕에서 오길비 뉴욕에 씨디로 온 지 얼마 안 된 아마도(?) 스웨덴 출신 씨디는 자기도 거기서 왔다며 반가워했다. 같이 일하게 될 ECD를 얘기하니, 그 사람 아주 똑똑하고, 훌륭한 리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내심 그런 반응이 싫지는 않았다. 다른 동료들도 다들 축하한다며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나는 너무 미팅이 나의 이직 축하장이 되는 것 같아 중지하고 다시 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나, "자! 그래도 오늘 브랜드 필름 아이디어 2개를 가져왔습니다. IKEA에게 더 나은 집이란 뭘까요?"
씨디, "셸던~~~규규규규 오늘 4시간밖에 시간 없었는데.... 뭘 이렇게까지 했어? ㅠㅠㅠ"
나는 속으로, '임마 뭐지? 얘가 이렇게 착한(?) 애였나? 뭐... 착하긴 하지만, 뭔가 감사한데...?'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아이디어를 발표했다. 씨디들이 너무 좋다면서, 덱을 공유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오길비에서 마지막 미팅을 했다. 결국 사람들은 돌고 도는 걸 알기 때문에... 다음에 또 같이 일할 거라는 걸 아는 사람들은 아나보다. 나 또한 마지막 인사가 "See you around!" 였으니, 다들 나중에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게 교훈인 것 같다.
결론적으로, 오길비 뉴욕 2021- 2022 리뷰를 해보자.
장점
좋은 사람들, 사람들이 일단 다들 인간적(?)이고 똑똑하고 친절하다.
재택근무. 회사 출근을 전혀 강요하지 않는다.
워라벨 보장. 거의 매일 5시에 집에서 칼퇴를 했다.
보수도 좋은 편. 업계 평균 이상.
네임밸류. 워낙 유명한 그 이름, 오길비 뉴욕.
역사 깊은 대행사. 헤드 쿼터. (since 1949)
단점
선장 없는 항해. CCO가 너무 자주 바뀌어서, 대행사의 문화 및 디렉션이 없다 싶다.
광고 공무원. 정말 편안하고, 정말 적당하다. 딱히 창의적인(?) 광고를 위해 이를 갈지 않는다.
안정적인 클라이언트 =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광고
과장 많이 섞고, 90% BTL. 10% ATL. 브랜드 캠페인 안 한 지 백만 년 된 듯한 느낌적인 느낌.
Output이 아주아주아주 적다. 오죽하면 대행사 목표가 Prolific (다작)이겠는가
그 많던 기회들은 어디 갔는가. 좋은 브리프가 없다. 그래서 대행사에 작업이 없다
CD 및 ECD 님들이 오래 계신 분(최소 10년 이상)들이 많았어서 다들 짤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