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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eldon Aug 01. 2023

참 좋은 광고의 본질

조금 덜 광고 같은 광고 이야기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늘 가까이에 근심이 있다.


인생은 쉼 없이 달리는 게임이 아니라고 하셨다. 죽도록 일해도 빚 없는 인생일 수 없기에,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더 중요하다고 하셨다. 꺾이지 않을 꿈과 흔들리지 않는 뜻을 세워야 한다고 하셨다. 남의 눈치나 조건을 살필 필요 없이, 사람의 힘으로 풀 수 없는 문제는 남겨 두는 것도 좋은 전략이라고 하셨다. 맞는 말씀이셨다.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입 속에 머금은 담배를 뿜으며, 이어서 말씀하셨다.


살아온 시간을 돌이켜 보니,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지 않은 것을 가장 크게 후회하신다고 하셨다. 돈만 되는 일을 하면서 돈을 써야 할 때를 모르고 아끼기만 한 자신이 궁색했다고 하셨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앞으로는 사람을 찾아 함께하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걸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하셨다. 정말 옳은 말씀이셨다. 


이렇게 옳은 말씀을 하시는 할아버지에게 왜 지난날을 후회하는지 물었다.


"할아버지는 항상 지혜로운 말씀만 해주시는데... 후회가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란다. 그렇다고 그게 틀린 건 아니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할아버지가 이어서 하실 말씀을 기다렸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 그리고 나눔.


"사람에 대한 관심,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돈에 대한 관심과 배려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부부의 시간과 아이들과의 시간, 부모님과의 시간과 형제자매들과의 시간, 친구들과의 시간을 모두 그 똘똘한 집 한 채에 저당 잡히고 말았다. 미래의 똘똘한 집 한 채와 현재의 모든 행복을 맞바꾼 내가 어리석었다."


할아버지는 이미 다 타버린 담뱃재를 털어 내며, 맑은 구름을 바라보며 이어 말씀하셨다.


"사람이 가장 풍요로울 40대에 '집'을 가지면 행복해질 거라고 믿었다. 밤낮없이 죽도록 일하면서 돈을 가져다주고, 집을 사면 행복할 거라 믿었다. 허상이었다. 아이들과 웃고 떠든 기억이 없다. 푸른 잔디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본 적이 없다. 여름휴가 한 번 제대로 낸 적이 없다. 딸아이 운동회에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다. 돈 때문에. 집 때문에. 그렇게 가장 소중한 것을 놓쳤다. 정말 후회스럽고 원망스럽다."


나는 바닥에서 열심히 일하는 개미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인 채 경청하고 있었다.


"기억하렴, 억대 연봉보다 가치 있는 건 가화만사성이란다. 가족 모두가 함께 밥을 먹을 정도로 잘 어울린다면, 안 풀릴 일이 없다는 뜻이란다. 네가 어릴 때, 벌레 나오는 집에서 살았던 거 기억나니? 그때, 우리 가족은 대가족이었단다. 가족 모두가 모여, '저녁 먹을 때가 됐는데...'라는 말이 일상이었던 날들 말이야."

"네, 기억나요. 그땐 정말 행복했어요. 매일 시끌벅적하고 곧잘 티격태격 거려도 정말 행복했던 것 같아요. 좋은 기억들이에요."

"그래, 그렇단다. 인생에서 가장 값진 것은 '사랑'이란다. '돈'과 '집'이 사랑의 수단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설령 적은 돈을 벌더라도, 가족이 화목하고 사람 관계가 화목한 사람이 진짜 부자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정말 맞는 말씀이셨다. 


나는 '가화만사성'을 이루기로 결정했다. 


미국에서 아무리 최신의 기술을 익혀도 '사람'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없다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뉴욕. 최고의 광고대행사. 월 1000. 이 모든 것은 허상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은 분명했지만, 그 일 때문에 내 사람을 놓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더 이상 이기적으로 살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 상대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사람,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 예의를 지키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 아랫사람에게 자상한 사람, 친구 간에 우정이 돈독한 사람,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 손윗사람에게 공손한 사람, 용기 있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항상 내 곁을 지켜준, 가장 가까운 사람과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하기로 결정했다. 월 1000과 럭셔리 아파트가 인생의 행복을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주 큰 깨달음이었다. 34살에 이렇게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난 참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다. 



난 참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광고 만드는 일 또한 마찬가지 같다.


광고는 그 사회의 문화와 맥락에 꼭 낄 수 있는 문맥이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고 슬픈 땐 같이 울고, 기쁠 땐 같이 웃을 수 있는 광고가 진짜 '소통'이 되는 광고인 것 같다. 그렇게 좋은 광고를 만들기 위해서는 누구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현실성과 창의성을 겸비한 광고를 만들기 위해선, 세상의 수많은 슬픈 일들에 함께 울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어야 할 것 같다. 최근에 일어난 초등학교 선생님에게 일어난 일에 진심으로 가슴 아파, 함께 울고 있는 나 자신을 보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힘없는 현실에 함께 분노하며 울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기억하는 건, 권력을 휘두르며 마음대로 편하게 살다 간 생이 아니라 힘없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능력과 권력을 사용한 생이라던데... 나는... 광고인으로서 그런 능력이 없는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아팠다. 


이제는 함께 웃고 함께 울 수 있는 광고를 만들 수 있는 참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좋은 광고의 본질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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