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덜 광고같은 광고 이야기
2023년 8월 중순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 달 가량 최선을 다해서 놀고먹었다.
9월 중순이 되자, '고마해라. 마이 뭇다이가.'라는 마음으로, '취직해야겠다.'라고 다짐하고 대행사를 찾아봤다.
운 좋게도, 내가 꼭 같이 일하고 싶었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나를 좋게 봐주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
감사하게도, 추석까지 놀았고 10월 1일부터 난생처음 서울에서 살기 시작했다!
더 감사하게도, 추석 끝나자마자, 10월 4일부터 차이 커뮤니케이션에 차장으로 출근했다.
고마운 일이 너무 많은 요즘,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와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서 회고하고자 한다.
먼저, 내가 돌아온 이유는 단순하다.
가족, 그리고 사랑.
미국에서의 삶은 얕았다면, 한국에서의 삶은 깊어졌다.
돌아오고 나서...
아내랑...
매일 외식을 기다리게 됐다.
야근을 자주 해서 자주 못 보게 됐다.
그래서 매일 매 순간이 아쉬워졌다.
오늘 늦을 거야. 내일은 괜찮을 거야. 하게 됐다.
덕분에. 내일 뭐 하지?를 고민할 수 있게 됐다.
주말에 어디 가자!라고 생각하게 됐다.
어제는 고맙고,
오늘은 소중하고,
내일은 반갑다.
매일이 더 의미 있어졌다.
엄마랑...
더 자주 밥 먹을 수 있게 됐다.
더 많이 명절을 함께 보낼 수 있게 됐다.
더 많이 혼날 수 있게 됐다.
더 많이 다툴 수 있게 됐다.
더 많이 화해할 수 있게 됐다.
더 많이 서로에 대해 알게 됐다.
더 많이 고마워할 수 있게 됐다.
더 자주 울게 됐다.
삶의 깊이가 깊어졌다.
아빠랑...
다시 낚시를 가게 됐다.
다시 당구를 치러 가게 됐다.
다시 목욕탕을 같이 가게 됐다.
다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됐다.
다시 조언을 듣게 됐다.
다시 아이스크림을 같이 먹게 됐다.
다시 고기도 같이 먹고, 내가 돈을 내게 됐다.
다시 웃게 됐고, 걱정하게 됐다.
다시 아들이 됐다.
다시 가족이 됐다.
처가댁과...
허울이 없어지고 형식을 버렸다.
와이프랑 싸우면 조언을 구할 수 있게 됐다.
생일 케이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맛없는 건 맛없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같이 농구를 다니고, 계획을 짜게 됐다.
같이 여행을 갈 수 있게 됐다.
진짜 가족이 됐다.
가족과 사랑이 전부인 삶에서 인간이 만든 사회는 허울이다.
얼마나 값진지 모르겠다.
나는 이제 돈을 많이 못 번다.
돈을 많이 못 벌어서 너무 좋다.
이렇게 살 수 있다면, 진작에 돌아올걸.
참 아쉽다.
바보 같다.
직장이 인생의 전부라고 믿었다.
멍청하다.
어리석다.
가족과 사랑이 전부인 삶에서, 인간이 만든 허울에 놀아났다.
인생을 돈으로 평가하지 않게 됐다.
직업을 위해 살지 않게 됐다.
사람을 위해 살게 됐다.
사람다운 삶이 됐다.
아 그래서, 한국 대행사 생활은 어떠냐고?
한마디로, "힘든데, 재밌다."
추석 끝나자마자, 10/4일부터 차이 커뮤니케이션에 아트디렉터 차장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첫날부터 굽네 경쟁 PT를 시작했다.
아주 치열하게.
첫날부터 PT 날까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근하고 야근을 했다.
시작하자마자 경쟁 PT를 시작했으니, 한국 광고 대행사의 시작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내가 같이 일하고 싶었던 박종훈 CD 님과 일하게 돼서 정말 기뻤다.
다행히, 내가 모시는 박종훈 CD 님은 내가 힘들고 낯설어할까 봐 많은 배려를 해주셨다.
밥도 사주고, 대행사 생활 및 문화 그리고 프로세스까지 하나하나 친절히 알려 주셨다.
이번 한 번만 경험하면, 바로 감 잡힐 거라며 믿어 주셨다.
한국 대행사 경험이 없는 나를 믿어준 정말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빨리 영점을 잡고 보란 듯이 잘해서 한국 광고계를 평정하고 싶다.
광고는 사람이 전부인 팀 스포츠다.
CD 님 덕분에 모든 과정이 재밌었다.
기획팀도 정말 열심히 일하셔서, 존경스러웠다.
인턴부터 본부장님까지 한마음, 한뜻으로 최선을 다했다.
'아이디어'에 이렇게 진심인 사람들이라 정말 감탄스러웠다.
모두가 그렇게 함께 했다.
한국 광고 대행사는 애니매틱이 승부수다.
나는 한국 대행사의 프로세스가 처음이라서, 그냥 최선을 다했다.
미국에서 하던 방식대로 아이디어를 내고, 아이디어를 발표했다.
지금도 영점이 잡히지 않았지만 이제는 프로세스를 이해하게 됐다.
미국이랑 아주 다른 점은... 애니매틱에 최선을 다한다.
미국에서는 메니페스토 형식으로 캠페인의 전체 톤과 방향을 보여주는 영상을 만들거나, 무드 보드로 대체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집행을 할 광고 시안을 영상을 하나하나 짜집어서 가짜 시안을 성우와 함께 만든다.
대행사가 컨셉과 영상 스토리보드와 카피를 쓰고, 이미지를 잡아서 건네준다.
프로덕션 피디님들은 대행사가 생각한 아이디어를 영상으로 만들어주신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덕션 피디님들이 정말 고생을 하시고 함께 애써주신다. 정말 멋진 동료들이다.
경쟁 PT 날에는 동료들이 승리를 기원하며 배웅해 주는 게 고마웠다.
그렇게 만든 영상과 기획안을 가지고 광고주에게 발표를 하러 간다.
PT 장에서 다른 대행사 사람들은 볼 수가 없었다.
대행사별로 돌아가면서 기획안을 발표한다.
그리고, PT 결과가 하루 만에 나왔다.
시작이 좋다. 첫 경쟁 PT를 이겼다.
운 좋게도, 내 첫 경쟁 PT를 승리했고 정말 많은 것들을 짧은 시간에 배웠다.
한국 대행사의 경쟁 PT 프로세스를 이해하게 됐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게 됐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경쟁 PT를 위해서 노력을 하는지 알게 됐다.
애드 아시아에 참석했다
애드 아시아라는 광고 페스티벌에도 다녀왔다.
나는 처음 듣는 광고 페스티벌이었지만, 팀원들과 같이 이런 행사(?)에도 참석하니 즐거웠다.
와중에 김 카피는 애사심을 불태우면서, 회사 로고로 타투를 박았다.
라이프를 나름답게
페스티벌에서 제일 재밌었던 강연은... 애드 아시아 마지막 주자였던 이연호 본부장님의 강연이었다.
차이 커뮤니케이션의 이연호 본부장님은 카피라이터 출신의 기획 본부장님이시라 크리에이티브가 남다르다.
청중을 사로잡는 목소리와 말하듯이 읊조리는 프레젠테이션은 정말 젠틀하고 설득력 있다.
전문적이면서 캐주얼하고 신뢰감이 간다.
내용도 어렵지 않고, 가볍지만 위트 있고 동시에 무게 있는 인사이트를 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셔서 존경스럽다.
'나는 저렇게까진 못할 거야.'라는 감탄을 자아낼 정도다. 정말 멋지시다.
차이 난다 차이나.
킹크랩까지 사주시는 킹CD, 박종훈 CD.
애드 아시아가 끝나고,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씨디님이 킹크랩을 선사하셨다.
나는 솔직히, 킹크랩 또 먹고 싶어서라도 그다음 PT도 이길 생각이다.
"나... 킹크랩 사주면 PT 계속 이길게요..."
킹크랩, 가리비, 낚지 탕탕이까지 그냥 다 묵었다.
솔직히, 애드 아시아보다 노량진 수산 시장이 더 좋았다.
진심 또 가고 싶다.
다음 PT도 이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