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2019)
* 리뷰인듯 에세이인듯
작년 7월 우리 가족은 어머니가 그렇게 염원하던 이사를 했다. ‘가능한 높은 층에 엘리베이터가 달린 집’이 어머니가 원하는 조건이었다. 1992년 4월부터 2018년 7월까지 부모님의 가장 큰 소원은 반지하를 탈출하는 것이었다. 그 옛날,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주인아주머니의 갑작스러운 요구에 대출을 받아 지금 사는 동네의 반지하 집으로 왔다. 아마 그땐 내 집을 갖는 것이 부모님의 가장 큰 소원이었으리라. 방 세 개, 식탁이 빠듯하게 들어갈 거실까지. 이전보다 훨씬 좋은 그 집의 유일한 단점은 반지하라는 것이었다.
그 날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직 어렸던 동생과 안방 문을 닫아놓고 TV에서 해주던 <슬램덩크>를 보다가 물을 마시려고 방문을 열었을 때, 거실로 내딛은 발에서 첨벙하는 소리가 났다. 어른은 집에 없었고, 동생들은 방에서 놀고 있었다. 나는 방 밖으로 나와 수건으로 물을 닦아 대야에 짜내기를 반복하며,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뒤로 비가 아주 많이 내리는 날엔 부모님 중 한 분은 집에 계시기 위해 일정을 조율했고, 나는 물이 내려가며 요란한 소리를 내는 변기를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바라보고는 했다.
영화 <기생충>을 보며 나는 26년이나 살았던 우리 집을 생각했다. 벽에 곰팡이가 슬어 도배를 반복하고, 장롱 칸마다 제습제를 가득 넣어두었던 반지하 빌라를 말이다.
영화 속 기택(송강호 역)네 네 가족은 우연한 기회-사기라 할 수 있는-로 한 부잣집에 모두 취업을 한다. 가정교사로 가사도우미로 또 운전기사로. 주인 가족이 캠핑을 떠나고 빈집에서 그들은 최대한을 취하고 즐긴다. 예기치 못한 기상악화로 인해 떠난 가족이 빠른 귀가를 하기 전까지 말이다. 비는 억수같이 퍼붓고, 캠핑을 즐기지 못해 뿔이 난 아들은 마당에 비가 새지 않는 튼튼한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밤을 보낸다. 아들을 살피기 위해 거실에서 잔 집 주인 부부는 아무도 듣지 못하는 둘만의 솔직한 이야기를 한다. 같은 공간, 기택은 숨소리도 내지 못한 채 부부의 이야기를 곱씹는다. 모두가 잠들고 겨우 탈출한 기택의 가족이 돌아온 반지하, 그들의 보금자리는 밤새 내린 비로 허리까지 물에 잠기고, 변기는 역류한다. 넘치는 변기 위를 뚜껑으로 누르고 앉아, 담배를 태우는 딸 기정의 모습은 이제는 그 상황에 초연해졌음을 알려준다.
반복되는 계절은 우리 가족 역시 초연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좌절했는가. 그렇지만은 않았다. 재주가 많은 아버지는 싱크대 밑과 화장실의 하수구에 밸브와 뚜껑을 달았다. 비가 많이 내리면 여지없이 싱크대와 화장실을 잠그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고 멀쩡한 변기를 깨서 밑에 시멘트를 발라 더 높이 올렸다. 물론 그렇게 하고도 해결할 수 없는 순간도 있었다. 언젠가는 단체로 침수된 우리 동네에 대통령이 위로차 방문을 했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퇴근해보니 위로금 얼마와 생필품이 든 상자가 도착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너무 가난해서 슬프다거나, 이 집이 너무 창피하다거나 하는 생각은 잘 하지 않았다. 상황은 슬펐지만, 아버지의 지혜에 감탄했고, 서로 배려하는 가족 덕분에 오래 힘들지 않았다. 집을 사기 위해 받았던 대출 상환이 끝나고 나서는 외식도 자주 했고, 사고 싶은 걸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그렇게 가난에 누구보다 잘 적응하며, 이재민 대피소에 짐을 겨우 가져다 둔 채 몸을 피하면서도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같은 태평한 소리를 하던 기택은 다음 날 고작 코를 틀어막으며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에게 수틀려, 그 몸을 바비큐 나이프로 찔러버리고 도망친다.
영화의 마지막 아들 기우의 편지가 내레이션으로 깔리고, 그가 가진 거창한 계획을 관객 모두가 알게 된다. 감동적인 미래를 상상하는 장면 뒤로, 지금 처한 현실이 차갑게 들러붙고 영화는 끝이 난다.
그 편지가 울려 퍼지는 내내 로또 1등에 당첨되면 무엇을 할까 상상하던 나를 떠올렸다. 당첨금은 16억쯤, 세금을 떼고 나면 12억쯤. 그럴싸한 동네로 이사할 집을 구하고 나면 끝이겠네. 대출을 받아서 상가를 사는 건 어때. 그런 쓸데없이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며 웃겨 죽던 나를 말이다.
영화가 개봉한 다음 날 많은 커뮤니티에서 그 냄새가 어떤 냄새인지에 대해 설전을 벌였다. 지하철 1호선에서 나는 냄새라고도 했고, 말로 설명 못 할 냄새라고도 했다. 나는 영화관을 나서면서 자꾸만 내 옷의 냄새를 맡았다. 이제 이사를 온 지 꼭 일 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