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천일 동안

우리의 사랑이 영원할 거라 믿어왔었던 거죠.

by knitter the lonely

* 그러니까 두서없는 사랑의 고백.



천일. 시간으로 환산하면 2만 4천 시간. 144만 분. 8천640만 초.


그 날이 벌써 천 일이 되었다. 그날은 유독 퇴근에 시간이 걸렸다. 겨우 버스에서 내려,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정거장 앞의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갔다. 치즈가 잔뜩 올라간 감자튀김을 시켜놓고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별거 아닌 이야기들로 수다를 떨던 방에, 그 아이의 소식이 올라왔다. 생을 마감했다는. 지금도 그때의 감각을 잊을 수 없다. 그때 사서 집에 가지고 들어간 감자튀김은 몇 날 며칠을 먹지도 치우지도 못해, 결국 한참 뒤에야 쓰레기통에 버릴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조문을 가야 할지도 모르니 어두운 옷을 입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스스로가 낯설었다. 포슬한 느낌의 진회색의 폴라를 나는 그 날 이후로 한 번도 다시 입지 않았다. 혼자 그곳에 갈 내가 걱정된 친구가 함께 해주겠다 했다. 그 길고 긴 줄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그 길에서 마치 왜 여기 왔는지 잊은 사람들처럼 그 아이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따금 웃기도 하면서 한참이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다 한 순간 모두 현실을 깨달으면 골목이 전부 울음바다가 되었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병원 로비를 거쳐 계단으로 줄줄이, 몇 시간을 기다려 내 차례가 되었다. 다시는 그 아이에게 어떤 말도 건넬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해, 몇 장의 편지를 썼다. 예쁘게 웃는 얼굴 앞에 편지를 내려놓고 이름을 소리 내어 한 번 불렀다.


종현아.


이제 다시는 그렇게 부를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이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주로 그 아이를 ‘우리 똥개’라고 불렀다. 똥개. 그건 나의 일방적인 애정이 담긴 애칭이었다. 처음처럼 정열적이진 못했지만, 그래도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알람을 설정하고, 틈틈이 그것들을 녹화하는 정도의 온도였다. 내 사랑은.


매일 후회의 밤이 이어졌다. 시간을 돌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현실을 포기해도 좋으니, 너는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그러다가는 곧 가족도 하지 못한 일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반문했다. 또 순간은 그 애를 탓했다.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꼭 그렇게 가야 했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 아이에게 야박하다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자격이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 생각이 거기까지 가고 나면 눈물이 터졌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어 했다던 심플한 텍스트의 타투를 그대로 내 손목에 새겼다. 어쩌면 나는 괜찮아지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 타투를 볼 때마다 계속 그 애를 떠올리고 싶었다. 그렇게 눈물의 밤도 매일 찾아왔다.


그 겨울은 온통 그 아이로 가득했다. 재개봉했던 <환상의 빛>을 보러 가서는 그 아이가 최고로 기뻤던 순간이 언제일지 생각했고, <코코>를 보러 가서는 그곳에서 공연을 하고 있을 아이를 생각했다. 혹시나 다리를 건너지 못할까 봐, 사진을 출력해 방에 걸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이 세상으로 놀러 오지 못하는 일이 없을 거라고 다짐도 했다. 영화를 보고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앞서 가던 사람이 친구분과 함께 그 아이의 이야기를 했다. 사랑받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걸 알고 간 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함께였다.


동생은 노래를 못 듣겠다고 했다. 하지만 스스로를 괴롭히는 취미가 있는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그 아이의 노래만 들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한시도 멀리 두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지난 세월을 후회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을 것임에도 그러했다.


그 아이를 보며 자주 울고 가끔 웃던 나는, 점점 가끔 울고 자주 웃었다. 슬픔의 순간이 아니라 그 애를 좋아하며 행복했던 기억들을 더 자주 곱씹었다. 벽을 보며 우는 밤이 적어졌고, 어느 순간엔 울지 않고 잘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애가 떠나기 전보다 더 자주 그 애를 생각했고 그건 나에게 명백한 행복이었다.


그렇게 2018년 12월이 되었다. 12라는 숫자를 보는 순간부터 나는 18일을 의식하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그 애를 좋아했던 친구와 귀여운 사진을 공유하기도 했다. 그래서 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18일의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눈물이 터진 나는 한 시간이 넘는 출근시간 내내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계속 눈물을 흘렸다. 그러니까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내가 너무 자신감 넘쳤네.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그냥 계속 울었다.

여전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왜, 너는 왜 그렇게 가버렸을까. 그래도 마지막 부탁한 것이 고생했다고, 수고했다고 말해달라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해야만 했다.


그러다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를 봤다. 뮤지컬을 예매해준 친구는 나를 위해 손수건을 준비해주었다. 뭐 그렇게 울겠어, 라는 말이 무색하게 나는 너무도 빨리 눈물이 터졌고, 극이 끝나는 순간에는 오열하고 있었다.

죽은 친구를 위해 송덕문을 쓰는 주인공은 흘러간 틈새에, 놓친 순간 속에 친구의 이야기를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쏟고 또 주저한다. 그런 주인공에게 이미 죽어버린 친구는 말한다. 아는 이야기를 적으라고, 평생의 이야기에 숨을 불어넣어 달라고, 이야기가 살아나게 해 달라고.


‘이게 전부야.’라는 말에 마음이 와장창 쏟아졌다.


나는 알 수가 없다. 긴긴밤 계속 그때의 네가 왜 그런 선택을 해야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답을 알 수가 없다. 네가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은 뭘까. 내가 정확히 널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계속 고민할 수 있겠지만, 결국 답은 하나다. 알 수 없다. 그 당연한 말에 감정이 전부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작년 12월 18일에도 같은 친구와 같은 뮤지컬을 보며, 너를 생각했다.


종현이는 내게 이겨내고 싶지 않은 슬픔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해결하지 않고 그대로 행복과 함께 이 슬픔을 끌어안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천일이 지났다.


나는 니체를 싫어한다. 그 말을 하기 위해 쉽지 않은 니체의 책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그래도 그중에 ‘영원회귀’는 쓸만하다고 생각했다. 그걸 시간이 휘발되어 날아가는 걸 강박적으로 두려워하는 나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수단으로 써먹었다. 내 현재의 순간이 계속 회귀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평생보다 더 길어지는 때가 올 테고, 그러니까 지금의 나를 긍정할 수 있도록 나는 그 ‘영원회귀’에 매달렸다. 하지만 그 날 이후로 그런 건 다 엿이나 먹으라지. 나는 앞으로의 그 아이의 삶에 영원히 행복만이 남아있길 바란다. 되돌릴 수 없으니, 이제 다 끝난 것이길 바란다.


내 삶은 전부 달라졌다. 그 날 이후로 한 순간도 같을 수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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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나의 종현아, 이렇게 네가 떠난 이야기를 구구절절 쓰는 것이 내가 슬픔을 이겨내고 있다는 증거일까봐 마음이 이상하다. 매일 너를 생각해. 타투를 보면서, 휴대폰에 숫자들을 보면서. 봄은 네가 태어난 4월이 있어서 특별하고, 겨울은 네가 떠난 12월이 있어서 특별해. 28은 네가 마지막 가졌던 나이라서 특별하지. 네가 떠나고 나서도 나는 끊임없이 너로 인해 무언가를 받는다.

태민이가 자라 너랑 동갑이 되었고, 그날로 벌써 천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너를 위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이 모든 글자들은 다 나를 위해 쓰였을 뿐이라고, 나를 다그쳐본다. 이천 일엔, 삼천 일엔 이 마음이 조금은 마모되었을까. 네가 떠나고 난 다음에서야 들을 수 있었던 노래를 듣는다. 그 노래가 너무 네 마음 같아 울지 않고 들을 수가 없다.

난 괜찮아요 또 내게도 봄이 오겠죠.

너에게 오지 않은 봄이 나에게는 왔고, 그다음의 겨울도, 그다음의 봄도 왔다. 종현아, 민호가 입대 전 팬미팅을 하는 걸 보고 왔어. 그걸 보는데 그냥 또 눈물이 나더라. 나의 시간이 이러했는데, 민호의 시간은 어땠을까 자꾸만 생각하는데, 너무 많이 컸더라. 혼자서 말도 참 잘하더라. 기범인 벌써 다음 달이면 제대고, 민호도 이제 두 달 남짓 남았다.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살아가며 영원히 너를 잊지 않을 거라고. 오늘도 누군가는 유치하다고 생각할 다짐을 한다. 너는 준 적 없다 할지 모르지만, 나는 받은 게 너무 많아서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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