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도 정도가 있는거야?
또 똑같은 고민을 언니 오빠들에게 말하고 있다.
그들도 이젠 듣기 지쳤을 것이다.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아서 하고는 있는데 그 중에 뭐 하나 잘하는 건 없어..."
너무 많은 것을 하면서 과부하가 왔다. 결과물을 내면서 과부하가 왔으면 덜 하겠는데, 남는 거 하나 없는 상태가 계속 되니까 더 진이 빠진다. 정신없이 관심가는 일들을 하나 둘씩 하다보면 내가 원하는 삶이 뚜렷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무엇인지 잊어버렸다.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하면서까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걸까? 어떻게 세상에 기여하고 싶을까?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기록한답시고 하는 꾸준히 영상을 만들어오고 있는 유튜브 채널과 발행하지 못한 원고만 가득한 브런치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다. 나의 일상을 기록하고 크리에이티브한 컨텐츠로 제작하고 아카이브하는 과정이 재밌었다. 그 결과물에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에도 짜릿함을 느끼게 되면서 계속 해오고 있지만 어느 순간, 어떤 사람들은 “그냥 자기 일기장 아닌가?", “어쩌라고?” 하는 반응을 보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저 일상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내 기록들에 '진심으로 팔로우’하는 사람들이 있을까하는 충돌이 생겼다. 나 혼자 벽에 대고 신나게 일기장을 소리내어 읽다가 아무도 없는 뒤를 쳐다본기분이었다.
수확없는 반복되는 일상에 '일탈'을 하고 싶은 난 ㅍ 오빠의 일탈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자신의 일탈은 '축구' 라고 말하는 페노 오빠. 제대로 미쳐보지도 않고 발만 살짝 담궈 통통거리다 지루하다고 이야기하는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자신의 축구 중계 방송 일, 즉 그의 '일탈'을 해서 성공의 길로 갈고 닦는 오빠를 보면 더 허슬해야 되겠다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는 것도 용기를 내야하는 일이야."
답이 정해져 있는 고민을 하는 나를 보고 ㅍ 오빠가 툭 던진 말이다. 오빠는 하우어들이 3층 부엌에 모여 다 같이 술을 마시고 왁자지껄 신나는 새벽을 보낼 때 항상 혼자 지하 로프트로 내려가 '새벽의 축구 전문가' 유튜브 채널 영상들을 편집했다.
나는 정작 성취를 하는 일은 없고 여러 일을 벌려놓으니 번아웃이 왔다. 번아웃이 올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꾸준히 열심히 해서 이뤄놓은 것도 없으면서 과부하가 왔다니... 무언가 이상하다. "너가 지금 필요한건 성취야." ㅁ 오빠 말이 맞다. 성취를 맛보려면 선택과 집중을 해야한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정확한 측정이 필요했다. 난 벌여 놓은 많은 일들에서 한발짝 물러나 일을 가지치고 우선 순위를 매겨야했다.
지금 (2021년 3월)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이렇다:
1. 드림하우스
1) 하우웍스
드림하우스 하우어 ㅅ언니와 ㅁ언니와 함께 만든 독립 출판물 매거진 브랜드이다.
우리 또래 청년들이 어떻게(하우Hau) 일하고 있는지(웍스Workx) 인터뷰 컨텐츠로 전하는 워크 매거진을 기획부터 인터뷰, 에디팅, 디자인, 출판까지 모두 우리 셋이서 진행하고 있다. 끊임없이 자신의 워크 사이클을 유지해오고 있거나 새로운 워킹 사이클을 찾아 나서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일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공유하고자 했던게 우리의 시작이었다. 주체성을 가지고 다양한 일을 펼치고 있는 청년들의 현실적인 고민과 일에 대한 경험, 인사이트, 영감을 공유하며 새로운 영역에 대한 시도의 동기부여를 넘어 서로의 모습을 통해 창의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배우고,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워킹 (working) 프레임을 장착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초반에는 우리끼리 일할 때의 '시스템' 조차 없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일을 이야기 하기 전에 우리가 어떻게 일할지 부터 정해야했다. 그 맨땅에 헤딩이 어려웠다. 0에서부터 시작해 우리에게 맞는 워크 사이클을 만들고 각자의 역할을 분담해 일하면서도 조화가 잘 어울릴 수 있게 서로의 일에 피드백을 주며 알찬 컨텐츠를 담은 잡지를 인쇄해낸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우리의 사비를 들여서 시작한 일이다. 처음에는 드림하우스 하우어들의 이야기부터 담으며 시작했기 때문에 드림하우스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거기서 크게 넘어지고 나는 잘 일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잡지 하나 만드는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두 언니들보다 부족함도 많고 처음 해보는 일이기 때문에 다시 일어나기가 힘들어 포기 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다른 사람의 인터뷰를 에디팅하다보면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하면서. 팀원들의 워크 스타일도 다 달라 팀 내에서 조율하는 일도 흔했다. 하우어 언니가 아니라 팀원으로서 워크 모드를 킨 언니들의 카리스마 있는 모습에도 적응해야했다. 하지만, 그만큼 내가 성장하고 많이 배운 곳이다.
2) 출판 스터디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드림하우스 스튜디오에서 자신이 출판한 책의 북콘서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ㅊ 오빠를 보고 마음 속에 오랫동안 꿈틀대기만 하던 '출판의 꿈'을 위해 결성된 출판 스터디 모임. 책을 위한 글쓰기부터 출판하는 과정까지, 두 번의 출판 경험이 있는 ㅁ 오빠가 같은 꿈을 갖고 있던 ㅇ 언니와 나를 위해 도움을 주며 시작되었다. ㅁ 오빠도 새로운 책을 쓰고 있다고 했다. 각자가 쓰고 싶은 책의 목차부터 매주 빌드업하고 그 목차에 따른 글을 매주 완벽하지 않더라도 써오며 피드백을 주고 받는다. 출판 기획서 탬플릿도 공유해주고 그것을 바탕으로 디테일을 채워나갔다. 스터티 리더장인 ㅁ 오빠는 "출판은 출산과도 같다."라고 그랬다. 둘 다 얼마나 힘든지 조금이나마 알아가고 있다. 매주 글을 쓴다는게 정말 쉽지 않았다. 마른 수건을 짜내야하는 상황에는 작가들의 고통도 잠시나마 경험했다. 책을 위한 글 이외에 출판의 목표를 뚜렷이 하기 위해 내가 책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소셜 미디어에 알리는 미션과 위클리 출판 일기 또한 써야하는 아주 빡센 모임이다. 모임 이름과 같이 매우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꽃들(?)이다. 그래도, 글을 쓰고 다듬는 일을 더 좋아하게 된 고마운 그룹이다.
3) 유튜브 스터디 클럽 "레지스탕스" :
기존의 컨텐츠들에 대항하는 새롭고 혁신적인 컨텐츠들을 만들어나가보자는 불어 'resistance' 라는 제목의유튜브 스터디 모임이다. 노래 커버 유튜브를 운영하는 ㅈ 언니, 연애 심리 채널을 운영하는 ㅇ 언니, 자신의 일상과 철학을 공유하는 ㅅ 오빠, 요리 유튜버 ㅁ 오빠 그리고 나 이렇게 6명의 팀원들이 모여 서로의 채널에 도움될 만한 유튜버나 영감 컨텐츠를 공유한다. 매주 각자 채널을 향상시킬 미션을 정해서 그 미션과 서로의 영상 컨텐츠에 대한 피드백도 해주는 유튜브 스터디이다. 각 미션/목표에 금액을 메긴 후, 지키지 못하면 다음 달 초 그 목표에 메긴 금액만큼 벌금으로 내는 시스템도 도입했다! 영상 편집 스타일도 자유롭게 공유하고, 내 영상에 디테일한 피드백을 받는 기회가 흔치 않기 때문에 좋은 기회였다. 무엇보다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면서 나의 취향이 더 깊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정확히 파악하고 들고 온 매주의 영감 컨텐츠들은 정말 흥미로웠다. 다양한 컨텐츠로부터 영감을 받고 내 컨텐츠로 소화해보며 매월 노션에 각자의 한 달 목표를 적고 서로 팔로우 업한다.
4) 중국어 수업
하우어 ㅊ 오빠가 PD 로서의 하루를 퇴근하고 하우스로 돌아와 가르치는 중국어 수업이다.
언어 배우기를 좋아하고 고등학교 때 제 2외국어로 중국어를 선택했던 나는 언젠가 다시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해왔다. 오빠의 수준급 원어민 중국어 실력으로 가르치는 수업을 그것도 무료로 들을 수 있다니 안 들을 수 없는 좋은 기회였다. 처음에는 이렇게 그냥 들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퀄리티가 좋아서 미안할 정도였다. 그런데, 오빠는 하우어들이 자신의 수업을 통해서 중국어로 얘기하는 것만큼 기쁜 것도 없다고 그러면서 오빠의 열정을 몸소 보여주었다. 정말 대단한 라오슈다. 매 수업 성조 읽기 녹음 숙제도 내주고 그 녹음 파일을 일일히 다 듣고 자세한 피드백을 다시 보내준다. 교재로 배우는 중국어 외에 중국 영화 OST 를 불러 보기도 한다. 구성이 참 알차다. 지금도 그 때 배운 첨밀밀과 토이스토리 OST 'You've got a friend in me' 을 중국어 가사로 흥얼거린다. ㅊ 오빠의 중국어 수업으로 인해 하우스에 작은 차이니스 컬쳐가 생겼다.중국어 성조 녹음 숙제를 같이 하는 하우어들, '하'반에서 '상'으로 가려고 고군분투하는 열정을 보이고, ㅊ오빠를 '라오슈 (선생님)' 라고 부르는 순간들. 중국어 수업 이외에도 드하 살롱 (한 달에 한 번씩 그 달의 나를 표현하는 노래와 사연을 보내 22곡이 담긴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해주는 드림하우스 2기만의 프로그램)과 드하 마니또 이벤트를 운영하는 오빠의 기획력과 열정은 참 닮고 싶다. 오빠의 아이디어로 사람들이 모이고 더욱 끈끈하게 연결된다. 그래서 PD를 하나보다!
2. 학교
1)15학점 :
어려워하는 관리 회계 외 마케팅 리서치, 마케팅 관리, Management Science (통계학), 생물학.
총 5과목을 저글링하고 있다. 각 과목의 팀플과 과제, 시험도 만만치 않다.
사실, 시험이나 과제 자체가 빡세진 않았지만 전국에서 내노라하는 전교권의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한데 모인만큼 학우들의 팀플 퀄리티와 기대치가 매우 높아 로드가 저절로 빡세졌다..... 게다가, 서울대 학생들은 교수님들이 인정할 정도로 시험을 잘 본다. 수업은 안 빡센데 학우들이 빡세다. 휴.
2) TED x SNU
TED 를 자주 즐겨 들었던 애청자로서 저런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 대학교 뿐만이 아니라 다른 학교들도 참가해서 기획하는 연합 동아리라는 점도 마음에 들어 서류를 넣고 합격해 활동했다. 그런데, 하다보니 생각보다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내가 좋다고 무조건 하고 보는건 아니었다. 20명 정도의 큰 팀이 오랜 기간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시작할 때 조금 더 멀리 보고 끝까지 책임 질 수 있는지 신중히 생각하고 참여해야한다는걸 뼈져리게 느꼈다.
3)그 외 동아리
한국 대학교에서 보내는 처음이자 마지막 학기이라는 사실에 학기 시작 전부터 해보고 싶은 동아리를 리스트업 했더니 8개 정도가 나왔다. 어느 순간, '마지막 학기'라는 사실에 답답함을 느끼게 되었다. 마지막이니까 더 불태워보겠다는 의지가 생겨 미국 학교에서는 잘 찾아볼수 없는 밴드 드럼 파트, 뮤지컬 동아리, 경영 학회, 코딩 동아리도 가입 하려고 지원했다.
3. 유튜브: 초록Cholog
내 일상을 기록하는 브이로그 채널을 운영하는 일이다. 몇 십만 유튜버도 아닌데 뭐가 힘드겠냐고 물어본다면 뭘 모르고 하시는 말씀...... 직접 영상을 편집하고 플랫폼에 형식에 맞춰 알차게 업로드 해봤다면 그 자체가 그리 간단하고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 거다. 구독자가 엄청 많은 것도 아니고 친구들과 가족들만 보는 채널이지만 꽤 진심으로 임하고 애정하는 일이다. 굳이 통계적으로 보면, 생각보다 정말 느린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채널이다. 꽤 오래된 채널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노출도 안되고 조회수도 안 늘어서 종종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를 싫어한다고도 생각한다. 그래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는 일이다. 브이로그 이외에 도움될 만한 정보를 전달하는 유학 정보 공유 컨텐츠도 기획하고 컨텐츠 공부도 많이 한다. 처음에는 멀리서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 딸의 일상을 부모님께 공유하려고 시작한 채널이었지만 점점 숫자에 집착하지 않을 수 없게 된게 사실이다. 처음 시작할때는 컷편집만 해서 간단하게 내보내곤 했지만 이제는 영상을 디테일하게 다듬고 노출이 될 수 있을 요소를 추가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에너지와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일임에도 '숫자'가 만족스럽지 않으니 이 일 또한 과부하의 주된 원인 중 하나였다.
위의 모든 일들은 나에게 당장 눈에 보이는게 돌아오는게 없는 일들이었다.
이렇게 수많은 공을 저글링하고 있는 나에게 ㅁ 오빠는 "청춘이 사람이라면 그건 재키일거야." 라고 했다.
듣는 순간, 기분이 좋으면서도 내가 너무 많은 일을 하고만 있다는 게 느껴졌다. 다른 날, 다른 하우어가 그랬다. 하우어 언니 오빠들이 나를 봤을 때 항상 힘들어서 지쳐있는 모습이 먼저 생각난다고... 그게 싫었다.
너무 많이 일을 벌리고 있는 것도 나고 그 상황들 속에서 생긴 고민들을 아무 생각 없이 언니 오빠들에게 말하고 다니던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ㅇ언니는 "근데 다들 이런 고민을 한 번씩 거친 사람들이라 오히려 네가 고민되는 부분들을 공유하면 반가운 마음에 더 잘 들어주고 적당한 해결책을 줄 수 있는 걸거야."하며 괜한 걱정 하지말라고 말해주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모르겠지만 뭐가 문제인지는 정확히 알고 있다. 즐거움만 따라가면 어디까지 갈 수 잇을까. 즐거움만 따라갈 수는 없었다. 꿈을 좇는 사람만이 정답은 아니었다. 더 많은 사람이 나를 알아봐주기 바라는 마음보다 삶의 태도와 가치관의 가닥이 명확한 사람이 되어보려는 것에 집중을 더 많이 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똑같은 고민을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며 내가 문제가 있다는 걸 그만 확인 받고 내 앞에 놓여져 있는 것을 정리한다. 내 고민들에 대한 솔루션을 현명하게 조언해준 솔로몬같은 언니 오빠들이 내 '청춘'에 한 부분이어서 든든하다.
진짜 답은 내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