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길 위의 노래

6일 차, 에스떼야 - 로스 아르코스 21.3km

by 한번만 더

8월 7일


5시 50분까지 푹 잤다. 소규모 알베르게를 선택한 건 좋은 선택이었다.


아직은 졸린눈의 라이스


오늘은 브라질에서 온 친구 둘이 제일 부지런하다. 일찍 일어난 라이스와 엘라가 주방에서 한창 짐을 싸고 있었다.



밤새 잘 잤는지 몸은 어떤지 서로 안부를 물었다. 내 물집을 보더니 엘라가 컴피드 하나를 주고 갔다. 계란을 삶아 라이스, 마들렌, 엘라에게 나누어 주었다.


출발 준비 끝
클라우디아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7:15에 알베르게를 나섰다.

얼마 가지 않아 클라우디아 할머니를 만났다. 론세스바예스에서 같은 벙크 베드를 썼는데, 스틱 하나를 지팡이 삼아 천천히 다니신다. 속도가 매우 느려 걱정하는 분 중 하나인데 여기까진 무사히 오신 걸 봐서 다행이었다. 어제는 내가 공립 숙소에 가지 않아서 못 봤다.


클라우디아는 만날 때마다 나에게 손키스를 보내시고 물론 헤어질 때는 정말 키스를 해주신다. 영어가 통하진 않고 스페인어, 이탈리아어와 바디랭귀지를 마구 쏟아내는데, 손짓으로 먼저 가라고 하셨다. 결국 저녁 6시가 다 되어 로스 아르코스 알베르게에 들어오셨다.



아예기 알베르게에서 100km 돌파 기념 세요와 증명서를 준대서 찾아갔지만, 문이 닫혀있어 그냥 돌아 나왔다. 증명서나 도장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벌써 100km나 왔다. 거의 서울에서 대전을 온 거리이니 꽤나 걸은 셈이다.


파코와 세르게이


아예기의 또 다른 명물은 이라체 수도원에 있는 무료 포도주샘이다. 기념으로 한 모금 하려면 컵이나 병을 가져가면 편하다. 옆의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나오므로, 물병을 비우고 받아 마신 다음 다시 물을 채우면 된다. 까미노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못 찾을 일은 없다. ​


정말 수도꼭지에서 포도주가 나옵니다


한참 올라가다 보니 누군가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어제 부엔 까미노 인사만 하고 그냥 지나쳤던 분이다. 기타를 들고 가시길래, 기타까지 들고 가면 얼마나 힘들까 하며 지나갔었다. 잘 들어보니 가사가 한국어이다. 살짝 옆에 앉아 노래를 들었다. 지나가던 순례자들도 하나 둘 걸음을 멈추었다.


버니와 모라 그리고 강선생님


노래가 끝나고 간식을 나누며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여기 경치가 너무 좋아 잠시 멈추어 노래를 하셨다고 한다. 직접 작사 작곡까지 해서 자신만의 노래를 부르는 분이다.


같이 걷던 파코와 세르게이를 먼저 보내고 강선생님과 천천히 걸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에 함께 들어왔다. 성함은 강민정. 인스타그램 @minjung_singer

https://www.instagram.com/minjung_singer?igsh=MW5pNHcwYTNvOXRvZw==



몬하르딘 초입에 있는 가게에서 화장실에 들르고 세요를 하나 찍었다.


여기를 지나면 이제부터 12km 동안 마을이 없다. 첫 번째로 만나는 광야 체험 구간이다. 길에 들어서기 전 만난 샘에서 물통을 가득 채웠다.


뒤돌아 보니 멀리 언덕 위로 몬하르딘이 보였다.


해가 꽤 뜨거워 양산을 요긴하게 사용했다.


비토리오 아저씨가 찍어주셨다


로스 아르코스 마을에 들어섰는데 시에스타 시간이 가까워 거리에 사람이 없었다. 온도계는 26.5도를 가리켰다. 오늘은 그럭저럭 버틸만하였으나, 내일부터는 점점 더워지고 모레는 최고 38도에 육박할 예정이라 했다. 로그로뇨까지 28km, 그다음 날 나헤라까지 29km를 걸어야 하니 정말 고생길이 열릴 예정이었다. 더위속에 걷지 않으려면 아침 5-6시경에는 떠나야 할 것이었다.


제이크네 그룹은 여기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내일 로그로뇨까지 가서 하루 쉴 예정이라 했다. 이탈리아에서 온 친구들은 오늘 한마을 더 전진해 산솔까지 간다 들었다.



로스 아르코스 공립 알베르게 앞에 앉아 잠시 쉬었다. 이탈리아 그룹을 따라 한 마을 더 갈까 고민하고 있는데, 한 오스피탈레라가 눈에 익은 묵직한 배낭을 차에 옮겨 싣고 있었다. 어제 저녁을 함께 먹은 한국 여자분의 배낭이었다. 사람은 어디 가고 배낭만 있는지 물어보니, 동키가 왔는데 받을 주인은 병원으로 실려갔다고 했다. 혹시 통역이나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 달라하고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이러는 사이에 날이 더 뜨거워져서 결국 로스 아르코스에서 멈추었다. 스페인은 오후 4-5시가 가장 뜨거울 때다.



공립 알베르게의 숙박은 8유로. 시설 환경은 조금 낡았다. 이제 여기까지 오셨다면 남녀 공용 샤워실과 화장실은 적응이 되셨을 것이다. 본관 맞은편 도미토리에 콘센트가 매우 부족하며, 와이파이가 도달하지 않는다. 공유기 작동이 안 된다고 하였다. 오스피탈레로가 매우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비토리오 아저씨
이 물건의 용도를 맞추어 보세요. 정답은 빨래 짜는 기구



시에스타가 끝나고 마을 슈퍼마켓이 문을 열었다. 토마토, 베이컨, 양파, 그리고 스파게티를 사 왔다. 걸음 느린 강선생님이 무사히 오시는지 목을 빼고 밖을 내다보았다. 럭키씨가 병원으로 실려간 소식을 들어서인지 더 걱정이 되었다. 선생님이 힘겹게 마을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야 마음을 놓았다. 저녁을 간단히 지어 선생님께 대접하고 맥주를 한잔 얻어 마셨다. 숙소의 맥주 자판기는 사람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저녁을 먹은 후 작은 음악회가 다시 열렸다. 먼저 강선생님께서 노래를 하고 그다음엔 다른 사람들이 너도나도 기타를 빌려 노래를 했다.


이 아저씨는 원래 기타 레슨을 하신다고 한다. 혼자서 한 시간이나 노래를 부르셨고 국민가요가 나올 때마다 순례자들의 떼창이 이어졌다. 볼라레가 연주되니 다들 목청이 최고로 높아졌다. 볼라레 오오 깐따레 오오오오~




내일은 아침 일찍 떠나야지


10분만 늦었더라도 길에서 강 선생님의 노래를 듣지 못했을 것이며, 한 마을을 더 갔더라면 이런 즐거운 음악회에 참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연과 우연이 쌓이며 까미노의 하루가 또 지나갔다.


여기선 매일매일 특별한 일들이 벌어진다.


7:15 ~ 2:10

에스떼야 ~ 로스 아르코스